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분담금 폭증 우려, 북미 손잡고 ‘한국 패싱’ 가능성…반도체·자동차·배터리 수출 먹구름
#한반도 정세 불확실성 고조 우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인상과 주한미군 역할 축소를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운동 기간 동안에도 방위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로 인상해야 한다고 줄곧 언급했다. 이는 한국이 2026년 이후 지불해야 할 액수의 9배 가까운 액수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기존 방위비 분담액의 6배인 연간 50억 달러를 요구한 바 있다.
지난 10월 16일 트럼프 당선인은 폭스뉴스 주최 행사에서 “우리는 한국에 4만 2000명(실제론 2만 8500명가량)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다. 그들(한국은) 돈을 내지 않는다”며 “그들은 부자 국가다. 우리는 이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무역에서건 국방에서건 더 이상 이용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전날 시카고이코노믹클럽 대담에서도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그들은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100억 달러(13조 5000억 원)를 낼 것”이라며 “한국은 머니 머신(현금인출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1월 7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12차 SMA 협상 결과를 두고 한 코멘트가 아니고 이전 집권 당시 자기가 했던 걸 자랑하는 과정에서 나온 코멘트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코멘트는 아직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먼저 (재협상을) 부추기고 미국으로 하여금 주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11월 4일 한·미는 12차 SMA에서 2026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오른 1조 5192억 원으로 정하고 2030년까지 매년 분담금을 올릴 때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합의는 오는 2030년까지 적용된다. 조 장관은 “(미국 측의) 재협상 요구가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마무리 지은 협상 결과를 토대로 논의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며 “빨리 협상을 마무리해서 국회 비준을 거쳐서 발효를 시키는 것이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가 취임 이후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 카드나 대북정책을 두고 엇박자를 내면 한미동맹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한국석좌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에 주한미군 배치에 대한 비용을 더 청구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는데 이게 한국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라며 “트럼프 하에서 한미관계라는 길은 여러 이유로 더 평탄하지 않고 예측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이 북미 정상 중심의 개인 외교를 통해 이른바 ‘한국 패싱’을 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꾸준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했다. 트럼프 1기 때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분으로 미국의 안전을 지켜냈다고 과시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3차례 만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7월 18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직을 공식 수락하는 연설에서 “대만, 한국, 필리핀 등 아시아에서 무력 충돌의 망령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현 정부(조 바이든 행정부)가 야기한 모든 국제 위기를 종식해 세계 평화와 화합을 회복할 것”이라며 “나는 북한 김정은(국무위원장)과 잘 지냈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들(북한)과 잘 지낼 것이다. 그(김정은)는 아마 나를 그리워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 2기는 북한과 비핵화 대화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미 정상 중심 외교에 한국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될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아울러 미국 정치권에서 트럼프가 미국 본토를 향하는 핵 위협만 통제한 뒤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이른바 ‘스몰딜’로 협상 목표를 변경할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럴 경우 한국, 일본 등만 핵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개인적 친분을 활용한 북미 정상중심의 대북 외교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과정에서 북한을 완전히 압박하는 시나리오부터 북한의 핵 체제를 인정하는 시나리오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가능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고조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로 하여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철저히 견지하게끔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시 “양자주의적 개인 외교는 곧 한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생략할 가능성이 큰 외교인 만큼, 한국 국익에 부합하는 협상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있다”며 “한미일 안보협력 등 기존 동맹국 협력을 통한 대북정책이 단순 대북 억제뿐 아니라 중국 견제 차원에서도 중요함을 트럼프 행정부에 인지시켜 대북 견제 정책을 유지하게끔 설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산업계 긴장감 증폭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개인적 유대관계를 중요시하고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 부르는 트럼프와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미국의 여야 양당 상하의원들하고 관계를 맺었다. 그분들은 한참 전부터 ‘윤 대통령과 트럼프가 좀 케미가 맞을 것’이라고 했다”며 “(트럼프 1기 행정부 고위 관료 등) 그분들이 또 하여튼 다리를 잘 놔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잘 묶어주겠다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하더라. 그러니까 뭐, 별 문제 없이 저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한 대표적인 우려 사안으로 보호무역주의를 꼽았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2기가) 10~20%의 보편관세를 하게 되면 어느 나라나 같은 조건이니 괜찮지만, 중국에 대해서 슈퍼관세를 물리게 되면 중국 경제가 아마 어려워질 것”이라며 “중국은 굉장히 수출 단가를 낮춰서 국제시장에 덤핑을 하고, 우리 기업은 중국과 경쟁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등 돈을 더 내라는 건 부차적인 문제이고,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높으니 수출 관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월 7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삼정KPMG도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해 한국이 마주할 불확실성을 ‘T.R.U.M.P’로 요약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우려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20% 관세를 부과하는 ‘보편적 관세’와 상대국과 동일한 수입관세율을 부과하는 ‘상호무역법’ 도입을 통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고, 전 세계 무역수지 균형을 추구할 것”이라며 “동맹, 비동맹 구분 없이 대미 무역흑자국에 대한 압박 및 무역장벽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 취임 이후 한국의 대표 수출 상품인 자동차와 반도체, 2차전지 산업이 직격타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정KPMG는 “반도체 보호무역주의가 전반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특히 중국에 대한 더욱 직접적이고 확대된 범위의 제재를 내세우며 첨단 반도체 기술 패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지원법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반도체 지원법 일부 수정 또는 축소 가능성이 있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대외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미국 반도체 패권을 위한 공화당의 대외정책은 동맹국 클러스터 중심이 아닌 자국 중심”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압박과 자국 투자 확대를 위해 반도체법 상 가드레일 조항 및 보조금 수령을 위한 동맹국 투자 요건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 대만, 일본, 유럽 반도체 기업들에 대해서는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아닌,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정책이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삼정KPMG는 “미국향 완성차 수출에 관세 인상 및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 축소 가능성이 높아 전기차를 포함한 완성차의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며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뿐 아니라 AMPC(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조항도 축소될 경우, 한국 2차전지 기업의 수익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내연차 대비 자동차 부품이 30%가량 적은 전기차 보급으로 인해 미국 내 일자리가 줄고 있어 전기차 전환 정책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국산 수출 전기차의 절반가량이 미국으로 수출되는 만큼 전기차 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으므로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차종의 개발과 더불어 미국 정책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2차전지 산업에 대해선 “IRA 폐기 혹은 혜택 축소로 인해 배터리 기업의 타격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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