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파병 따른 군사 공백 우려 분석…규모 1만 2000명으로 알려졌으나 향후 늘어날 수도
북한 인민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에 전격 파병됐다. 6월 북한은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사실상 군사 동맹에 가까운 조치였다. 협정 체결 이후 약 4달 만에 북한은 속전속결로 파병을 진행했다.
북한이 최후의 외화벌이 수단인 용병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해석이 나왔다(관련기사 “코인만도 못하네…” 김정은 주머니로 들어갈 ‘인민군 목숨값’ 비밀). 북한 인민군이 과거 러시아를 돕는 용병기업이었던 바그너그룹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10월 28일 리투아니아 공영방송 LRT는 우크라이나를 돕는 비영리단체 ‘블루옐로’ 요나스 오만 대표 발언을 인용해 “10월 25일 우크라이나가 통제하고 있는 쿠르쿠스 지역에 투입된 북한군이 첫 교전에서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요나스 오만 대표는 우크라이나군이 인공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군이 대거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첫 교전에서 획득한 인공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만 대표는 “첩보에 따르면 북한은 총 8만 8000명을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전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북한이 남북 군사분계선에서 벌였던 각종 행보가 ‘파병 징조’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군이 연초부터 활발하게 군사분계선에 지뢰를 매설했고, 10월 15일엔 ‘남북 평화 상징’과도 같은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폭파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북한이 취한 조치와 관련해 ‘공격군 지위’를 포기한 뒤 농성전에 돌입하는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북한군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파병을 결정한 뒤 북한이 그동안 깔아 온 포석의 진짜 의도가 드러나게 됐다.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루트를 전면 차단한 것 자체가 파병의 징조였던 셈이다. 파병 이후 혹시 모를 군 공백에 대비해 남쪽과 통하는 모든 길을 걸어 잠근 것으로 보인다.”
한 대북 소식통은 “한국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다”면서 “북한 당국은 항상 한국의 군사적인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 지도부 입장에선 안보가 곧 권력 수호 열쇠이기 때문에 국군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미 질적인 측면에서 한국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판단이 선 북한이 파병으로 인한 인력 공백을 예상하면서 우선 남쪽 루트를 걸어 잠근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남측에서 경수로 건설 등 사업을 위해 인력이 파견됐을 때 가장 놀랐던 부분 중 하나가 북한이 남쪽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해안에도 철조망을 설치한 뒤 경계를 서고 있었던 부분”이라면서 “그만큼 북한의 대남 경계 태세는 만약의 만약까지 대비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에 파병을 하게 되면 파병 군인 수만큼 북한 현지에 있는 병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우려는 차원에서 지난 75년 동안 없었던 봉쇄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지뢰를 매설하는 시간보다 지뢰를 해체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면서 “북한이 공을 들여 지뢰를 매설한 만큼, 다시 지뢰를 해체할 가능성은 미미하다”고 했다. 소식통은 “대남 장애물 차원으로 ‘소로’에 지뢰를 매설한 뒤 마지막 단계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큰 길들을 TNT로 폭파한 것이 그동안 북한이 보인 봉쇄 행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병력 공백에 따라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우선 남쪽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충돌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차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면서 “그 모든 초점은 북한이 김정은 지도 체제를 수호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고 했다.
북한은 2024년 들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부각시키며 통일 필요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경의선과 동해선을 폭파하던 시점을 전후로 한국 군 당국이 보낸 무인기가 평양에서 삐라를 살포했다고 주장하며 열을 내기도 했다. 북한 외무성은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평양 상공 삐라 살포 사건과 관련해 “천인공노할 만행”이라고 했고, 후속조치로 TNT로 남북연결도로를 폭파했다.
도로폭파 책임 소재를 남쪽으로 전가하는 한편, 내부적으론 파병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의선 도로 폭파 과정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관했다. 복수 소식통은 ‘김정은이 직접 참관할 정도로 경의선 도로 폭파를 중요하게 취급한 실마리가 파병 이후에 풀렸다’고 했다.
북한은 인민군 1만 2000여 명을 파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주변국 매체 등에 따르면 향후 북한군 파병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북한이 인민군을 러시아로 보낸 이상, 군사 공조 체계가 단기적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걸어 잠근 일련의 조치를 보면 우리 군이 북쪽으로 못 올라오게 하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남쪽 통로를 완전히 봉쇄한 상황을 감안하면, 향후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로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같은 민족인 인민군이 머나먼 타지에서 떨어지는 포탄 속, 생사 갈림길에 놓이는 상황 자체가 상당한 비극”이라면서 “더 큰 비극은 인민군이 러시아에서 생환해 북한으로 돌아올 경우엔 전선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안보에 적지 않은 위협을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국회에서 여야가 여전히 북한 규탄 결의안 채택에 지지부진한 상황은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10월 21일과 22일 ‘북한 러시아 파병, 군사도발 및 대북제재 강화 촉구 결의안’, ‘북한 전투병 러시아 파병 규탄 및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협력 촉구 결의안’을 각각 발의했다. 민주당은 10월 29일 ‘북한 전투병 러시아 파병 철군 및 한반도 평화안정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결의안을 통해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협력, 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력을 강조했고, 민주당은 대북전단 살포 규제 촉구 및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하거나 군을 파병하는 것은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행위라는 내용을 결의안에 담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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