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회사 재직 A 씨에 ‘정보 유출’ 방첩법 적용…2014년 시행 이후 한국인 처벌은 아직 없어 주목
10월 29일 외교부의 린젠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한국 국민이 간첩 혐의로 중국 관련 부서에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주중 한국대사관에 통보를 했으며 필요한 편의를 제공했다. 불법·범죄 혐의를 법에 따라 조사·처벌하는 동시에 당사자들의 합법적인 권리를 보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언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체포된 A 씨는 안후이성 허페이의 한 반도체 회사에 근무 중이다. 한국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20여 년간 일했던 A 씨는 2016년 가족들과 함께 이주했고,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제조업체 중 하나인 창신메모리에 취업했다. 당시 창신메모리는 A 씨뿐 아니라 한국의 반도체 전문가 10여 명을 채용했다. A 씨는 창신메모리를 거쳐 중국의 다른 반도체 회사 2~3곳을 다녔다고 한다.
2016년 허페이에 본사를 두고 설립된 창신메모리는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급속도로 발전했다. 중국이 내세운 ‘반도체 굴기’의 상징적인 회사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전세계 D램 생산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창신메모리는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점유율 10% 정도로, 공고한 ‘빅3’ 체제에 균열을 낼 것으로 점쳐지는 곳이다.
2023년 12월 18일 허페이 국가안전국 수사관들은 A 씨를 간첩죄로 체포했다. A 씨는 5개월 넘게 현지 호텔에서 격리 심문을 받았고, 2024년 5월 검찰에 송치됐다. A 씨는 5월 26일부터 허페이의 한 유치장에 수감돼 있으며 2024년 11월 정식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국가안전국은 A 씨가 한국 측에 창신메모리 반도체 관련 정보를 유출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A 씨는 조사에서 ‘핵심 반도체 기술을 접할 권한이 없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반박했다고 한다.
A 씨에게 적용된 법은 2023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신방첩법’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14년 11월 1일 12기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방첩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국가 기밀 정보를 절취·정탐·매수·불법 제공’하는 것을 간첩 혐의로 규정하고, 강하게 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방첩법은 ‘간첩법’으로 불렸다.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 위기가 극에 달하던 2023년 4월 26일 14기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보다 강화된 방첩법을 개정하기로 의결했다. 개정된 방첩법은 7월 1일부터 시행됐으며 간첩행위의 정의를 확대하고,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을 골자로 했다. 국가안전국의 권한도 강화했다.
신방첩법엔 ‘중국의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활동’이라는 포괄적 정의를 전제로 대략 6가지의 세부 사항이 기록돼 있다. 기존 방첩법은 간첩행위를 ‘국가 기밀’에 한정했지만, 신방첩법은 국가 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문서, 데이터, 자료, 물품의 이전까지 포함하는 조항으로 확대했다.
신방첩법에 따르면 간첩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행정처분이 가능하며, 국가 안전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외국인은 입국이 불허된다. 아울러 간첩 혐의자는 물론 그와 관련된 단체와 조직 역시 국가안전국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신방첩법은 관광객에게까지도 적용되기 때문에 주요 서방국들은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2014년 공포된 방첩법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은 한국인은 아직 없다. A 씨 사례에 관심이 모아지는 배경이다. 중국에서 간첩죄 재판은 최소 2년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량도 무거운 편이다.
중국인들은 이번 당국의 조치에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인터넷, SNS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다. 한 유명 블로거는 “그동안 한국은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강하게 처벌해 왔다”면서 “이번엔 우리 차례다. 한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글을 올려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자신을 반도체 전문가라고 밝힌 한 누리꾼의 분석도 이목을 끌었다. 그는 “한국인 기밀 유출 사건은 미국을 향한 경고로 봐야 한다. 중국 반도체 기술을 가장 많이 유출하는 나라는 미국”이라면서 “미국이 우리를 향해 (반도체)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반도체 전문가는 언론에 나와 “지금 중국엔 해외에서 온 반도체 전문가가 너무 많다. 이런 일이 또 발생해도 전혀 놀랄 게 아니다. 방첩법이 유용하긴 하지만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면서 “중국 자체의 반도체 인재 양성을 서둘러야 한다. 이런 고급 기술을 언제까지 외국인 손에 의존할 것인가”라고 했다.
한국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글들도 쏟아지고 있다. “중국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을 전수조사해야 한다” “우주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엔 한국인들을 채용해선 안 된다” “A 씨 가족을 추방해야 한다” “A 씨 배후엔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삼성이 있다” 등과 같은 내용들이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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