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 압박 속 본사 잔류 직원 처우 불안감 고조…신설 회사 업무공백 우려에 사측 “신규 인력 충원 정예화 전문화 방침”
#전출에 희망퇴직에 '뒤숭숭'
지난 11월 4일까지 시행한 신설 기술 전문 회사 전출 희망자 접수 결과 KT넷코어(기존 KT OSP)로 1483명, KT P&M으로 240명이 전출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희망퇴직의 경우에는 총 2800여 명이 신청해 KT 직원 수는 기존 대비 23% 감소한 1만 5000여 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KT는 지난 10월 21~24일과 25~28일 두 차례 전출 신청을 받았으나 28일 돌연 2차 전출 신청 마감 일자가 11월 4일까지 연장됐다. 전출 신청 인원이 KT가 기존에 목표했던 수치에 미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KT는 처음부터 구체적인 목표치를 세운 적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앞서 배포된 ‘현장인력구조 혁신방안’에 따르면 KT는 신설 자회사 KT OSP와 KT P&M 설립을 발표하고 각각 3400명과 380명을 전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희망퇴직까지 포함한 인력 조정 대상이 5750명에 달해 KT 내부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자 지난 11월 4일 오전 김영섭 KT 대표이사 사장이 경영진을 대동한 채 사내방송을 통한 설명회를 열어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잔류를 택한 직원들은 상당수가 마음을 돌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KT는 2002년 민영화 이후 2003년 이용경 전 대표이사 사장 시절에 5497명, 2009년 이석채 전 회장 때 5992명을, 2014년 황창규 전 회장 시절에는 8304명의 특별 명예퇴직을 단행했다.
김영섭 대표는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혔다. 당시 KT 직원 주주들이 대규모 구조조정 실시 여부와 관련해 질의하자 김 대표는 “취임 직후 임직원에게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다고 약속했다.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을 왜 안 믿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위적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말을 바꿨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김 대표는 4일 사내방송으로 진행한 설명회에서 “구조조정이 아니라 합리적인 구조의 혁신”이라고 해명했다.
전출 압박이 지속되자 불안감을 느낀 KT 직원들은 10월 18일 ‘KT 분사 구조조정 반대 직원모임’이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전출 신청 마감날인 11월 4일 오후 기준 1200명가량이 해당 채팅방에 들어왔다. 한 직원은 “16일 노조 간부들이 절대 찬성할 수 없다며 농성을 열기까지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너무 실망감이 들고 배신당한 기분이 든다”라고 밝혔다.
KT는 신설 법인 전출 및 사내 직무 전환 기회 제공 등과 관련해 10월 17일 노사 간 협의를 거쳤다고 밝혔으나 여론은 냉담하다. 노조위원장이 조합원 의사를 묻지 않고 직권 조인했기 때문이다. 2015년 대규모 구조조정 당시 노사 합의서에 직권 조인을 해 조합원에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적 있는 KT노조는 이후 임금단체협상 등을 제외하면 조합원 투표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규약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미영 KT 새노조(제2노조) 위원장은 “이미 잔류 직원들을 오지로 발령내겠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실제로 관리자들의 협박에 가까운 전출 압박 때문에 김 대표가 사과도 했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살과 돌연사가 워낙 많아 ‘죽음의 KT’라고 불린 적이 있는데 또 재연될까봐 두렵다”라고 지적했다.
#"실무자 퇴직 많아 업무공백 우려"
전출 인원이 목표치에 미달한 만큼 신규 자회사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KT의 통신 경쟁력이 저하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케이블매니저(CM) 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밝힌 한 직원은 “적은 인력으로 돌릴 수 있는 업무가 절대 아니다. 지금 실무자급이 아닌 관리자급 위주로 전출 신청을 한 상황이고 업무 노하우가 있는 분들이 남거나 퇴직한 경우가 많아 업무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신규 채용을 한다고 해서 당장 이 공백을 메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호계 KT 새노조 사무국장은 “처음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전화국을 세울 때 그 아래 매설한 케이블과 관로가 전부 KT 것이다. 당연히 다른 통신사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산이 많고 그걸 유지 보수하는 데는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든다”며 “통신은 KT의 근간이나 다름없고 영업이익도 통신 영역에서 거의 나오는데 핵심 부문을 외주화하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2018년 KT는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사고 때문에 마포·서대문·중구 지역의 유·무선 통신망이 모두 마비되는 사고를 겪었다. 당시 소상공인들이 영업 피해를 입었다. 2021년에도 전국 규모로 KT의 유·무선 통신망에서 접속 장애가 발생해 KT 인터넷 가입자를 포함해 증권거래 시스템, 카드 결제 시스템 등 KT IDC를 이용하는 기업의 서비스도 모두 마비되는 사고가 있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최근 들어서 네트워크 장애가 많이 발생하는데 지금처럼 원활하게 인력 수급이 안 되고 경력자가 많지 않다면 유지 보수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본사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굉장히 빨리 막았는데 계열사로 업무를 이관한 상태에서도 그럴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자회사를 만들어서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화하면 당연히 서비스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상태로는 통신대란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렇게 원가 절감하느라 서비스 품질과 만족도가 낮아질 경우 고객이 이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잔류 직원들의 경우 ‘토탈영업TF(태스크포스)’로 발령나 직무 재교육을 받고 영업 현장에 재배치된다. 본사 복귀 옵션을 쥐고 자회사인 KT클라우드로 전출됐던 직원들도 복귀 후 토탈영업TF로 배치될 전망이다. 다만 토탈영업TF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4일 고충림 인재실장은 설명회에서 ‘현재 영업망이 없는 지역으로 영업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정도의 계획만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형남 교수는 “정체도 불분명한 수천 명짜리 영업TF라니 인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신설 자회사는 신규 채용을 하고 해당 업무를 맡고 있던 직원들은 KT 내부에서 활용이 안 되니까 이중삼중으로 비용이 드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용희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는 “KT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사업 방향을 생각해 결단을 내린 거겠지만 신설법인의 필요성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었다. 당분간은 인력 활용의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네트워크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분야 기술 전문 자회사를 설립한 것이고 향후 급격히 인력 감소가 일어나는 영역에서 신규 인력을 충원해 정예화, 전문화에 나설 방침”이라며 “내년 1월 출범을 목표로 설립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4일 법인 설립 등기 신청을 완료했고 업무 관련 IT 시스템 또한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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