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석식 소주·과일소주 대세, 막걸리·청주는 하향세…“일본 사케 멕시코 데킬라 같은 대표 주류 키워야”
한식진흥원이 2023년 8월부터 10월까지 베이징·호찌민·뉴욕 등 해외 주요 18개 도시에서 거주 중인 20~59세 현지인(재외 동포 및 한인 제외) 9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2023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4.7%가 한국 주류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주류를 섭취하는 주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맛이 있어서’라는 응답이 35.1%로 가장 많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드라마·영화 등에서 접해봤다’ 15.5%, ‘한류 스타가 광고·홍보하기 때문에’ 5.4% 등 K콘텐츠의 영향이라는 응답이 21%에 달한다는 점이다. 향후 또는 다시 한국 주류를 섭취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57.7%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를 계기로 한국 술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많아질 여지는 있다”며 “일시적인 유행에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으로 마케팅을 하거나 영상 등 주류 관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해외 시장에서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주류 수출액은 3억 2630만 달러로 나타났다. 2020년 2억 7000억 달러대까지 감소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회복세를 보였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소주(주세법상 증류식 소주, 희석식 소주 모두 포함) 1억 141만 달러(31.1%) △과일소주(리큐르) 9158만 달러(28.1%) △맥주 7659만 달러(23.5%) △기타곡물발효주 2680만 달러(8.2%) △막걸리 1469만 달러(4.5%) △과실발효주 766만 달러(2.4%) 등이다.
희석식 소주는 카사바 등 염가의 원재료에서 뽑은 전분을 발효하고 연속 증류해 얻은 알코올 도수 95% 이상의 주정을 물로 희석하고 감미료를 첨가한 술이다. 증류식보다 상당히 저렴하기 때문에 소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희석식 소주는 일본에서 탄생한 조주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주로 분류되는 증류식 소주와는 다르다. 증류식 소주는 일반적으로 상압 증류기에서 1~2번만 증류해 원료의 풍미를 살린다는 차이점이 있다.
과일소주는 희석식 소주에 과일향과 미량의 과일즙이 함유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15년 잠시 큰 인기를 끌었다가 시들었던 과일소주는 최근 해외 각지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쓴맛과 인공감미료 등에서 특유의 향이 난다는 이유로 희석식 소주를 부담스러워하는 외국인들에게 과일소주가 대체재로서 자리 잡은 모양새다.
국내 주류업계들은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추세다. 하이트진로는 과일소주의 지속 성장세에 맞춰 새로운 과일향 제품을 개발 및 출시하고 베트남에 첫 해외 생산 공장을 2026년 완공할 예정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12월 미국 주류회사 E&J 갤로(E&J GALLO)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올 1월부터 미국 소주 시장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올 4분기 결산이 안 나왔기 때문에 ‘아파트’의 파급 효과가 어떨지 미지수이지만, 이전부터 K팝이나 K드라마가 유행하면서 우리 술도 인기가 많아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실적이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해외 시장에서는 희석식 소주와 과일소주가 대세여서 우선 이들을 위주로 생산하고, 안정화가 되면 라인업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 같다”고 밝혔다.
소주는 선전하고 있지만 우리 전통주로 분류되는 막걸리와 한국식 청주(주세법상 약주)의 수출 실적은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막걸리의 수출액은 2021년 1580만 달러, 2022년 1568만 달러, 2023년 1469만 달러를 기록했다. 약주는 2021년 83만 7000달러, 2022년 82만 5000달러, 2023년 82만 달러다.
한편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술을 키워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우리나라 주류 수출입 현황 및 수출 증진 방안’ 보고서를 통해 “중국 바이주(백주), 일본 사케, 멕시코 데킬라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 대표 주류 브랜드를 개발하고 체계적·일관적 수출 지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국산 주류의 고급화·다양화를 지원하기 위해 국내 주류 기업의 연구·개발을 장려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10월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통주 주세 경감 대상을 2배로 늘린다는 방안을 추진한다. 1인 가구 증가와 식문화 변화 등으로 쌀 소비가 계속 줄자, 쌀 가공산업을 육성해 소비를 촉진한다는 취지다. 현재 전년 출고량 기준 발효주는 500㎘(1㎘=1000ℓ), 증류주 250㎘ 이하일 경우 감면율을 적용해 세금을 감면해주고 있는데, 이를 발효주 1000㎘, 증류주 500㎘ 이하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통상 발효주 한 병이 750㎖인 점을 고려하면 65만 병 생산자에서 130만 병 생산자까지 감면 대상이 넓어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증류주의 경우 소주 1병인 350㎖를 고려하면 70만 병 생산자에서 140만 병 생산자까지 감면 대상이 된다. 농업분야 저율 과세 정책에 따라, 현행법상 전통주로 분류되면 전통주는 납부세액의 50%를 감면받는다. 판매량이 늘어나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꺼리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 현상이 전통주 업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흑백요리사’ 방영 이전에도 한국 고급 음식 문화가 세계로 전파되는 추세였기 때문에 고급 한식과 페어링되는 한국 고급 술에 대한 수요도 많아질 것”이라며 “우리 술이 해외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에 정부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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