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바람이 난 걸로 착각한 재벌회장 부인이 살인청부업자를 동원해 여대생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돈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심지어 살인자들마저도 거액을 약속받고 회장부인을 범죄선상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증거가 없는 상태였다. 수사를 맡았던 정성윤 검사는 목숨을 걸 듯 치열하게 회장부인을 추적해 마침내 정의를 바로 세웠다. 검사인 그는 법정에서 거의 울먹이면서 논고를 했다. 그가 적당히 현실과 타협했으면 총리까지 동원했던 재벌 회장 측 부부는 지금도 세상을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정의를 향한 희생정신이 검사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돈이 최고라는 관념에 더 오염되어 가는 세상에서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영화 속에 나오던 정의를 추구하는 모습은 실종되고 있다. 몇 년 전 사법시험 면접위원으로 갔을 때였다. 옆자리의 시험위원이 검사 지망생에게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친구가 매달 생활비를 대 준다면 받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검사지망생은 즉각 “사건 청탁만 아니라면 받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면접관이 “그러면 얼마까지는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다시 묻자, 검사지망생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월급정도까지는 괜찮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면접관은 “월급을 500만 원으로 잡으면 1년에 6000만 원 10년이면 6억 원까지는 받아도 되는 건가요?”라고 하자 면접을 받으러 온 검사지망생은 “그 액수면 너무 많은가요?”라며 당황했다. 그는 유혹이 다가오면 바로 부패할 수 있는 소지를 가졌다. 그런 사람이 진짜 검사가 되어 문제를 일으킨 경우를 봤다.
부장검사가 뇌물사건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평소 이웃의 아는 업자에게 명절에 조금씩 받던 게 점차 액수가 커지고 마침내는 거액이 되어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그가 조사를 받고 와서 내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자신도 평생 수사를 해 왔지만 “왜 받았느냐?”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검찰조직은 그가 퇴직하는 선에서 소리 없이 뇌물사건을 끝냈다.
10억 원에 가까운 돈을 기업과 다단계업자로부터 받은 검사의 사건은 거의 부패의 종합판이다. 썩은 권위주의의 잔재와 부정부패가 곰팡이같이 그래도 은밀히 남아 있는 곳이 권력을 가진 수사기관이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관할을 가지고 싸우지만 음습한 습기만 있으면 둘 다 언제든지 부정부패가 번성할 소지가 있다.
검사에게 주어진 권력은 국민을 하나님같이 알고 섬기라고 위임한 것이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검사의 부패사건을 이 시점에 수사권 독립의 선전도구로 이용한다면 그 얕은 속이 별로 반갑지 않다. 섬기는 검사는 높여주고 썩은 검사는 뽑아내 불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검찰이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