기존에 파트너십 맺었던 ‘VB에셋’에 피소당해…원천기술 보유 업체라 특허 무효화 쉽지 않을 듯
#빅스비 탑재된 AI 음성 시스템이 대상
삼성전자가 10월 9일 음성 인식 관련 IT기술을 보유한 NPE VB에셋으로부터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서 특허 침해 혐의로 피소당했다. 침해 혐의가 있는 특허는 US8073681, US8515765, US10510341, US10755699, US7818176, US8886536로 총 6건이다. 분쟁 특허 6건은 자연어 처리(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조작·처리하는 기술) 및 대화형 인터페이스(사용자의 글이나 음성을 이해하고 사용자와 대화하면서 동작하는 인터페이스) 관련 내용으로 삼성의 스마트 기기에 탑재되는 AI 음성 시스템인 빅스비가 분쟁 대상이다.
미국 기업인 VB에셋은 보이스박스 테크놀로지의 마이크 케네위크 대표가 설립한 특허 관리 법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특허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한 보이스박스는 음성 기반 자연어 이해(NLU) 및 대화형 AI 기술 개발 기업으로 스마트 홈부터 모바일 음성 비서 등의 개발에 필수적인 원천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다. 도요타, 크라이슬러 등 여러 글로벌 기업들이 보이스박스 기술을 활용해 차량에 내장된 스마트 스피커 등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역시 보이스박스와 협력해 삼성의 초기 AI 음성 비서 서비스인 ‘S 보이스’를 제작했다. 2013년 6월에는 보이스박스가 NLU 기술을 삼성에 공급하는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자사 음성 서비스에 보이스박스 기술을 사용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가 파트너십 협상 과정 동안 여러 차례 이번 분쟁에 포함된 특허의 매입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는 점이다. VB에셋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2~2013년에 걸쳐 해당 특허를 팔라고 제안하며 계속 가격을 올려 협상을 타진했다. VB에셋 측은 가격이 맞지 않는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삼성이 AI 음성 비서 서비스 시장 진입을 위해 해당 특허들의 확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후 삼성전자는 보이스박스와의 파트너십 협상을 종료하고 독자적인 AI 음성 비서인 빅스비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2017년 빅스비 1.0과 빅스비 2.0을 잇달아 공개하며 자연어 이해와 처리 기술을 향상시켜 사용자 맞춤형 AI 음성 비서를 설계했다고 밝혔다. VB에셋은 빅스비가 보이스박스가 제공한 S 보이스 관련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됐다며 이번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VB에셋은 삼성전자가 고의적으로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미 파트너십 계약 전에도 해당 특허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VB에셋이 빅스비 2.0 출시 이후 삼성에 로열티 계약을 제안했으나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VB에셋은 특허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과 소송비용, 이자비용을 청구했다. 특히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 행위가 고의적이라는 점을 들어 특허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3배까지 증액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VB에셋은 배심원 재판도 요청했는데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과 배심원 재판 모두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경향성이 있다.
특허 침해 인정 판결을 받을 경우 상당한 손해배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갤럭시 노트9 이후 출시된 갤럭시S·갤럭시Z·갤럭시A·갤럭시노트 등 모든 버전의 스마트폰에 빅스비 2.0이 탑재됐다. 뿐만 아니라 태블릿PC, 이어버드, 스마트워치, 스마트TV, 사운드 바와 사물인터넷(IoT)서비스를 위해 개발한 패밀리허브 냉장고 등 기타 삼성전자 가전제품을 비롯해 삼성전자의 AI 클라우드 인프라 역시 분쟁 제품군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 이긴 NPE, 삼성전자는 다를까
VB에셋은 지난 2019년에도 아마존의 AI 음성 비서인 알렉사와 관련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4670만 달러(약 644억 원) 규모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알렉사 신규 사용자당 0.4 달러, 알렉사를 이용한 음성 쇼핑 구매자당 0.22달러의 로열티를 지급하라는 배심원 평결도 받았다. 이번에 삼성을 제소한 특허 6건 중 3건이 아마존 공략에도 활용됐던 특허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2020년 아마존은 분쟁 특허를 무력화하기 위해 특허심판원(PTAB)에 특허무효소송(IPR)을 제기했으나 실패했다. PTAB는 아마존이 제출한 선행 기술로는 해당 특허의 무효 여부를 다툴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소송을 기각했다.
삼성전자 역시 분쟁 특허의 유효성 여부를 놓고 다투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원천특허보다 출원일이 앞서는 마땅한 선행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삼성전자가 보유한 미국과 유럽의 AI 음성 비서 관련 특허 출원 과정에서 이번 분쟁 특허인 US8073681와 US7818176이 인용됐다.
공앤유 특허사무소의 공우상 대표 변리사는 “삼성전자가 단순히 자사 특허랑 관련된 기술 중 하나가 VB에셋 특허라고 명시한 것이거나 혹은 이런 선행기술의 문제점을 극복해 다른 발명을 했다는 취지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삼성전자가 VB에셋의 원천기술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부가적으로 개량한 ‘이용 발명’을 했다면 불리해지겠지만 기술을 변형해서 새로 특허를 받았다면 라이선싱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그 부분이 이번 소송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대한변리사회 부대변인이자 로한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인 이준석 변리사는 “분쟁 특허들이 원천특허와 ‘계속 출원’을 통해 엮인 파생특허들로 이루어진 점도 원고의 전략 중 하나다. 특허는 누가 먼저 출원했느냐가 관건인데 계속 출원을 하면 뒤늦게 나온 파생 특허들도 전부 원 출원일로 소급이 돼서 계산이 된다”며 “피고보다 늦게 내놓은 파생특허도 원천특허와 같은 날짜부터 계산되기 때문에 원천특허를 일찍 내놓은 선행 특허권자가 분쟁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진행 중인 특허 소송과 관련해서는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최근 모조 모빌리티가 삼성을 상대로 텍사스 법원에 제기한 무선 충전기술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1억 9210만 달러(약 2650억 원) 이상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올해 7월에는 미국 넷리스트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소송에서 최종 패소가 확정되며 3억 315만 달러(약 42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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