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적 양호하나 수주 확정 감감, 위기관리능력도 물음표…KAI “수주 좀 더 지켜봐달라”
그런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KAI도 1년 전과 비교하면 20~30% 올랐지만 비교적 상승폭이 크지 않다. KAI는 지난 10월 29일 실적 발표 기대감에 장 중 한때 6만 원을 돌파하며 최근 1년 기준 최고가를 기록하기는 했다. 하지만 KAI의 10월 29일 종가는 5만 7800원으로 마감했다. 올해 하반기 이후 중동 갈등 격화, 북한 도발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주가 흐름은 주주들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가다. KAI 주가는 2015년에도 10만 원대였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는데…
KAI의 3분기 실적은 증권가 기대치에 부합했다. KAI의 매출은 지난해 3분기 1조 71억 원에서 올해 3분기 매출이 9072억 원으로 9.9% 감소하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54억 원에서 763억 원으로 16.7% 증가했다. 다만 최근 KAI 실적 전망치는 가파르게 하향 조정된 상황이었다. 위경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새롭게 매출이 인식되는 프로젝트가 부재한 상황에서 오히려 소수의 프로젝트는 종료를 앞두고 있다”며 “매출 인식 규모가 축소되면서 매출 역성장이 불가피했다”고 분석했다.
엄밀히 말해 KAI가 3분기 호실적을 거뒀다고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KAI는 다른 방산주에 비해 환 위험에 많이 노출된 편으로 알려졌다. 3분기 들어 중동 분쟁 등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치솟으며 이익 훼손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760억 원대 영업이익을 지켜냈으니 실적 우려는 덜어도 된다는 것이다. KAI는 경영효율성 제고를 통한 판매비와 관리비 감소로 수익성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장의 실적이 아니다. KAI는 실적보다 신규 수주가 없다는 점이 아쉬운 요인으로 꼽힌다. KAI가 2022년 폴란드와 맺었던 FA-50 48대 수출 계약이나 지난해 말레이시아와 맺은 1조 2000억 원 규모의 18대 공급 계약 발표 이후 오랜 기간 신규 수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나 필리핀, 이라크,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수주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KAI는 3분기 실적 발표 때도 곧 수주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1조 7000억 원 규모의 UAE 수리온 수출 계약이 올해 안에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 우즈베키스탄과 1조 1000억 원 규모 FA-50 수출 협상이 진행 중이며, 필리핀과의 FA-50 추가 수출 계약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KAI가 수차례 수주 기대감을 냈다가 달성하지 못했다며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일례로 KAI는 미국의 고등훈련기(UJTS) 사업 수주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UJTS 사업자 선정은 이미 1년 6개월가량 지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해군이 훈련용 노후기 교체보다는 수상함, 잠수함 분야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당분간은 수주가 어려울 전망이다.
하나증권은 KAI가 연내 계약 체결이 가능한 국가로 필리핀, UAE, 이라크 정도를 꼽았고, 이 중 필리핀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FA-50 추가 도입 및 성능 개량 사업이 주요 내용이 될 전망이다. 다만 우즈벡 FA-50은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이 지연되고 있고, 이집트 역시 제안서 제출이 2025년 이후로 늦춰졌다고 하나증권은 설명했다.
KAI는 현재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KAI 관계자는 “수주가 확정될 때까지는 상당히 조심스럽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조금만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미래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
KAI 내부적으로는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수출 계약이 막바지 협상 중이고, 미국이 대선 이후 국방비를 증액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미래 전략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방산 경쟁사인 한화그룹은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육해공을 다 갖추게 됐고, LIG넥스원은 사족보행 로봇업체 미국 고스트로보틱스 경영권을 인수하며 미래 방산을 준비 중이다.
반면 KAI는 군용 및 민항기, 헬리콥터, 무인항공기(UAV), 위성 등 기체 자체에서는 다각화돼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가 탄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고만고만한 가성비 있는 항공기 업체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협력사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KAI도 신사업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KAI는 지난 10월 23일 “군용 미래형 신개념 항공기(AAV·Advanced Air Vehicle)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2031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어 향후 미래 우주모빌리티 사업에서 중장기적인 성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우주항공청 개청으로 KAI가 단연 돋보일 수 있는 기회였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KAI가 공기업이다 보니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며 “군과 관련한 업종 특성상, 위계질서가 강하고 그러다 보니 자칫 정권 리스크에 휘말리곤 한다는 점이 큰 약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산업계 다른 관계자는 KAI 조직 전체적으로 위기관리 능력이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최근 KAI가 폴란드에 수출한 FA-50 갭필러(Gap Filler·GF) 12대 중 11대가 가동 불능 상태라는 현지 보도가 있었다. 또 FA-50에 미국산 레이더 및 무장 장착이 불투명해 폴란드 공군이 요구하는 사안을 반영한 FA-50PL(Poland) 버전 36대의 적기 납품이 어렵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때문에 KAI 주가가 일시적으로 출렁인 바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당시 폴란드 보도는 폴란드 내의 정권 교체로 인한 ‘적폐청산’ 이슈 때문인 걸로 안다”며 “KAI는 폴란드 내의 반 KAI 세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투자자들에게도 관련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국내 방산사업을 위해 KAI에 새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한화그룹, 한진그룹, 두산그룹 등이 KAI를 욕심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KAI의 회사 규모가 너무 커 자금 마련 부담 때문에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현재는 다른 방산 기업의 규모가 더 커져서 얼마든지 인수합병(M&A)이 가능한 상황이다. KAI의 시가총액은 5조 원대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시가총액은 17조 원에 달한다. 산술적으로는 유상증자를 통해 인수가 가능하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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