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연합뉴스 |
일본유신회를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일본유신회는 야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대외적인 극우성향은 비슷할지언정 일본 국내 주요정책이 판이하게 다른 이시하라와 하시모토가 손을 잡은 건 2013년 일본의 총선에서 승리를 노린 야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간문춘>을 중심으로 이시하라와 하시모토가 결합한 내막을 살폈다.
과거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일삼고 최근에는 조어도 매입 추진으로 중국과 영토갈등을 불러일으킨 이시하라 전 도쿄지사. 지난 10월 말 4선으로 재임 중인 도쿄지사직을 돌연 사임하고 11월 13일 ‘태양당’을 창당한다며 기자회견을 했다. 이시하라는 “이대로 가면 일본이 망한다”며 “지사를 그만두면 노후를 즐기고자 했는데 생각을 바꿔 여생을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창당을 결심한 경위를 설명했다.
태양당은 기존의 우익정당 ‘일어나라 일본당’의 의원 5명을 데려와서 이름만 바꾼 형태로 이시하라가 20대 때 쓴 소설 제목 <태양의 계절>에서 이름을 따왔다. 태양은 일장기를 상징한다. 이시하라는 기자회견장에 이전부터 누누이 강조한 개헌 이야기를 꺼냈다. 전쟁과 군대보유를 금지한 일본헌법을 뜯어고친다는 것이다. 또 “정계에 뛰어들어 일본의 폐단인 관료제를 타파할 작정”이라 강조했다.
관료제의 폐단을 운운하자 직설 화법으로 소문난 현직 관료인 다나카 마키코 문부과학상이 크게 반발했다. 다나카는 “한낱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도쿄지사직을 도중에 내던지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노망든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리며 “자식이 불쌍하다”고 덧붙였다. 이시하라의 정치적 행보가 현 일본의 최대 야당 자민당에서 전 간사장을 지낸 이시하라의 장남 노부테루(54)의 입장을 곤란하게 한다는 소리다. 태양당이 영입을 추진했던 의원 중에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 초 이미 이시하라와 장남 노부테루 간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올해 안에 창당을 하겠다는 아버지 이시하라를 두고 자민당 소속 7선 의원인 장남은 “칼을 들고 돈을 훔치는 강도 같다”고 비난했다. <주간현대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시하라의 차남이자 배우인 요시즈미(49)는 “형이 ‘늙은 아버지가 이제 주변에 이용당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 11월 17일 일본유신회와 합당을 발표하며 하시모토(왼쪽)와 악수하는 이시하라. |
그런데 불과 이틀 만인 11월 17일. 이시하라는 갑자기 감세일본과의 합당을 모두 백지화하고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와 합당을 발표하고 자신이 당 대표에 올랐다. 대표대행에 오른 하시모토는 그간 성추문 등으로 지속적으로 인기가 떨어졌는데 이시하라의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하시모토는 위안부 강제연행이 없었다는 주장을 해 우리나라에서 악명이 높은 인물. 그는 지역정당 ‘오사카유신회’를 꾸려오다가 올 9월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고자 ‘일본유신회’로 이름을 바꿨다. 하시모토는 태양당과의 합당조건으로 감세일본의 합당철회를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추진하는 지방분권제에 대해 감세일본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시하라는 하시모토가 요구하는 대로 감세일본을 바로 내쳤고 감세일본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한 정치평론가는 “감세일본이 결혼하고 며칠 만에 바로 바람을 피우러 나간 남편을 둔 새댁이 됐다”고 평했다.
이시하라는 자신이 대표에 오르는 대신 당명을 ‘일본유신회’에 양보했다. 그런데 당명뿐만이 아니다. 대내정책을 모두 기존의 일본유신회 정책, 즉 하시모토의 안에 맞춘 것. 이를테면 여태까지는 원전 추진은 물론 핵개발, 핵무장까지 강하게 주장했지만, 놀랍게도 하시모토의 정책대로 원자력발전을 2030년까지 폐지한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이시하라는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조어도 문제도 하시모토의 안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했다. 이시하라는 조어도 영유권은 중국과 전쟁으로 해결하자고 몇 차례나 밝혀온 바 있다.
이렇게까지 이시하라가 하시모토에게 저자세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으로는 이시하라의 삼남 히로타카(47)에 대한 애정이 거론되고 있다. 히로타카는 이시하라가 자식 4형제 중 가장 끔찍이 아끼는 아들로 현재 자민당의 선거구 지부장을 지내고 있다. 히로타카는 외국계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한 차례 의원을 지낸 후 2009년 선거에서 낙마했다. 이시하라는 주변에 자주 “히로타카가 나랑 제일 닮았다. 생각도 비슷하고 머리도 우수하다”고 자랑하며 “좀 잘 봐 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주간문춘>에 따르면 이시하라는 합당 이전부터 일본유신회에 어떻게든 히로타카를 넣어주고 싶어 했는데, 이번 합당을 계기로 히로타카를 일본유신회의 도쿄지역대표로 밀어주는 식으로 하시모토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고 한다. 유독 젊은 층에 지지율이 높은 일본유신회에 40대의 히로타카가 지역대표로 들어가면 다음 선거에 출마해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전부터 이시하라의 자식사랑은 유별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하라는 과거에는 장남 노부테루를 전폭 지원했다. 장남이 자민당 대표가 되게끔 해 언젠가는 총리로 만들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부테루가 당내 경선에서 번번이 떨어지고 대중적 인기도 얻지 못하자 꿈을 접고 이번에는 다른 자식, 즉 삼남에게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한편 하시모토 측에서는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대부분 오사카유신회 초창기 후원자들이다. 지역 살리기를 표방하며 뜬 하시모토의 지역정당 오사카유신회가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역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동안 하시모토를 겪어보니 오로지 돈과 권력에만 관심이 있다”며 “그는 사람을 교묘하게 이용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 예로 하시모토에게 오사카지사로 출마를 청하자 그는 지사를 하면 연봉이 대체 얼마인지부터 물었다고 한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