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은 2012년 발표돼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최근 ‘제2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불고 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발표한 ‘아파트(APT.)’다. 중독성 강한 후렴구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강남스타일’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아파트’는 그때처럼 뮤직비디오가 먼저 터지면서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빌보드 ‘핫 100’에서도 통할까
우리나라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와 미국 유명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호흡을 맞춰 10월 18일 공개한 노래 ‘아파트’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음원 공개 4일 만인 22일 오전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글로벌·미국 차트 1위에 오른 ‘아파트’는 다음 날인 23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1억 조회 수를 돌파했다.
전 세계인이 말춤을 추던 2012년처럼 이제는 ‘아파트 아파트’가 반복되는 ‘아파트’의 후렴구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10월 21일 X(옛 트위터)에 ‘이 클럽이 독일이라고? 이건 미쳤다’라는 설명과 함께 올라온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설명처럼 영상이 찍힌 장소는 독일의 한 클럽인데 여기 모인 사람들이 로제의 ‘아파트’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SNS에선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브루노 마스 콘서트의 한 장면을 담은 영상도 화제가 되고 있다. 관객들이 떼창으로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고 있었다.
‘아파트’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몇 위로 진입해 몇 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남스타일’은 ‘핫 100’ 64위로 진입해 2위까지 올라갔다. 2위 자리를 무려 7주 동안 지켰지만 1위까지 올라가진 못했다. ‘강남스타일’은 미국 록밴드 마룬5의 ‘원 모어 나이트’에 밀려 1위 자리에 오르지 못했지만 로제는 ‘아파트’에서 마룬5와 함께 미국 최고 인기 팝스타로 분류되는 브루노 마스와 함께하고 있다.
로제는 2021년 솔로곡 ‘온 더 그라운드(On The Ground)’로 빌보드 ‘핫 100’ 70위를 기록한 바 있고, 블랙핑크로는 셀레나 고메즈가 콜라보한 ‘아이스크림(Ice Cream)’으로 13위까지 올라간 바 있다. 10월 22일(이하 현지시간) 빌보드 최신 차트(10월 26일 자)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블랙핑크 멤버 제니의 ‘만트라(Mantra)’가 98위로 진입한 상황이라 제니와 로제의 동반 차트 진입이 임박했다.
#아파트가 뭐예요?
‘아파트’ 가사는 대부분 영어로 구성돼 있다. 글로벌 무대를 겨냥해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호흡을 맞춘 곡이기 때문이다. ‘건배 건배’라는 단어 정도가 한국어다. 그런데 ‘아파트’의 가사에는 ‘아파트’도 한국어로 적혀 있다. 사실 ‘아파트’는 영어지만 영어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콩글리시’, 한국에서만 쓰는 영어식 표현으로 외국인들에겐 낯선 단어다. 정확히는 공동주택을 의미하는 ‘APARTMENT’인데 외국인들은 가사 그대로 ‘아(a)·파(pa)·트(tue)’라고 따라 부른다. 영어가 아닌 만큼 발음도 나라별로 제각각일 정도고 그 뜻을 ‘떨어져’를 의미하는 ‘Apart’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 노래에서 ‘아파트’는 공동주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는 ‘채영이(로제의 한국명)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이라는 한국말로 시작돼 ‘아파트 게임’에서 착안한 노래임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로제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한 팬이 “아파트는 아파트먼트(Apartment)?”라고 묻기도 했는데 이에 로제가 “아니요, 아파트(Apatue)!’라는 답했다. 정확히는 ‘Apatue game’인 셈이다.
한국의 술자리 게임 가운데 하나인 아파트 게임에서 착안해 로제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다. 그러다 보니 노래 가사 가운데 ‘건배 건배’가 등장한다. 뮤직비디오에는 브루노 마스가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마시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건배 건배’라는 가사가 나오는 대목에선 브루노 마스가 태극기를 손에 들고 흔들기도 한다.
술자리 게임과 소맥 등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음주 문화를 기반으로 만든 노래기 때문에 ‘아파트’를 두고 한국의 ‘서브컬처(하위 문화)’를 잘 녹여냈다는 평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강남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한국의 서브컬처를 뮤직비디오를 통해 구현해 글로벌 열풍을 일으킨 부분도 비슷하다.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가 돋보이는 점도 비슷한 강점인데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돼 바로 ‘수능 금지곡’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자연스레 아파트 게임까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와 틱톡 등 글로벌 SNS에는 아파트 게임을 따라 하는 외국인들의 영상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아파트’가 K-팝의 저변을 더욱 확대시킨 한류 열풍을 주도한 것은 기본이고 술자리 게임과 소맥 등 K-음주 문화까지 글로벌 흥행시키고 있다.
#주식 시장까지 후끈 달아올라
‘아파트’ 효과로 YG PLUS(플러스)는 10월 21일부터 이날까지 5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한국거래소는 24일 장 마감 후 YG PLUS를 주가급등에 따른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했다. 추가 상승 시 매매거래가 정지될 수도 있다고 공시했다.
반면 YG엔터테인먼트(YG엔터)는 ‘아파트’ 공개 이후 소폭 상승세를 이어가다 25일 하락했다. YG PLUS와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YG PLUS는 음원 유통사로 YG엔터의 자회사다. ‘아파트’가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면서 관련주 찾기에 나선 투자자들이 음원 유통사인 YG PLUS를 주목하고 있다. 반면 소속사인 YG엔터 주가는 ‘아파트’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로제의 소속사는 YG엔터가 아니다. 2023년 12월 블랙핑크는 YG엔터와 그룹 활동에 대해서는 재계약을 체결했지만 개인 활동에 대한 계약은 갱신하지 않았다. 이후 블랙핑크 멤버 제니, 지수, 리사가 연이어 홀로서기를 공식화했고 로제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로제는 YG엔터에 남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2024년 6월 더블랙레이블과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더블랙레이블은 2006~2020년 YG엔터 메인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프로듀서 테디가 수장으로 있는 회사다.
하이트진로 주가도 로제의 ‘아파트’ 효과를 누리고 있다. 10월 24일에는 주가가 6% 급등했다. ‘아파트’로 인해 ‘소맥’ 등 한국의 음주문화가 글로벌 관심을 받은 덕인데 유독 하이트진로가 수혜를 입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로제는 최근 미국 패션 전문지 보그 유튜브 계정에 등장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소맥”이라며 ‘참이슬 오리지널’과 벨기에 맥주를 섞어 소맥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로 인해 ‘참이슬 오리지널’의 하이트진로 주가까지 영향을 받게 됐다. 한국 산업 전반에서 K-팝의 확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디어 정말 번뜩인다” 윤수일의 ‘아파트’ 역주행
‘아파트’라는 노래는 이미 전 국민이 알고 있다. 10~20대 젊은 세대보다 중장년층이 더 잘 알고 있는 동명의 노래 ‘아파트’는 유명하다. 언론에선 로제의 ‘아파트(APT.)’가 신축이라면 42년 된 구축 ‘아파트’도 있다고 소개하기도 하는데 42년 전인 1982년에 발표돼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윤수일의 ‘아파트’다.
로제의 ‘아파트’가 글로벌 인기를 끌면서 윤수일의 ‘아파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각종 차트에서 역주행하는 모양새까지 연출되고 있을 정도다.
윤수일이 직접 작사·작곡한 ‘아파트’는 윤수일 밴드 2집 타이틀곡으로 1982년 6월 발매됐으며 1989년 3월에 발매된 윤수일의 ‘골든 힛트곡 모음집’에서도 타이틀곡이다. 그만큼 윤수일을 대표하는 히트곡이다.
10월 23일 MBC 라디오 표준FM ‘손태진의 트로트 라디오’와 전화 인터뷰에서 윤수일은 “최근 상황이 실감이 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윤수일은 “음악을 들어보니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이디어가 정말 번뜩인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파트라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인의 노래 ‘아파트’만의 장점도 명쾌하게 설명했다. 윤수일은 “로제의 ‘아파트’도 경쾌하고 중독성이 있지만 내 노래도 당시 10년 동안 노래방에서 애창곡 1위를 놓친 적이 없다”며 “이 쓸쓸한 노래를 ‘떼창’ 하고 응원할 때 빠지지 않는 점이 내 의도와는 다르지만 이 노래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