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정보 검색서비스 키프리스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2006년 5월 ‘엔지매틱(ENZYMATIC)’이라는 상표를 출원했으며, 2008년 1월 등록을 마쳤다. 상품분류는 3류이며, 지정상품은 비누, 매니큐어, 마사지크림, 마스크팩, 립스틱 등 50가지이다. 이 상표는 존속기간인 10년이 지나 2018년 1월 소멸됐다.
아모레퍼시픽은 2018년 12월 ‘Enzymatic’이라는 상표를 다시 등록했다. 이전 상표와 비교하면 앞 글자를 제외한 모든 글자가 알파벳 소문자로 바뀐 것이 차이점이다. 상품분류는 3류이며, 지정상품은 화장품, 립스틱, 샴푸, 치약, 향수 등 20가지다.
LG생활건강은 2023년 2월 ‘엔지매틱 콤플렉스(Enzymatic Complex)’라는 상표를 출원했다. 계면활성제, 공업용 화학제, 부동액, 유압오일 등 지정상품이 16가지인 1류와 샴푸, 세면용품, 세제, 치약, 향수, 화장품 등 지정상품 20가지인 3류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미래 사업 활동을 위해 상표권 선점 차원에서 출원했다”고 밝혔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상표권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다양한 제품을 주기적으로 출시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립 제품이더라도 색상을 더 다양하게, 새로운 디자인의 패키지를 입혀 출시하다 보니 상표를 미리 선점해 두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부터 지식재산부문 아래 상표팀과 특허팀을 두고 국내외 상표권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LG생활건강도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두 업체 모두 상표권을 많이 출원 및 보유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엔지매틱 콤플렉스’는 상표 등록이 거절된 상황이다. 특허청은 2024년 8월 LG생활건강에 전달한 의견제출통지서를 통해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7호에 해당하여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 사유를 밝혔다. 이 조항은 ‘먼저 등록된 상표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는 등록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특허청은 ‘엔지매틱 콤플렉스’가 아모레퍼시픽의 ‘엔지매틱’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LG생활건강은 지난 10월 8일 아모레퍼시픽 상표 ‘엔지매틱’에 대해 상표등록 취소 심판을 특허심판원에 청구했다. 앞서의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에서 ‘엔지매틱’이라는 상표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자체 파악됐다”며 “우리 상표의 원활한 등록을 위해 상표 등록 취소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상표권 확보 차원에서 출원 및 등록을 했으나, 해당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LG생활건강 측이 제기한 심판에는 특별히 대응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공앤유 특허사무소의 공우상 대표 변리사는 “심판 청구일로부터 최근 3년간 국내에서 상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상표불사용취소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며 “상표를 사용하지 않았던 아모레퍼시픽 측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아모레-LG생건 10년 전에도 상표 공방전…결과는?
LG생활건강은 ‘로맨틱 나이트 인 시애틀(Romantic Night in Seattle)’이라는 상표를 2013년 3월 등록했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같은 해 7월 특허심판원에 상표등록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상표 ‘로맨틱(Romantic)’, 남성화장품 브랜드 ‘오딧세이 로맨틱’이 LG생활건강의 등록상표와 비슷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허심판원 제2부는 “외관은 다르나, 그 호칭과 관념이 서로 동일해 전체적으로 서로 유사한 상표”라며 “‘로맨틱 나이트 인 시애틀’ 상표를 보고 아모레퍼시픽의 ‘오딧세이 로맨틱’ 시리즈 상표 중 하나로 오인·혼동할 우려 또한 있다”고 판시하며 2014년 4월 아모레퍼시픽의 청구를 수용했다.
그러나 LG생활건강은 이 심판에 불복해 특허심판에 심결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결과는 번복됐다. 특허법원 제3부는 “로맨틱 나이트 인 시애틀은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들로서는 ‘로맨틱’, ‘나이트’, ‘시애틀’ 또는 ‘로맨틱 나이트’로 호칭할 여지가 있다”며 “‘로맨틱 나이트는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들에게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인식되고 일상생활이나 언론, 광고 등에서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로맨틱’만으로 간략하게 호칭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친숙한 ‘로맨틱 나이트’로 호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LG생활건강의 청구를 받아줬다.
아모레퍼시픽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수용했다. 대법원 제1부는 “‘로맨틱 나이트 인 시애틀’이 ‘로맨틱’ 부문만으로 분리 인식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일반 수요자나 거래자로 하여금 상품을 오인·혼동을 일으키게 할 우려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 제1부는 “원심의 판결은 정당하고 상표의 유사 판단 등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판시해 LG생활건강이 2015년 1월 최종 승소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