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알파고 이후 바둑계 천지개벽…이제는 50수까지 인공지능 따라하는 시대
알파고 이후에 바둑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이세돌 전 바둑기사가 내놓은 대답이다. 1일 이세돌(41) 전 바둑기사가 서울대에서 ‘인공지능과 창의성의 미래’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진행했다. 이세돌은 바둑을 예술로 바라보는 자신만의 철학부터 알파고와의 대국, 그리고 인공지능이 가져온 바둑계의 변화까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강연에 참석한 김범용 씨가 강연 내용을 요약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500회 가까이 공유되며 큰 화제가 됐다. 다음은 김 씨 강연 내용 요약과 보도를 통해 나온 내용을 종합한 내용이다.
이세돌은 다섯 살에 바둑을 시작해 열두 살에 프로기사가 된 천재 기사다.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입문과정을 설명했다. 이세돌은 “바둑을 보드게임이나 마인드 스포츠가 아닌, 예술로 배웠다. 바둑을 둘이 만드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바둑을 뒀다. 만약 바둑을 보드게임이나 마인드 스포츠라고 생각했다면 바둑에 인생을 걸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기사가 된 후의 수련 과정도 남달랐다고 한다. 이세돌은 “프로가 되는 순간 아무도 건들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혼자서 공부했다. 다른 사람이 공부하자고 하지도 않았고, 혼자서 길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독자적인 길은 그만의 바둑 철학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알파고와의 대국은 이세돌의 바둑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이세돌은 “처음 알파고와의 대국 제안을 받았을 때 구글에서 이벤트 하는 줄 알고 별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진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실제 대국은 예상과 달랐다고 한다. 이세돌은 “1국 때 사실상 30수에 끝났다. 내용적인 의미는 없었다. 1국 끝나고 웃었는데 그건 심각성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실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2국의 패배는 더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이세돌은 “2국 때 사진은 굉장히 심각하다. 최선을 다해서 두었는데 힘 한 번 못 써보고 졌고, 거기서 오는 충격, 절망감이 컸다. ‘이거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3국부터 작전을 짰다고 한다. 이세돌은 “인공지능은 많은 대국을 통해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가진다. 수가 많아질수록 인공지능이 계산을 잘할 것이니 극초반에 승부를 보자고 생각했으나 실패했다”면서 “기계는 계산을 하지만 인간은 경험을 통해 감각을 익힌다. 인간은 돌이 놓여야 계산을 할 수 있어서 한두 수 둔 것 가지고 계산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소위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들었던 4국에서의 유일한 승리에 대해서도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이세돌은 “4국 때는 극초반에 승부를 보면 안 되고 돌이 많아지면 또 안 된다고 생각했다. 50수까지는 바둑이 나쁘더라고 끝나지 않는 정도로 그냥 견뎠다. 돌이 더 많아 지면 알파고가 완전해질 것 같아서 100수 전에 승부를 보기로 했다”면서 “70-80수에서 승부를 보자고 했고, 버그가 일어났다. 정수가 아닌 것 같지만 일단 가자고 한 것도 처음이고, 초반에 버티자고 생각한 것도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그 지점에서 승부를 본 것이 창의성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세돌은 “버그를 일으킨 게 뭐가 대단한가. 초기 버전이라 그런 것이다. 완전히 작전을 짜고 들어간 것이다. 중요한 건 타이머였는데 1분 안에 두게 돼 있었다. 만일 이를 2분, 3분으로 늘렸다면 버그가 안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오직 이기기 위해서, 버그를 일으키기 위해서 한 것이다. 이건 바둑이라고 할수 없다. 한 번도 그렇게 바둑을 두지 않았다. 이것이 은퇴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바둑의 본질적 가치로 ‘복기’를 강조했다. 이세돌은 “복기하면서 가장 창의적인 수가 나온다. 승패를 완전히 떠났기 때문이다. 거기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복기가 바둑의 핵심이고 굉장히 재미있다”면서 “이기면 진 사람 잡아놓고 복기하기 그런데, 지면 명분이 있으니 한두 시간 정도 복기한다”며 복기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어 이세돌은 알파고 대국이 끝난 후에도 복기를 했다면서 “알파고와 복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 프로기사를 불러서 복기했는데 절망적이었다”면서 “이창호도 이거 이길 수 없으니 나머지 판은 편하게 두라고 했다. 이창호도 4국처럼 두는 방법을 알았을 것 같다. 알파고의 약점을 파고들 방법을 알았을 건데, 거기에 담겨 있는 뜻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는 급격한 변화도 설명했다. 이세돌은 “2017년부터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깔렸다. 기사들이 공동연구 대신 인공지능과 대국하고 암기한다. 50수까지 인공지능의 수를 외우고 그 다음에는 인공지능의 감각을 익힌다. 그런 식으로 바둑을 배웠다면 나는 바둑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안 하면 점수가 안 난다”고 말했다.
바둑에서의 창의성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보여주었다. 이세돌은 “알파고 이전에는 창의성이 없는 바둑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감을 주지 않는 바둑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기고 지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둑에서 창의성은 90% 이상,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이면 창의성이 없는 바둑이 이길 수는 없고, 창의적으로 두어야만 이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명국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이세돌은 “명국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은퇴할 때까지 못 만들었다. 혼자 잘 두어서는 안 되고 상대방도 잘 두어야 하는데 한 수 한 수 책임을 지지 않으면 명국이 될 수 없다. 명국을 만드는 게 목표인 프로기사들이 굉장히 많다”고 아쉬워했다.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바둑의 본질적 변화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이세돌은 “알파고 관계자가 말하기를 최선의 수를 찾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는데 자본이 너무 들어서 승률을 높은 수를 찾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딱 봐도 둔 게 이상하다. 그 당시는 승률이 높은 수라는 개념도 생소했다. 기괴하다고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이세돌은 그렇기 때문에 알파고와의 명국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세돌은 “알파고는 최선의 수를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국이 불가능하다. 바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복기다. ‘너는 왜 이렇게 뒀느냐’ 대화를 해야 바둑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인공지능은 대화가 불가능하므로 명국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현재 바둑계의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세돌은 “기사들이 50수까지는 인공지능 보고 따라 한다. 예술은 정답이 없어야 예술인데 이건 그냥 보드게임이 맞다. 이전의 기보는 현재 바둑 교육에 전혀 쓰이지 않는다. 기보에 역사적 가치는 있을 수 있지만 내용적 가치는 없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바둑을 미술에 비유하기도 했다. ‘수학이나 이론 물리학 하는 다른 학자와 만나 대화하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하는데, 바둑의 경우는 이와 다른가’라는 질문에 이세돌은 “모여서 생각을 공유하면 뭐가 나오나. 기사들끼리도 그런 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탑 랭커들은 그 자리에 없다”면서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 있고 그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미술과 비슷하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예술가에게 ‘이렇게 그려라’, ‘어떻게 해라’ 이러면 싫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세돌은 자기만의 바둑 스타일을 만들려고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만들어졌다. 스타일을 만들려고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에게 승패도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이세돌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승패에 집중하면 안 된다. 나중에는 수익 생각하게 되고, 수 읽기 능력, 집중력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게 되지만, 그런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빠른 나이에 은퇴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세돌은 “자부심을 느끼며 바둑을 했고, 다른 사람에게 바둑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자기 자신에 대해 한심한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이세돌은 “바둑 세계가 AI를 따라 정답만을 찾고 있는데, 예술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창의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또한 이세돌은 바둑에서 승률은 창의성과 비례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세돌은 “승률과 창의성은 비례한다. 이창호의 바둑을 처음 본 일본 기사들이 ‘이게 뭐지?’라고 했다. 이창호의 바둑을 두고 창의적이라기보다는 계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창의적이다. 이창호 이전에는 20수, 30수만 넘어가도 누가 두는지 알 수 있었으나, 이창호는 30수 이상을 둬야 이창호인 줄 알 수 있었다”면서 “이창호 이전에는 형세 판단, 끝내기를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았다. 반면 이창호는 형세 판단, 끝내기를 상당히 중요시했다. 처음에는 이를 굉장히 이상하게 봤다. 형세 판단, 끝내기로 이끈 건 새로운 뭔가를 만든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게 굉장히 재밌다. 아마추어는 이창호 바둑을 재미없다고 하지만 프로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밌다. 기력이 올라갈수록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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