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감찰관 이슈 등 추경호 향한 비토 기류 확산…2026년 지방선거 공천 영향력 행사 위한 파워게임
회동 다음 날인 10월 22일 한동훈 대표는 국회 부근 한 식당에서 친한계 의원들과 만찬을 가졌다. 용산을 겨냥한 일종의 실력 행사로 풀이됐다. 이날 현역 의원 21명, 원외인 김종혁 최고위원까지 모두 22명이 참석했다. 한동훈 체제 출범 이후 한 대표와 친한계 인사들이 공식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10월 6일 이후 두 번째로, 이날은 첫 만찬보다 숫자가 더 늘어났다. 한 대표와 친한계 인사들은 이 같은 모임을 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다.
회동 후 친한계 의원들 사이에선 거친 말들이 터져 나왔다. 한 친한계 의원은 “가장 많이 들리는 건 ‘다음 김건희 특검법 때 보자’는 내용”이라고 귀띔하면서 “김 여사를 끌어안고 가다간 여당엔 답이 없다는 것을 많은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들은 말은 안하고 있지만 내심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10월 23일 용산을 향해 다시 폭탄을 터뜨렸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확대 당직자회의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기 전에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국민들의 요구를 해소해야 한다”면서 대통령 가족 등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기 위한 특별감찰관 추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특별감찰관 추천은 민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이 전제조건’이라는 게 당론이라는 친윤계 반발에 대해 한 대표는 “국민 공감을 받기 어렵다”며 뭉개버렸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한 대표 발언 직후 “이는 의원총회에서 정할 원내 사안”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친윤계에선 “원외인 당 대표가 월권을 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원외’인 한 대표의 처지를 꼬집은 것인데, 한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한 대표는 10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 임무 관련 오해가 없도록 한 말씀 드린다”며 “당 대표가 법적·대외적으로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내든 원외든 총괄하는 임무를 당 대표가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가 ‘원내 사안’이라며 제동을 걸자, 국민의힘 당헌을 내걸며 반박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추 원내대표는 “노코멘트”라고 했다.
특별감찰관 이슈가 갈등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떠오른 가운데, 추경호 원내대표에 대한 친한계의 비토 기류가 확산되는 형국이다. 그동안 친한 진영에선 추 원내대표가 용산의 ‘오더’를 받고 한 대표를 견제하고 있다는 의심이 팽배했었다. 그동안 쌓여 있었던 불만들이 ‘원외’ 발언과 맞물려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원외의 한 친한계 인사는 “추경호 원내대표가 노골적으로 한 대표를 배제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고 말했다.
‘마이웨이’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한 대표는 약점으로 꼽히는 스킨십을 강화하면서 친한 세력을 극대화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일단은 세 불리기에 성공해야 용산의 저지선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많은 의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대표가 최근 들어 부쩍 전화를 걸어오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10월 24일에는 국정감사가 진행 중인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장을 찾아 의원들을 격려했다. 한 대표의 상임위 회의장 방문은 국감 마무리를 앞두고 여야 의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지만, 특별감찰관 추진을 논의할 당 의원총회를 앞두고 의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한 대표는 10월 25일에는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를 찾아 핵심 지지층을 파고들면서 세력 확대를 모색한다.
이재명 대표와의 만남도 내홍의 중대 변수로 꼽힌다. 한 대표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느냐에 따라 여권 지형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친한계에선 야권 유력 차기 주자인 이 대표와 자주 만날수록 한 대표 몸값도 오른다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회동에 임하라는 주문이 나온다. 친한 핵심 의원은 “대통령실로선 한동훈-이재명 간 회동에 많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한 대표가 이 대표와의 회동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친윤계에선 한 대표의 확장성에 의문을 표하면서 세력 전이에 부정적이다. 현재 친한계 현역 의원은 10월 22일 만찬 참석자를 감안해, 2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전체 의원 중 20%에 채 못 미치는 규모다. 이 정도로는 여권 헤게모니를 바꾸기엔 역부족이긴 하다. 하지만 친한계에선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앞서의 핵심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지금보다 2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친한이라고 밝힐 수 있는 의원만 최소 30명이다. 올해 안에 전체 의원 중 절반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건희 여사의 검찰 불기소(도이치모터스 의혹 관련)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것을 보면서 많은 의원들이 우려를 했고, 또 한 대표에게 힘일 실어주겠다고 했다. 대통령 지지율 반등이 희박한 상황에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둘 중 어디에 사람들이 몰리겠느냐. 답은 정해져 있다.”
친한계가 세 확장에 공을 들이는 것은 한 대표의 약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차기를 노린 포석으로 읽힌다. 한 대표가 대선에 나오려면 당헌당규에 따라 2025년 9월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 경우 한 대표는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띠는 2026년 지방선거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된다.
당헌당규를 바꾸거나, 한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선거를 이끄는 방안이 거론되는데 그 어떤 것이든 당내 지원세력이 필요하다. 친윤과 친한 간 벌어지는 일련의 파워게임 기저엔 이런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표면적으론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입장 차이지만, 결국은 차기를 놓고 벌이는 여권 내부의 세 겨루기라는 의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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