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흥행해도 손실 보는 현상 잦아져…하반기 초 대비 거래량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
이 같은 현상은 상장일 거래량 급감, 특히 개인의 거래량이 크게 감소한 데 비롯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모가 인플레이션 탓에 공모주 수익이 줄어들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기업공개(IPO) 기업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공모가 인플레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며 IPO 시장이 정상화되는 단계로 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 투자자들보다 정보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모주 청약을 할 때 기관 투자자들의 수요예측 참여 건수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참여 건수가 높다는 것은 기관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 공모주의 수익성을 높게 점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개인 투자자들은 대체로 참여 건수가 2000건을 넘으면 해당 기업이 수요예측에서 흥행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동안 IPO 시장은 기관 투자자들의 수요예측 참여 건수가 높다면 상장 첫날 손해를 볼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올해 하반기 IPO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10월 21일까지 상장했던 23개 기업 중 참여 건수가 2000건을 넘은 18개 기업은 시초가가 공모가보다 같거나 높았다. 이 중 1개 기업을 제외한 17개 기업은 종가도 공모가보다 높았다.
앞선 5개 기업의 평균 참여 건수는 2292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탑런토탈솔루션, 성우, 클로봇은 올해 상장 기업 중 참여건수가 10위 안에 들 정도로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시작하더니 내내 그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조짐은 10월 24, 25일 상장한 씨메스와 웨이비스라는 기업부터 나타났다. 이들의 공모가는 각 3만 원, 1만 5000원이었다. 두 기업 모두 시초가가 공모가보다 높은 수준으로 결정되며 장을 시작했지만 장 시작 10분도 안 돼 무너졌다. 주가가 계속 공모가보다 낮은 수준에 머무르더니 끝내 반등하지 못하고 장을 마쳤다. 웨이비스는 올해 기관 투자자들의 참여건수가 가장 높은 기업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수급 감소에 있었다. ‘일요신문i’가 하반기 IPO 기업들의 상장일 거래량을 분석한 결과 최근 상장한 기업들의 상장일 유통물량 대비 거래량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2일부터 10월 25일까지 상장한 참여 건수 2000건 이상 기업 20곳의 거래량은 상장일 유통물량 대비 평균 1081% 높은 것으로 계산됐다. 반면 앞의 5개 기업의 주식 거래량은 상장일 유통물량 대비 평균 354%로 약 3분의 1 낮은 결과를 나타냈다.
거래량은 상장일 주가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 유일한 '따따블'(공모가 대비 4배 상승) 기업인 티디에스팜의 거래량은 상장일 유통물량 대비 2975%로 25개 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거래량이 상장일 유통물량 대비 1000%를 넘는 기업은 7곳으로 이들의 상장일 매도 시 수익률은 최소 76%에서 300%로 계산된다.
기업별로는 지난 1일 상장한 에이럭스가 전체 25개 기업에서 거래량 최하위를 기록했다. 상장일 유통물량 대비 거래량은 216%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올해 하반기 상장한 참여건수 2000건 미만 기업 6개 기업과 비교해도 최하위에서 두 번째다. 성우, 클로봇, 에이치이엠파마도 21~23위에 자리했다. 탑런토탈솔루션은 13위로 집계됐다.
투자자별로는 개인 거래량이 급감했다. 같은 기준으로 20개 기업 평균 개인 매도‧매수량은 상장일 유통물량 대비 1004%, 1055%였으나 앞의 5개 기업은 300%, 343%로 낮았다.
개인 거래량이 감소한 가장 큰 이유로는 공모주 수익률 감소가 거론된다. 상장 기업은 상장 당일 폭발적인 거래량 때문에 단기 차익 실현을 노리는 이른바 단타족들의 ‘성지’다. 올해 상반기 상장 기업의 상장일 최고가 매도 시 공모가 기준 평균 수익률은 163%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기준 하반기 상장 기업의 평균 수익률은 63%에 불과했다. 앞의 5개 기업을 제외하더라도 수익률은 74%에 그쳤다.
평균 수익률이 줄어든 이유는 기관 투자자들의 '묻지마 투자'로 공모가를 상장 전부터 높여놨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IPO 시장은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기대감 때문에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공모주 1주를 더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이 때문에 기관 투자자들은 수요예측 시 상장 기업들이 희망하는 공모가액 밴드 최상단 이상의 가격을 적어 내고 있다. 그 결과 지난 5일 기준 올해 하반기 상장을 마친 기업 26곳이 희망 공모가액 밴드 최상단 이상의 가격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수익은커녕 손실을 보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IPO 시장에 발을 뗐을 가능성도 있다. 1일까지 상장을 마친 하반기 기업 25곳 중 24곳이 상장일 개인 매도량보다 매수량이 많았다. 평균적으로는 49% 높았고, 최소 25%에서 최대 74%까지 차이가 있었다.
한국증권학회 회장인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통상적으로 투자자들은 처분 효과에 따라 매도를 결정한다. 처분 효과는 자신이 이익을 본 주식은 조금이라도 빨리 팔고, 손해를 본 주식은 늦게 파는 현상을 의미한다. 상장일 주가가 반짝했다가 우하향하는 현상이 짙어지고 최근에는 공모가 이하로 가격이 되니까 주식 팔려는 투자자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본전 생각에 추가로 주식을 매수하는 투자자들도 적잖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례로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기관 투자자마저 손해를 보면서 이들의 IPO 묻지마 투자는 누그러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11월부터 진행된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에 대해서는 기관 투자자들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6일 기준 수요예측을 마친 6개 기업 중 기관 투자자들의 참여건수 2000건을 넘긴 기업은 2곳에 불과했다.
이준서 교수는 “전쟁 국가보다 수급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현재 국내 전체 주식시장의 수급이 좋지 않다. 수급이 안 좋을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는 곳은 IPO 시장”이라면서도 “다만 그 동안에 IPO 시장 과열로 공모가가 과대 평가됐고, 수요도 비정상적으로 많이 몰렸는데 이번 사례들을 통해 IPO 시장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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