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 감독 총액 26억 원 조기 재계약 선물
#1981년생 감독의 성공시대
올해 KIA 타이거즈를 통합 우승으로 이끈 이범호(43) 감독이 그랬다. KIA 구단은 11월 3일 "이범호 감독과 계약 기간 3년 총액 26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각 5억 원, 옵션 6억 원)에 재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이범호 감독은 지난 2월 KIA 사령탑에 오르면서 2년 총액 9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각 3억 원)에 사인했다. 그러나 올해 이 감독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KIA는 잔여 1년 계약을 상호 합의 아래 파기하고 9개월 만에 계약 기간과 총액을 모두 늘린 새 계약서를 선물처럼 내밀었다. 이 감독은 새로운 계약 내용에 따라 내년부터 2027년까지 3년 더 KIA 지휘봉을 잡는다.
현재 10개 구단 감독 최고액 계약은 이강철 KT 위즈 감독과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받은 3년 24억 원(계약금 6억 원, 연봉 각 6억 원)이다. 10개 구단 최연소 사령탑이자 유일하게 1980년대생인 이범호 감독이 계약 기간 내 옵션을 모두 채우면, 두 베테랑 감독을 제치고 현역 최고 대우를 받는다. 이범호 감독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구단에 감사드린다"며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데도 재계약으로 신뢰를 보내준 구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광주에서 우승을 결정한 그 날의 함성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통합 우승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KIA팬의 응원과 성원 덕분"이라며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임기 내에 다시 우승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범호 감독은 2000년 한화 이글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뒤 2010년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2011년 KIA로 이적했다. 2019년 KIA에서 은퇴할 때까지 KBO리그 통산 타율 0.271, 안타 1727개, 홈런 329개, 1127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통산 만루홈런 역대 1위(17개)에 이름을 올리는 등 득점 기회에 강한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 감독은 은퇴 후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소프트뱅크에서 코치 연수를 받아 한·미·일 야구를 두루 섭렵했다. 2021년 KIA 퓨처스(2군) 감독을 역임했고, 2022년부터 1군 타격코치로 활약했다.
늘 '준비된 감독감'으로 꼽히긴 했지만 이 감독이 KIA 사령탑에 오른 타이밍은 예상보다 빠르고 다소 느닷없었다. 김종국 전임 감독이 후원 업체에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프링캠프 출국 직전인 1월 29일 갑자기 해임됐다. KIA는 부랴부랴 팀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지도자와 다른 팀 전임 감독 등 팀 안팎에서 여러 후보를 검토하다 보름 만에 이범호 타격코치의 내부 승격을 확정했다. 호주 캔버라 스프링캠프에서 KIA 타자들을 지도하던 이 감독은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수습한 뒤 "구단과 팬이 나에게 기대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초보 감독'이 아닌 'KIA 감독'으로서 임기 2년 안에 반드시 팀을 정상권으로 올려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KIA는 이범호 감독 부임 첫해인 올 시즌 승률 0.613(87승 2무 55패)의 성적으로 정규시즌 왕좌에 올랐다. 이어 한국시리즈에선 정규시즌 2위 삼성 라이온즈를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물리치고 2017년 이후 7년 만의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감독 이범호'의 성공시대가 그렇게 찾아왔다.
#김태형의 28억 원, 역대 최고액
KBO리그에서 감독이 총액 20억 원 혹은 연봉 5억 원 이상의 몸값을 받는 건 한국시리즈 우승이나 그에 버금가는 성과를 내야만 가능한 특급 대우다.역대 최고액 계약을 해낸 사령탑은 2020시즌을 앞두고 두산과 3년 28억 원(계약금 7억 원, 연봉 각 7억 원)에 재계약한 김태형 감독이다.
현재 롯데를 이끌고 있는 김태형 감독은 2015년 두산과 처음 감독 계약을 하면서 2년 총액 7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각 2억 원)을 받았다. 2017시즌을 앞두고는 몸값이 훌쩍 뛰어올라 단숨에 역대 두산 감독 최고 대우인 3년 20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원) 고지를 밟았다. 2015년을 정규시즌 3위로 마친 두산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역전 우승을 일군 데다 2016년엔 완벽한 투타 밸런스를 앞세워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까지 차지한 덕분이다. 당시엔 감독들의 임기가 점점 짧아지는 추세였고, 특히 초보 감독들은 계약기간을 다 못 채우고 물러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김태형 감독은 보기 드문 재계약을 최고 대우로 이뤄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산은 김태영 감독의 두 번째 임기 내내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고, 2019년 또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과정도 기적과 같았다. 그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SSG 랜더스를 2위로 밀어내고 극적으로 역전 우승을 차지하는 반전 드라마를 썼다.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인 키움 히어로즈를 4승 무패로 제압해 두 번째 계약 마지막 시즌에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김 감독의 통산 승률은 역대 프로야구 감독 중 유일한 6할대(0.611·435승 5무 277패)였고, 통산 662경기 만에 400번째 승리를 따내 역대 최소 경기 400승 기록도 다시 썼다.
김태형 감독의 몸값도 두산의 성적만큼 가파르게 상승했다. 두산은 이전까지 역대 최고액 계약 사령탑이었던 염경엽 감독(당시 SSG·3년 총액 25억 원)을 뛰어넘는 조건으로 김태형 감독과 세 번째 계약을 했다. 김 감독과 염 감독의 연봉은 7억 원으로 같았지만, 김 감독의 계약금 7억 원은 역대 그 어떤 감독도 받지 못한 금액이었다.
김 감독은 이후 2021년까지 두산을 7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면서 남다른 통솔력을 발휘했다. 다만 이번엔 계약 마지막 해인 2022년 성적이 좋지 않았다. 두산은 9위까지 처지면서 창단 이후 가장 낮은 순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고심 끝에 김태형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이승엽 감독을 새로 맞아 들였다. 김 감독은 1년 동안 방송 해설위원으로 일한 뒤 올해 롯데 지휘봉을 잡고 현장에 복귀했다.
#이강철이 만든 KT의 가을 역사
이강철 KT 감독도 김태형 감독처럼 보기 드물게 한 팀과 두 번의 재계약을 해낸 사령탑이다.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과 첫 통합 우승을 모두 이끈 게 그 비결이다. 이강철 감독은 2019시즌을 앞두고 '막내 구단' KT의 제3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3년 총액 12억 원에 사인했다. 계약금이 3억 원, 연봉이 매년 3억 원이었다. 그러나 KT는 아직 계약 기간이 한 시즌 넘게 남은 2020년 10월, 이 감독과 3년 총액 20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각 5억 원)이 적힌 계약서를 새로 썼다. 정규시즌이 막 끝나고 아직 포스트시즌은 시작도 하지 않은 시점이라 더 파격적이었다. 이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향후 세 시즌(2021~2023년) 동안 감독의 리더십에 더 힘을 실어 주겠다는 의미였다. 그만큼 KT 구단에는 '창단 첫 5강'이 한국시리즈 우승만큼 감격적인 성과였다.
그럴 만도 했다. 막내 구단인 KT는 2015년 1군에 진입한 뒤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네 번째 시즌인 2018년 처음으로 탈꼴찌에 성공했지만 한 계단 올라선 정규시즌 9위였다. 동시에 "선수층이 얇은 KBO 현실에 10개 구단은 역시 너무 많다", "팀이 늘어나면서 리그 경기 수준도 떨어졌다" 등 비판의 중심에 섰다. 2년 먼저 창단하면서 좋은 유망주들을 싹쓸이한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2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뤘기에 더 비교됐다.
KT는 이강철 감독 부임 첫해 정규시즌 6위까지 올라서면서 처음으로 '5강 경쟁'의 치열함을 맛봤다. 4년 동안 한 시즌 60승도 해보지 못한 팀이 70승을 넘겼고, 창단 후 처음으로 승률 5할까지 달성했다. 2020년엔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살얼음판 같던 상위권 순위 전쟁을 이겨냈다. 10월 22일 잠실 두산전에서 두 차례나 한 이닝 8득점을 기록하면서 마침내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이라는 오랜 꿈을 이뤘다.
물론 KT에 창단 첫 가을야구를 선사한 이강철 감독의 '서사'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선수 이강철'은 1990년대 최강팀 해태(현 KIA)에서 10년 연속 10승을 기록한 에이스였다. 스타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고, 당대를 호령했다. '지도자 이강철'은 그렇지 못했다. KIA,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두산을 거치면서 13년 동안 코치만 맡았다. 선수 시절 자신의 후배였던 감독들을 보좌하며 묵묵히 일했다. 그런 그에게 처음 프로 지휘봉을 맡긴 팀이 KT다. 사령탑에 오른 '감독 이강철'은 하위권에 머물던 팀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면서 구단 역사에 가장 뚜렷한 족적을 새겼다.
KT와 이강철 감독의 '조기 재계약' 성과도 눈부셨다. KT는 사령탑 재계약 첫해인 2021년 창단 최초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이강철 감독은 '명장' 반열에 올랐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에 4승 무패로 완승해 일사천리로 정상에 올랐다. 직전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해 한국시리즈 문턱을 넘지 못했던 KT 입장에선 완벽한 설욕전이었다. KT는 2022년에도 정규시즌 4위에 올라 가을 야구를 경험한 뒤 이강철 감독 계약 마지막 해인 지난 시즌 다시 정규시즌 순위를 2위까지 끌어올렸다. 시즌 초반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면서 한때 최하위까지 추락했지만, 부상 선수들이 복귀한 6월 중순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 상위권으로 재도약했다.
그러자 KT 구단은 이번에도 포스트시즌이 시작되기 전 이 감독에게 3년 총액 24억 원의 재계약을 선물했다. KT의 지휘봉을 2026년까지 이강철 감독에게 믿고 맡긴다는 의미다. KT는 올해도 정규시즌을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4위 두산에 2승을 따내 준플레이오프 무대까지 밟았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4위 팀이 '업셋'에 성공한 건 KT가 최초였다.
#우승 후 재계약, 그러나…
우승 후 재계약은 감독들에게 가장 달콤한 열매다. 그러나 몸값이 오른다는 건 그만큼 더 큰 기대와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NC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던 이동욱 감독과 SSG의 창단 첫 우승을 지휘했던 김원형 감독은 이런 이유로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이동욱 감독은 2019년 NC의 제2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2년 총액 6억 원(계약금 2억 원, 연봉 각 2억 원)에 사인했다. 그해 NC가 5위에 올라 포스트시즌에 복귀하자 구단은 이동욱 감독과의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하고 계약금 1억 원을 추가한 뒤 연봉을 2억 5000만 원으로 올렸다. 그 후에도 NC는 계속 상승세를 탔다. 2020년엔 창단 후 처음으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NC 구단은 "이 감독이 선수단, 프런트와 합리적으로 소통하고 유망주를 고르게 기용해 팀의 미래도 준비해왔다"며 크게 만족했다. 이동욱 감독은 결국 다음 시즌 도중인 2021년 5월, 3년 총액 21억 원(계약금 6억 원, 연봉 각 5억 원)에 재계약했다. 그러나 그 보람을 누린 시간은 딱 1년이었다. 3년 재계약의 첫 시즌인 2022년 5월, 이 감독은 성적 부진과 선수단 내부의 사건·사고에 책임을 지고 해임됐다. NC가 배출한 첫 '우승 감독'은 그렇게 허무하게 물러났다.
김원형 감독도 2022년 SSG에 창단 첫 통합 우승의 기쁨을 안기면서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해 SSG는 정규시즌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성공했고, 한국시리즈에선 키움을 4승 2패로 물리치고 SK 와이번스 인수 이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년 동안 SSG를 지휘해 온 김 감독은 5차전을 앞두고 재계약을 약속 받은 상태였다. 계약 조건이 관건이었는데,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완벽한 마침표 덕에 3년 총액 22억 원(계약금 7억 원, 연봉 5억 원)을 받았다. 김 감독의 첫 계약 조건(2년 총액 7억 원)과 비교하면 총액이 3배 이상 뛴 셈이다. 김 감독은 재계약 첫해인 지난해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쳐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그러나 SSG가 준플레이오프에서 4위 NC에 3전 전패로 업셋 패배를 당하자 계약 기간을 2년이나 남겨두고 전격 경질됐다. 야구계에 충격을 안기고 비난의 눈초리가 쏟아졌던, 비운의 퇴장이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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