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대부분 고전, 한화에 넘긴 테크윈 ‘쑥쑥’ 대조…삼성준감위 “사법리스크 있지만 책임경영에 최선을”
SK하이닉스는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7조 300억 원을 기록하며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9조 1000억 원으로, 이 중 반도체가 4조~4조 40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상각전세전이익(EBITDA) 규모가 삼성전자의 9분의 1밖에 되지 않는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150조 원에 달한다. 주식시장에서 이제 삼성전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외국인이 지난 9월 3일 이후 10월 24일까지 32일 연속 순매도하며 연중 신저가를 경신 중이다.
삼성전자가 한때 ‘초격차’를 자랑하던 D램 시장은 전자제품 수요 둔화로 실적이 부진하다. 높은 미래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인공지능(AI) 부분에서는 고대역메모리(HD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비메모리 위탁생산(Foundry)에서는 TSMC에 초격차로 차이가 벌어졌다. 스마트폰은 애플과 화웨이 사이에 끼어 고전하고 있고, 가전은 LG전자에 여전히 열세다. 어느 하나 잘나가는 사업부문이 없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고전 탓에 2019년 말 2200이던 코스피는 아직도 26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잘나가는 TSMC 덕분에 대만 가권지수가 이 기간 1만 2000에서 2만 4000까지 점프한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의 위기가 대한민국의 위기가 된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 추정치를 공개한 지난 10월 9일 ‘고객과 투자자,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며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도 다시 들여다보고 고칠 것은 바로 고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삼성의 위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수성의 마인드, 잘못된 조직문화가 원인이라는 자가진단이다. 외부 평가는 다르다. 외부인들로 구성된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이찬희 위원장은 지난 10월 18일 서초구 삼성생명 사옥에서 열린 준감위 정례회의를 앞두고 “이재용 회장에게 사법 리스크가 있지만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책임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준감위는 이에 앞서 최근 발간한 연간보고서에서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의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를 주문했다.
이재용 회장이 책임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컨트롤타워가 무너졌고 이 때문에 조직에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사실상 삼성그룹의 총수 위치에 올랐지만 회장직을 맡은 것은 이건희 회장 작고한 지 2년이 지난 2022년이다. 8년간 삼성그룹에는 공식적으로 총수가 없었던 셈이다. 삼성은 이재용 회장 체제가 시작된 2014년부터 진행된 경영 승계에 가속을 냈지만 각종 사법 리스크를 피하지 못했고 이 회장은 각종 재판에 발목이 잡혔다. 삼성의 위기는 전자 외에 그룹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미 드러난 지 오래다.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이 진출한 분야에서는 거의 모두 국내 2위에 올랐던 계열사들도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2021년 80만 원 넘었던 삼성SDI 주가는 현재는 33만 원이다. 삼성전기 주가도 같은 기간 반토막이 났다. 이재용 회장이 그룹을 맡은 2014년 이후 기업공개(IPO·상장)가 이뤄진 삼성물산과 삼성SDS는 상장 당시보다 주가가 더 낮다. 자기자본 40조 원대의 삼성생명 시총은 20조 원에 불과하다. 주가순자산비율(PBR) 0.5배가 안 된다. 자기자본 16조 원인 삼성화재는 시총 16조 5000억 원으로 PBR 1배 수준이지만 자기자본 10조 원인 메리츠금융지주 시총은 20조 원에 육박하며 PBR 2배에 거래되고 있다. 삼성증권은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자기자본에서 밀린 지 오래다. 삼성카드도 현대카드에 3위 자리를 내줬고 4위 자리마저 KB카드에 위협받는 처지다.
이재용 회장 취임 이후 가장 뼈아픈 부분은 2014년 한화그룹과의 방산 및 화학 부문 빅딜이다. 비주력 사업 정리가 명분이었다. 삼성은 당시 삼성테크윈과 석유화학 3사를 약 2조 원에 한화로 넘겼다. 석유화학 3사는 당시 설비투자 막바지였다. 매각 직후 이익이 크게 개선된다. 삼성테크윈은 지금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2015년 당시 4만 원에 턱걸이하던 삼성테크윈 주가는 현재 40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10년 만에 기업가치가 10배나 폭증한 것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터진 방산 특수 덕분이다. 주력상품 K-9자주포는 삼성 시절 개발됐다.
2024년 삼성이 처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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