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정보를 넘긴 통신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 재판도 곧 시작된다. 이 소송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주범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68) 의붓조카 조용래 씨(56)가 제기한 사실이 확인돼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조 씨는 최서원 씨 아버지 최태민 씨의 의붓아들 조순제 씨 장남이다. 정치인도 언론인도 아닌 조 씨는 통신조회를 당한 이유가 미궁에 빠져 있다고 했다.
#"미친 사람들" 격노가 부메랑으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1부가 지난 1월 정치인과 언론인 등의 통신자료를 대거 조회한 데 따른 후폭풍은 아직 진행형이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각 통신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3176명의 통신 이용자 정보를 조회했다. 검찰이 수집한 통신자료는 주민등록번호 등을 포함해 총 1만 5880건으로 집계됐다.
검찰은 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수사 과정에서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전해졌다. 20대 대통령선거 사흘 전인 2022년 3월 6일 언론사 뉴스타파가 '김만배-신학림 녹취'를 보도함으로써 윤석열 당시 후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등 혐의로 김만배 씨 및 뉴스타파 기자와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긴 사건이다.
정치권에선 야당을 중심으로 검찰의 이런 행보를 '불법 정치 사찰'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수사에 필요한 통신조회라도 법원의 영장발부(허가)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법 개정안을 줄줄이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만 박주민·이성윤·황정아 의원 등이 나섰다.
다만 개정안의 현실화 가능성은 미지수다. 여야가 사정에 따라 언제든 입장을 맞바꿀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인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당시 대선후보였던 윤 대통령 부부 및 국민의힘 의원 89명의 통신조회를 했을 때만 해도 국민의힘이 '불법 사찰'을 주장, 윤 대통령은 "미친 사람들 아니냐"고 격노했었다.
#법원 "위법 없음"…시민단체 "법이 문제" 헌재로
결국 시민사회에서는 재판을 받아보자는 움직임으로 번졌다. 앞서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이 2022년 2월 공수처 통신조회 문제를 제기한 소송의 경우 최근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올 2월 원고 패소에 이어 지난 10월 24일에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통신조회는 합리적 수사 범위라는 취지에서다.
이 소송은 2021년 공수처가 이성윤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현 민주당 의원)의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사건 관련 공소장 유출 등 의혹을 수사한 게 계기가 됐다. 공수처는 수사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과 기자 및 변호사 등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조회해 사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37단독 김민정 판사는 "통신자료는 이용자의 인적사항 등 최소한의 정보로 한정된다"며 "수사에서 취득한 비밀은 엄수 의무가 있으므로 통신자료 제공에 따른 사익 침해 위험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2부(재판장 지상목)도 같은 이유로 한변 측이 낸 항소를 기각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통신정보 강제 취득을 허용한 법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이 지난 10월 30일 "검찰의 통신이용자정보 수집행위는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 및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구체적으로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중립적 법관의 판단을 거친 영장이 필수고 △통신정보 수집 근거가 된 전기통신사업법이 '수사상 필요'라는 포괄적 요건을 규정함으로써 △대통령 1인 수사를 위해 3000명 넘는 사람의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해 '최소침해' '과잉금지' 원칙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현실적 무리' vs '근거 너무 포괄적'
전문가들 전망은 다양하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수백수천 건의 통신조회를 할 때마다 일일이 영장을 받긴 현실적 무리라는 시각이 있다. 반면 검찰이 포괄적 사유로 과도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구조 자체는 사실이므로, 이는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헌 결정도 기대해 볼 만하다는 분석도 있다.
전범진 변호사(새솔 법률사무소)는 "통신조회는 일반적 사법 절차가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특별히 인정되는 제도라 영장주의 등 일반적 사법절차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수사의 비밀성을 지키고, 인권도 침해하지 않는 적정 기간 안에 통신조회 사실을 통지한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바라봤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인 정지웅 변호사(법률사무소 정)는 "법리만 놓고 보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며 "아무리 수사기관이라지만 사용자의 동의 없이 사생활은 물론 표현의 자유마저 너무 손쉽게 제한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또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기본권 제한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다"며 "그 제한은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 최소한'의 방법이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모든 통신 사용자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과도한 권한 행사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검사 출신 박진현 변호사의 경우 유보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는 "청구인들 입장에선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항"이라며 "통신조회 조건이 일반적인 문구로만 기재돼 있고, 구체적 요건은 일체 정해져 있지 않은 까닭에 헌재로서도 위헌 결정을 내릴 여지 자체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수사에 필요한 인적사항조차 임의로 확인 못 하게 만들면,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필요한 수사를 안 하게 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인적사항을 유출하는 등의 행위가 있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수사기관이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자체를 당장 문제로 보긴 힘들다"고도 강조했다.
#통신사 책임론도…"검찰이 달라면 줘야 하나"
검찰의 통신조회 여파는 통신사로도 번진 상태다. 각 통신사는 검찰 요구에 맞춰 가입자들 정보를 넘겼지만 이 같은 사실을 고객들에 알리지는 않았다. 이에 최근 SK텔레콤(SKT) 가입자 가운데 한 명은 이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고소인은 조용래 씨였다. 그는 소장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전달받은 통신조회 주요 사항은 이름과 전화번호뿐이었다"며 "하지만 SKT에 직접 신청해 받은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에는 그 외에도 주민등록번호·전화번호·주소·가입일·해지일 등까지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SKT는 검찰이 보낸 공문서에 의거해 저의 정보를 제공했으나, 통신사가 검찰 요구에 응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며 "SKT가 개인정보를 넘김으로써 고객 법익을 침해한 셈"이라고 바라봤다. 특히 "SKT는 제가 정보 제공 배경을 물었을 땐 '답변 의무가 없다'며 대답을 거부했다"고도 말했다.
조 씨는 그러면서 "법 어디에도 통신사가 고객의 통신자료를 영장 없이 외부에 제공할 법적 근거는 명시돼 있지 않다"며 "SKT가 고객의 '피의사실'에 기반한 통신사실 조회와 혼동했거나, 검찰 요청을 확대해석하고 적극 수용하며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재판의 첫 변론기일은 오는 11월 20일 오후 2시 10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열린다. SKT 관계자는 "재판에서 다룰 사안이므로 구체적인 입장 등은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단 SKT는 법원에는 준비기일을 앞두고 "통신정보를 제공한 사실 자체는 다투지 않겠으나, 법률을 위반한 사항은 전혀 없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박근혜-최태민 일가' 폭로 조용래 씨 "검찰은 사후 통지라도 하지…"
조용래 씨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폭발시킨 이른바 '조순제 녹취록'의 주인공이다.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 씨의 의붓아들인 조순제 씨의 장남이자 최서원 씨의 의붓조카다. 이 녹취록은 최태민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내용이 여럿 담겨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조 씨는 2017년에는 오랜 기간 박 전 대통령 집사를 지낸 모친 증언을 토대로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 씨 일가 및 전남편 정윤회 씨 등까지 얽히고설킨 각종 인연과 흑역사를 자세히 기록한 책 '또 하나의 가족'을 펴기도 했다.
조 씨는 2023년 두 차례, 올해 한 차례 검찰 통신조회를 당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와 비교할 필요도 없이 1980년대에 견줘도 비정상 같다"며 "옛 시절 권력은 그나마 악랄해도 투박하기라도 했는데, 현 권력은 기괴하단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통신조회를 당한 이유 뭐라고 보는지.
"원래 알고 지내는 언론인들이 많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관련 기자 등도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들과 통화를 자주 나누긴 했다. 그런데 평범한 일반인인 저까지 왜 검찰 통신조회를 당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박근혜 정부 때도 같은 사례 있었나.
"당시는 검찰의 통신조회 사후 통지가 의무가 아닌 때였다. 그래서 직접 확인해보진 못했다."
―'3차례 조회'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는지.
"사실 검찰의 지난 8월 통지 이전부터도 통신조회 당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주변 지인들 귀띔으로 올 4월 SKT에 직접 확인했다. 그 결과 지난해 10, 11월과 올해 1월 총 3차례 통신조회가 이뤄졌다더라. 확인 과정이 쉽진 않았다. 통신사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제 개인정보를 검찰에 넘긴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통신사는 검찰에 넘긴 사실도 고객에 알려야 할 이유가 없다더라. 기업이 법적 의무나 강제 규정이 있는 사항만 이행한다는 게 과연 올바른가."
―정계, 언론계 제외한 지인 가운데 같은 사례 있는지.
"많다. 몇몇 언론인들과 들렀던 카페나 양꼬치 가게 사장도 검찰 통신조회를 당했다고 한다. 그 분들이 지금 검찰 수사와 무슨 관계가 있겠나. 이런 식으로 일반인까지 무작위 통신사찰을 했다는 게 아직도 안 믿긴다."
―통신사 상대 소송 배경은.
"검찰은 조회사실을 통지라도 해주는데 정작 통신사는 고객에 아무런 사실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검찰이 국민 통신정보를 무작위 조회하는 현실도 문제지만, 기업의 이 같은 행태도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승소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지.
"완전 승소도 쉽진 않겠지만, 완전 패소도 나오진 않을 것으로 본다. 고객으로서 온당한 서비스를 못 받았으므로, 그간 낸 통신료 일부라도 돌려받는 등 '부분 승소'는 적어도 가능하다고 예상한다. 우선 3000만 원 이상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했다. 이는 3000만 원 이하 재판은 판결문도 없이 약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현실도 고려해서다. 설령 소액만 보상받게 되더라도, 법원이 어떤 법적 근거로 판결을 내렸는지는 기록을 남겨 놓고자 한다."
―다른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소송은 기업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소비자의 사소한 항의로 비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는 승소나 패소로 갈리겠지만, 상징성이 매우 큰 만큼 사법부 판단이 어떨지 궁금하다. 판결문에 담길 내용도 마찬가지다. 많은 분들이 관심 있게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