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요구 퇴짜 맞고 ‘초심’ 저격 당해…세력 전이 실기, ‘당대표 패싱’ 더 짙어져
한 대표는 지지율 10%대를 보이며 최대 위기에 봉착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며 압박 작전을 펴왔다. 김건희 여사를 향한 공세 수위는 민주당보다 더 높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 정가에선 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관계’는 복원 불가능 쪽으로 한발 더 다가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호기로웠던 한동훈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 대국민담화를 앞두고 연이어 메시지를 발신하며 용산을 압박했다. 우선 국정 쇄신을 요구하면서 전면적 개각과 김건희 여사의 외부 활동 중단 등 전향적인 쇄신책을 윤 대통령 메시지에 담아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한 대표는 11월 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담화가 되길 기대하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전날인 11월 4일에는 윤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와 대통령실 참모진 전면 개편, 쇄신용 개각, 김 여사의 즉각적인 대외 활동 중단과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재차 촉구했다.
한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이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 대통령께서 솔직하고 소상하게 밝히고 사과를 비롯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은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참모진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심기일전을 위한 과감한 쇄신 내각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건희 여사는 즉시 대외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10월 31일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 씨 통화 녹음이 공개된 이후 나흘 만의 입장 표명이었는데 정치권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더 세게 나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대표는 그동안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3대 조치(대외 활동 중단·대통령실 인적 쇄신·의혹 규명 협조)와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구해왔는데, 이날 발언은 한발 더 나간 것으로 윤 대통령에게 국정 전반에 대한 전면 쇄신을 촉구했다.
한 대표가 작심한 듯 불을 뿜자 친한계 의원들 입에서도 엄호 사격이 일제히 쏟아졌다. 박정훈 의원은 11월 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가 인적쇄신과 관련, “(대통령실이) 이걸 안 받아들일 거면 담화할 이유가 있나”라며 “총리를 바꾸는 것까지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종혁 최고위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 대통령이) 자화자찬적인 메시지는 하시면 안 된다”며 “그다음에 진솔한 사과가 필요하다. (명태균 씨와 통화 녹음 내용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 않으냐는 얘기를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담화 하루 전인 11월 6일에는 중진 의원들과 연쇄적으로 간담회를 하고 정국 해법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윤 대통령을 향한 압박 작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조경태 의원은 간담회 참석 후 기자들에게 “국민들 눈높이에 맞는 담화문이 될 것이냐에 대한 우려와 기대 수준은 맞출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함께하는 자리였다”며 “기대치 이하로 나오게 되면 국민들이 가만히 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여전히 대통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일부 의원이 계시지만 현재 민심하고 조금 다른 거 같다”며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폭 인적 쇄신 및 김건희 여사 수사 관련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간담회에는 조경태 권영세 김기현 나경원 윤상현 조배숙 의원 등이 참석했다. 해외 출장 중인 주호영 권성동 의원은 불참했다.
#윤 대통령 담화에 대한 실망감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통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단순한 당정 문제를 떠나서 초심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초심’에 대해 정치권에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검찰 재직 시절은 물론, 윤석열 정부 법무부 장관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가 대통령실에 요구해온 사안들도 여러 논리를 동원, 조목조목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우선 한 대표가 제언해온 인적쇄신과 관련해 “적절한 시기에 인사를 통한 쇄신의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벌써 인재풀에 대한 물색과 검증에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시기는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기세에 눌려 하는 조급한 인사는 안하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윤 대통령은 집권여당 1호 당원으로서 여당에 대한 장악력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친한, 친윤이라는 게 과연 그렇게 뭐 딱 존재하는 건지(모르겠다)”며 “그걸 저는 그렇게 민감하게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감 때 그동안 (당과) 좀 소통을 못 했는데, 자주 계속 만나고 하려고 한다”며 “어느 조직 내에서 서로가 삐걱거린다 그러면 같이 운동을 하든지, 등산을 가든지 하는 것도 좋은데 그보다 같이 일을 하면은 제가 볼 때는 정말 잘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한동훈 패싱’의 그림자가 더 짙어졌음을 읽을 수 있었다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날 담화·기자회견 역시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졌는데 이는 한 대표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친윤으로 통하는 추경호 원내대표의 작품이었다.
실제 윤 대통령은 11월 4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만났다. 추 원내대표는 이 면담에서 국민과의 소통 기회를 일찍 가져달라는 당내 여론을 전달했다. 추 원내대표는 11월 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에서 이런저런 말이 있어서 제가 어제 대통령실에 다녀왔다”며 “가급적 국민과 소통의 기회를 일찍 가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다.
그는 “당초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11월 말경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것보다 훨씬 이른 시점이면 좋겠고, 가급적 해외 순방 전에 그런 기회를 가지면 여러 상황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지 않겠냐는 말씀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이 고심하다 밤에 11월 7일 대국민 담화 겸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최종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동훈 패싱 논란’은 10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뤄진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면담 때도 있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면담 직후 추경호 원내대표를 불러 회동을 가졌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이날 오후 약 81분 동안 면담했는데 그 직후 추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면담에 힘이 빠졌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의 11월 7일 담화 및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한 대표가 즉각적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만 봐도 한 대표가 이날 담화·기자회견이 자신에 대한 패싱과 외면 전략이 담긴 것임을 알아차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친한계 의원들은 11월 7일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윤 대통령이 말로는 당정화합을 강조했지만 실제 행간을 읽어보면 당대표를 외면하고 사실상 패싱한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담화 이튿날인 11월 8일 “이제 중요한 것은 민심에 맞는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속도감 있게 실천하는 것이다. 당은 지금보다 더 민심을 따르고 지금보다 더 대통령실과 소통하고 설득하겠다”며 원론적 표현을 내놨다. 윤 대통령 간담회에 대한 실망감이 엿보인다는 해석이다.
#당내 지분 확보 고전
당내에서는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내세우면서 강공 전략을 편 게 너무 빠른 것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표가 이 정도로 세게 나왔으면 당내 세력 전이가 일어나고, 윤 대통령 역시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11월 7일 담화·기자회견에서 나와야 했는데 실제 모습은 딴판이었다는 이유다.
결국 한 대표를 향한 ‘내부 총질’ ‘배신자’ 공세가 다시 봇물을 이룰 조짐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1월 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대표를 향해 날을 세웠다. 홍 시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기자회견과 관련해 “대통령이 진솔한 사과를 하고 김(건희) 여사 대외활동 중단, 국정쇄신 약속을 했으니 이제 우리는 이를 지켜보고 단합해서 나라를 혼란으로부터 안정시켜야 할 때”라면서 담화에 대해 평한 뒤 한 대표를 강하게 때렸다.
그는 “더 이상 국정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경박한 촐랑거림은 없어야 한다”면서 “내부 단결부터 해야 한다. 더 이상 내부 결속을 해치는 경박한 짓은 국민과 당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를 배신자 프레임에 가둬놓은 것이다.
한 대표의 강공 작전이 실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한 대표의 당내 지분 확보가 예상 밖으로 느리다는 것과 연결을 짓는다. ‘스킨십 부족’ 비판을 받았던 한 대표는 최근 들어 의원들과의 개별적 만남을 늘려왔지만, 강한 바람을 일으키면서 세력 확대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총평이 나온다.
더욱이 미국 대선이라는 큰 판이 있었고 외교 무대가 열릴 경우, 윤 대통령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데 이 상황을 읽는 한 대표의 정치적 감각이 부족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증을 거머쥠으로써 이미지가 비슷해 보이는 한미 두 정상의 만남에 대한 관심이 증폭, 윤 대통령의 입지는 또다시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윤 대통령 임기 후반기로 들어선 만큼 용산도 세심하게 상황 관리를 해야 하기에 한 대표가 이준석 전 대표처럼 중도에 낙마하는 극단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차별화 전략을 너무 일찍 사용함으로써 조기에 힘을 너무 빼버려 한 대표의 동력은 상당 부분 소실됐고 여러 현안에서 소외된 채 당분간은 대통령의 시간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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