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학 단장 부임 직후부터 ‘속전속결’ 업무 처리…“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 다해”
KIA는 2024시즌 87승 2무 55패로 2위 삼성 라이온즈를 9경기 차로 따돌리고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수 있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올라온 삼성을 4승 1패로 꺾고 37년 만에 광주 홈구장에서 우승 축포를 쏘아 올리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KIA의 2024시즌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2월 스프링캠프 직전 김종국 전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로 낙마했고, 시즌 초중반에는 윌 크로우, 이의리, 윤영철, 제임스 네일 등 선발 투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그럼에도 KIA가 올 시즌 통합 우승을 이룬 배경은 무엇일까.
#‘단장’이란 바로 이런 것! 속전속결의 심재학 단장
KIA 구단은 2023년 5월 8일 신임 단장으로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심재학을 영입했다. 당시 KIA 단장 자리는 장정석 전 단장이 선수에게 뒷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해 3월 말 해임된 뒤 공석이 된 상황이었다.
심 단장은 KIA 구단에 합류하자마자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수습하는 데 앞장섰다. ‘단장의 시간’인 스토브리그에서는 프리에이전트(FA) 혹은 비FA 장기 계약을 통해 전력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주전 2루수 김선빈과는 3년 총액 30억 원의 FA 계약을 맺었다. 김선빈은 올 시즌 116경기 타율 0.329, 139안타, 9홈런, 57타점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588(17타수 10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최형우한테는 1+1년 총액 22억 원을 안기며 예우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김태군과는 3년 25억 원에 비FA 다년 계약을 맺었다. 최형우는 정규시즌 타율 0.280에 22홈런, 109타점과 한국시리즈 타율 0.333(15타수 5안타), 1홈런, 4타점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태군은 시즌 내내 주전 포수로 활약했고,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 출전하며 안정감 있는 리드를 보여줬다. 타석에서도 4차전 만루홈런을 터트리는 등 팀의 대승에 큰 힘을 보탰다.
올 시즌 심 단장이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외국인 투수의 부상과 교체였다. 1선발로 점찍었던 윌 크로우가 5월 초 팔꿈치 내측 측부인대 부분 손상을 받자 심 단장과 국제 스카우트 파트에선 올 시즌부터 리그에 도입된 ‘임시 대체 외국인 선수’ 제도를 활용해 캠 알드레드를 데려왔다. 알드레드가 9경기에서 3승 2패 평균자책점 4.53의 성적을 거뒀지만 KIA는 발 빠르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통산 36승을 거둔 좌완 에릭 라우어를 영입한다.
심 단장이 가장 크게 절망했던 순간은 에이스 제임스 네일의 턱관절 부상과 수술이었다. 외국인 선수가 포스트시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8월 15일까지 등록돼 있어야 했는데 제임스 네일이 부상을 당한 시기가 8월 24일이라 대체 외국인 선수를 데려와도 포스트시즌에 활용할 수 없었다. KIA는 대만에서 대체 외국인 선수 에릭 스타우트를 급히 영입했다. 에릭 스타우트는 4경기 1승 1패 평균자책점 5.06의 성적을 올리고 정규시즌을 마친 후 한국을 떠났다. 다행인 건 제임스 네일의 미친 회복 속도였다. 심 단장의 기민한 움직임으로 부상 다음 날인 8월 25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네일은 수술 9일 만에 야구장에 출근했고, 구단이 준비한 단계별 프로그램을 착실히 소화한 끝에 한국시리즈 1차전과 4차전 선발 등판해 KIA의 통합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심 단장은 우승 소감으로 “KIA에서 선수 생활했을 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항상 마음에 걸렸다”며 “그런데 올 시즌 이범호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단, 그리고 프런트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여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물을 품에 안았다”면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응원을 보낸 KIA 팬들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범호 감독과 손승락 수석코치의 의기투합
올 시즌 KIA가 통합 우승을 이룰 수 있는 배경에는 ‘초보’ 타이틀을 달고 한 시즌을 이끈 이범호 감독의 끈끈한 리더십이 존재한다. 스프링캠프 도중 1981년생의 나이에 프로야구 역대 최연소 감독으로 사령탑에 오른 이범호 감독은 젊은 초보 감독을 향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었다.
2010년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약한 뒤 이듬해 국내 복귀를 선택할 때 KIA에서 적극적으로 선수 이범호 영입에 나서 KIA 유니폼을 입었고, 2017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만루홈런을 터트리며 KIA의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주인공으로도 활약했다. 선수 생활 은퇴 후 이범호 감독은 2020년 스카우트로 시작해 2021년 퓨처스(2군) 감독, 2022~2023년 1군 타격코치를 맡았다. 선수로 9년, 코치로 4년간 KIA에서 동고동락했던 경험들이 ‘초보 감독’ 이범호를 우승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시즌 퓨처스 감독을 맡다 지난 6월 29일 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1군 수석코치를 맡아 이범호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손승락 수석코치는 한국시리즈를 치르며 새삼 이범호 감독의 지도력에 감탄했다고 말한다.
“1차전이 비로 인해 중단됐을 때, 3차전 대구에서 패했을 때도 감독님은 단 한 번도 선수들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 긴장하고 있는 선수들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장난도 치고 웃으면서 살갑게 다가갔다. 그렇다고 감독님이 고민과 걱정이 없었던 게 아니다. 단 그 걱정과 고민을 선수들에게 절대 내색하지 않았고, 그 기운이 코치들한테도 전달돼 코치들도 항상 미소를 지으며 선수들을 대할 수 있었다.”
손승락 수석코치는 이범호 감독을 통해 지도자로서 새로운 배움을 가질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퓨처스 감독을 맡았을 때는 강한 스타일로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범호 감독님을 통해 부드러운 리더십이 때로는 더 카리스마 있고, 선수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독님은 자신보다 항상 선수들이 우선이었다.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더 즐겁게 야구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선수들을 배려하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셨다. 한 번은 감독님한테 “정말 대단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선수를 배려하고 신뢰하는 모습에서 큰 울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수석코치로 이범호 감독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내 지도자 인생의 엄청난 전환점이 될 것 같다. 그 정도로 많은 걸 배운 시간들이었다.”
#주장 나성범이 믿고 의지했던 선수들
올 시즌 주장을 맡았던 나성범은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을 ‘소통’을 중시하는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내가 주장이다 보니 다른 선수들보다 감독님과 대화 나눌 기회가 많았다. (FA를 통해) KIA에 처음 왔을 때부터 타격코치님으로 인연을 맺은 터라 감독님이 되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감독님이 그렇게 선수들을 대해주셨다. 언제든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이었다.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어려운 시즌을 재미있게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나성범도 시즌 초반 부상 선수의 속출로 위기를 느꼈다. 그러나 이범호 감독이 있었기에 선수들은 믿고 따를 수 있었다.
“올 시즌 유독 선발 투수들의 부상이 많았다. 내가 보기에도 정상적인 팀 운영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감독님은 황동하, 김도현 등을 대체 선발 투수로 활용하며 공백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정규시즌 우승까지 큰 흔들림 없이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나성범은 KIA에서 처음 주장을 맡게 되면서 투수조에서는 양현종한테 야수조에서는 김선빈한테 많이 의지하며 지냈다고 말한다.
“(김)선빈이가 주장을 해봤기 때문에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줬고 큰 도움이 됐다. (양)현종이 형한테도 의지를 많이 했다. 어느새 우리 팀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가 두 명(양현종, 최형우)밖에 없다. 35세 고참이 된 터라 후배들한테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신인 선수들이 들어오면 내가 먼저 가서 말을 걸었다. 감독님부터 선수들 모두 좋은 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한국시리즈 5차전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묻자 나성범은 1차전 비로 연기된 상황을 꼽았다.
“경기 전부터 비가 내리고 행사 등으로 경기 시작 시간이 많이 늦춰진 상태라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1차전을 맞이 했다. 1차전이라 양 팀 모두 긴장했고, 나를 포함해 선수들도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서스펜디드 경기로 연기되면서 이틀 동안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서스펜디드로 치른 1차전은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야 분위기를 잘 타서 2차전도 잡을 수 있다고 봤는데 예상한 대로 하루에 2승을 거머쥐게 됐다. 만약 그날 1승 1패를 이뤘다면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을지 모른다. 2경기를 다 잡았기 때문에 3차전에서 패했음에도 자신감을 갖고 4차전에 임할 수 있었다.”
나성범은 NC 다이노스에서 활약할 때 2020년 팀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한 바 있다. 그때와 지금 우승의 감흥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다.
“NC에서의 우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야구장도 고척돔에서 중립 경기로 치른 상황이었고, 관중석의 팬들도 거리 유지를 위해 띄엄띄엄 앉아 있었던 터라 이번처럼 팬들과 함께 춤추고 흥에 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NC 때는 샴페인도 터트리지 못했다. 우승은 그때도 지금도 똑같이 기쁘다. 단 팬들과 함께 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컸던 것 같다.”
이범호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우승 공약으로 선수들과 함께 ‘삐끼삐끼’ 춤을 추겠다고 약속했다. 우승 확정을 짓고 팬들 앞에 나선 이범호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단체 ‘삐끼삐끼’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나성범은 이를 두고 “감독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우리 감독님이 처음 아닐까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 KIA는 우승의 달콤함이 보너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에 따르면, 올해 포스트시즌은 16경기(와일드카드 결정전 2경기, 준플레이오프 5경기, 플레이오프 4경기, KS 5경기)가 열렸고, 입장권 수입으로 약 146억 원을 벌었다. KIA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해 17억 5000만 원을 먼저 받고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35억 원을 더 보태 모두 52억 5000만 원을 챙긴다. 지난해 통합 우승을 차지한 LG 트윈스는 약 29억 4300만 원을 받았다. KIA는 이보다 1.8배 많은 금액을 수령하게 됐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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