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그만큼 복잡해졌다. 과거에는 저금만 착실히 해도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예측불허라 고도의 판단 능력을 요구한다. 집 한번 잘못 사고팔면 평생 후회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사소한 계약 실수로 10년 벌어놓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릴 수 있다.
직장인 김수영 씨(가명·59)는 몇 년 전 세무당국으로부터 4억 원의 양도세를 추징당했다. 아내와 공동명의로 10년 이상 거주 중인 집 한 채를 처분했을 때만 해도 별걱정이 없었다. 1주택자여서 양도세와 비과세 혜택을 받고 나면 세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된 일이었지만, 아내와 처제가 수도권에 공동명의로 투자한 오피스텔이 화근이었다. 시가 2억 원 남짓한 오피스텔이었다. 세무당국에서는 ‘실질 사용 원칙’에 따라 오피스텔도 주거용으로 사용했으니, 주택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결국 다주택자가 되어 오피스텔 가격의 2배에 달하는 양도세를 낼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지금 생각해 보니 오피스텔을 먼저 팔았어야 했는데, 부동산에 너무 무지했다”라고 토로했다.
내가 실수한다고 해서 봐줄 사람은 없다. 인성도 좋고 인문학도 좋지만 당장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재무 지능이다. 배운 사람일수록 형이상학적 지식은 숭상하고 형이하학적 지식은 은근히 폄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돈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을 돈밖에 모르는 물신주의에 빠진 사람으로 비하한다. 조선시대의 주류 이념이었던 주자성리학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MZ세대로부터 세상 물정을 모르는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핀잔을 받기 십상이다. 요즘은 재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되기 쉽다. 청약제도, 양도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인형 퇴직연금(IRP), 연금저축 등을 모르는 것은 조선 시대에 한자를 모르는 것과 같다. 이른바 현대판 금융 문맹이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디지털 문맹이다. 베이비붐 세대 이상의 장노년층이 금융 문맹과 디지털 문맹 등 이중 문맹인 경우가 많다. 생존 차원에서라도 부동산이나 주식, 세금, 금융상품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는 패가망신의 상징이었던 주식 투자에 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이 같은 사실은 국토교통부의 ‘주택 자금조달계획서의 자금조달 방법별 구분’ 자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전국 주택 매수자들이 낸 자금조달계획서를 보니 자금 출처로 주식이나 채권 비중이 작지 않았다. ‘주식·채권 매각 대금’을 활용하겠다고 신고한 비중의 경우 30대가 17.0%로 가장 높았고, 20대가 16.4%로 그 뒤를 이었다. 중장년층인 40대(13.7%)·50대(11.4%)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적인 자산축적 방법이자 안전자산인 예·적금 못지않게 변동성이 큰 주식 투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위험 친화적으로 자산을 굴리고 있는 것이다. 세태가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돈이 세상 전부는 아니지만, 투자에서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알 것은 알아야 한다. ‘재무 지식 쌓기’는 재산 관리나 불리기 차원을 넘어 자신과 가족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다. 투자 공부를 하라는 뜻이지, 대박을 꿈꾸라는 얘기는 아니다. 대박을 꿈꾸다가 쪽박을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한두 사람이랴. 위험과 수익의 적절한 비중 조절이 필요하다. 투자는 속도전이 아니다. 방향만 맞는다면 속도는 문제가 될 게 없다.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속도만 쫓으면 부자는커녕 중산층이 되기도 어려울 수 있다는 점 잊지 말자.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