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사 악플 가득한 ‘보고서’ 파문에 부랴부랴 작성자 징계…해외선 ‘하이브 게이트’ 보이콧 움직임도
회사 전체를 뒤흔들만한 논란이 모두 일개 직원이나 특정 부서의 독단에서 시작됐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회사에는 아예 업무 체계라는 것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경영진이 직원을 휘어잡지 못할 만큼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일까. 엔터산업 최초로 '대기업'의 반열에 든 하이브(HYBE)의 연달은 논란과 그 해결 방식을 두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센 비난이 일고 있다. 아마 창사 이래 가장 큰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일 만큼, 이번 사태의 종결을 위해 그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무거운 입을 뗄 것인지 이목이 집중된다.
10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종합 국정감사에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처음 공개된 하이브의 '위클리 음악산업 리포트'(업계 동향 보고서)는 그야말로 '험한 것의 파묘'였다. 내용들이 너무 터무니 없고 수위가 높아 그나마 공개할 수 있는 것만 추렸다는 해당 문건에는 타 엔터사 소속 아이돌 그룹과 그 멤버들에 대한 일부 허위사실과 모욕적인 악플을 취합하고, 문건 작성자인 하이브 관계자가 추가한 코멘트 등이 적혀 있었다. "못생김의 시너지가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성형이 너무 심하다" "누구도 아이돌의 이목구비가 아니다" "멘탈 방어가 안 돼 외모나 섹스어필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등 적나라한 품평이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하이브와 그 산하 레이블의 전체 경영진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왔다.
하이브 측이 "단순히 대중 반응과 업계 동향을 취합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하자 이를 반박할 2차, 3차 파묘도 이어졌다. 10월 26일과 28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미공개분 보고서 추가 내용이 유포된 것. 국감에서 나름 정제된 상태로 공개됐던 것과 달리 추가 공개분에는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엔터사는 물론, 커뮤니티에서 조금씩 반응을 얻고 있던 중소기획사 소속 아이돌들에까지 '업계 동향'이라는 이름으로 적나라한 비난이 이뤄져 대중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줬다. 사실상 하이브 소속 그룹들과 동시기 활동하고 있는 모든 아이돌 그룹이 보고서의 '재료'가 된 셈이다.
해외 K팝 팬덤 역시 이번 사태를 놓고 '하이브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이며 충격과 분노를 고스란히 쏟아내고 있다. 한두 그룹이 아니라 전체 엔터사, 현재 활동 중인 전체 아이돌 그룹을 상대로 수년 간 같은 일을 반복해 왔다는 사실과 함께 미성년자를 포함한 아이돌 멤버들의 외모를 품평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더욱이 타사 아이돌 뿐 아니라 자사 레이블 소속 보이그룹 세븐틴을 비롯, 하이브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방탄소년단(BTS)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으로 언급한 지점이 지적되면서 해당 팬덤들 마저 하이브를 향해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K팝 팬덤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하이브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에 나서며 급한 불을 끄려는 모양새다. 10월 29일 하이브는 문제의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지목된 위버스매거진의 강아무개 실장을 직위해제하는 동시에 공식 사과문을 내놨다.
이재상 하이브 CEO는 "하이브 모니터링 문서 관련해 아티스트 분들, 업계 관계자 분들, 그리고 팬 여러분께 하이브 CEO로서 고개 숙여 사죄 말씀드린다"라며 "해당 문서는 업계 동향 및 이슈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여론을 사후적으로 취합하는 과정에서 작성됐다. 시장 및 아티스트 팬의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 리더십(경영진)에게만 한정해 공유됐으나 문서의 내용이 매우 부적절했다"고 사과했다. 그 와중에 해당 문서의 이용 목적을 두고 "전혀 사실이 아닌 역바이럴에 대한 의혹까지 불거졌다"라는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문서에 거론돼 피해와 상처를 입게 된 외부 아티스트 분들께 정중하게 공식적으로 사과드린다. 각 소속사에는 별도로 연락드려 직접 사과드리고 있다"며 "해당 문서를 공유받은 리더십의 문제 인식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CEO로서 해당 모니터링 문서 작성을 즉시 중단시켰다. 다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이드를 수립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모회사인 하이브를 비롯해 산하 레이블 경영진들에게 이 문서가 '대외비'로 매주 전달돼 온 만큼, 경영진은 문서가 작성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수신에 모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문서 작성만을 문제 삼아 직원이나 부서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욱이 이 업무를 선두에서 이끈 인물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깊은 친분을 가진 사이로 알려져 있어 애초에 방 의장의 지시 또는 허용 아래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결국 직접 책임을 지고 논란을 진화시켜야 할 입장은 방시혁 의장이라는 데 대중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지만 그는 경영진들의 뒤에 숨어 내내 무거운 침묵만 지키고 있는 중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해외에서는 이미 '하이브 게이트'라는 오명이 붙어 회사 브랜드에 잿가루가 뿌려졌다. 타사 뿐 아니라 자사 아이돌을 바이럴 목적으로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는 점도 드러나면서 하이브 산하 레이블 소속 아이돌들 사이에서도 회사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세븐틴의 멤버 부승관은 세 번째 '파묘'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대들에게 쉽게 오르내리면서 판단 당할 만큼 그렇게 무난하고 완만하게 활동해 온 사람들이 아니다. 충분히 아파보고 무너지며 또 어떻게든 이겨내면서 무대 위에서 팬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돌을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며 "우리들의 서사에 쉽게 낄 자격이 없다. 비단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우리는 당신들의 아이템이 아니다. 맘대로 쓰고 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앞서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아티스트는 죄가 없다" "그들을 이용하지마"라는 글을 올려 하이브를 에둘러 저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이브 내부에서 이미 회사를 향한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게 드러난 만큼,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수장으로서 방 의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해결에 나설 것인지에 국내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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