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주 신주인수권 제한 등 영풍 측 약점 정확히 노려…금융당국 불만에다 구주주 반발 ‘부메랑’ 될 수도
한편에서는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대결 구도 속에서 일반 주주들의 이해는 경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 등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커진다면 증자 이후에도 과반 확보는 어려울 최 회장에게 ‘부메랑’이 되돌아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당국까지 고려아연의 결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판에 뛰어들었다. 정부가 나서면 최윤범 회장 측 우호세력으로 분류되는 현대자동차와 한화, LG 등이 섣불리 신주 인수에 나서기 애매할 수 있다.
영풍·MBK가 공개매수를 위해 준비한 현금은 2조 3000억 원에 달하지만 아직 1조 3000억 원 이상이 남았다. 국민연금과 소액 주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장내 매집 등을 통해 과반 의결권 확보에 도전할 만하다. 이번 유상증자 신주 발행이 끝나고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행사할 의결권이 확정되는 12월 말이 돼야 승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 회장 측 신주의 3분의 1 확보 가능
고려아연이 지난 10월 30일 발표한 유상증자 계획은 여러 면에서 영풍·MBK의 약점을 정확히 노리고 있다. 우리사주조합에 신주의 20%를 배정해 3%가 넘는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대신 구주주(특수관계인 포함)의 신주인수권은 증자 물량의 3%로 제한했다. 특히 영풍과 MBK가 이미 특수관계인으로 묶였지만 최윤범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현대차, 한화, LG화학 등은 여전히 별도 주주다. 즉 이들 대기업들 각자가 신주의 3%까지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영풍·MBK는 많이 받아야 신주의 3%를 확보하는데 최 회장 측은 신주의 3분의 1(우리사주 20%, 최 회장·현대차·한화·LG화학 각 3%씩 12%)가량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실권주는 발행이 되지 않는다. 일반주주 신주 청약이 부진하면 발행량이 줄고 그만큼 최 회장의 신주 확보 비율도 높아진다. 지분율 상승폭이 더 커진다.
이 밖에도 유상증자를 통해 우호세력들의 참전 지원이 가능해졌고 고려아연의 자금 부담도 줄어들게 됐다. 일반주주 신주 발행이 늘어나면 최 회장 측 지분율 상승폭은 제한되겠지만 증자 대금 유입이 늘어나 고려아연의 자금력에는 보탬이 된다.
#심판 자처한 금감원…“공개매수→유상증자, 의도했다면 불법”
구주주 신주인수권 배제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상법 제418조 1항에 따라 주주는 가진 주식수에 따라서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자본시장법 제165조의6 1항은 주권상장법인에 대해서는 주주가 가진 주식수에 따라서 신주인수 청약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의 증자(제1호) 외에 불특정 다수(주주 포함)에게 신주인수 청약을 할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제3호)도 허용하고 있다. 고려아연 이사회가 결정한 일반공모 증자의 법적 근거다.
하지만 상법에서는 정하고 있지 않은 일반공모를 자본시장법에서 상장법인에만 허용하는 이유는 기업공개(IPO·상장) 과정에서 주주 외의 자에게 신주를 발행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경영권 경쟁 중인 회사에서 상법상 기본 권리인 주주들의 신주인수권을 3%로 제한하는 조건이 합법적인지 여부도 법적 논란을 부를 만하다. 영풍과 MBK 측이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는 명분이다.
이와는 별개로 금융감독원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회계담당 부원장은 지난 10월 31일 브리핑에서 “최근 상장법인의 공개매수, 증자 과정에서 드러난 행태를 보면 과연 이사회 멤버들이 독립적인 관점에서 정당한 근거를 갖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회가 (공개매수 진행 후 유상증자 등을) 다 아는 상태이고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만 한 것이라면 공개매수신고서에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이라며 “입증의 문제이고 현재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시장법 제178조는 부정거래행위 등의 금지를 정하고 있다.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나 중요사항의 기재 또는 표시를 누락하거나 시세 변동을 도모할 목적으로 위계(僞計)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처벌은 자본시장법에서 가장 무거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유상증자 ‘묘수’냐 ‘악수’냐
고려아연은 공개매수에 따른 유동주식수 감소로 주식분산 요건이나 거래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관리종목 또는 상장폐지 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어 일반공모 유상증자가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주환원의 일종인 자사주 매입이 끝나자마자 구주주들의 참여 기회는 배제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은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사기 충분하다.
법원이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최윤범 회장 측 지분율이 영풍·MBK를 추월할 수 있지만 여전히 과반에는 못 미친다. 지분율 7%가 넘는 국민연금 등 신주인수권에서 배제된 주주들이 등을 돌리면 오히려 영풍·MBK에 유리해질 수 있다. 승산이 높아진 영풍·MBK가 장내 매집을 계속하면 주가가 오르고 그만큼 최윤범 회장 측의 신주인수 비용 부담도 커진다. 유상신주 발행가는 청약일(12월 3~4일) 직전 3~5거래일 주가가 기준이다. 최대 30% 할인율이 적용되지만 영풍·MBK가 장내 매집을 계속하면 주가가 올라 최 회장 측 신주인수 비용 부담도 늘어난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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