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현대디에프 적자전환, HDC신라 철수 가능성…중국 관광객 감소·공항 임대료 상승·강달러 ‘삼중고’
#호텔신라 "경영실적 개선에 주력할 계획"
면세점 업계에서 가장 먼저 잠정 영업실적을 발표한 호텔신라가 3분기 17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국내로 유입되는 인바운드 수요가 늘어나면서 호텔부문이 흑자를 냈지만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전까지 매출 비중의 80% 이상을 벌어다주며 효자 노릇을 하던 면세유통업(TR) 부문이 고전하며 ‘어닝쇼크’를 냈다는 분석이다. 3분기 잠정 실적이 발표되자 이날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대신증권, 신한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이 잇달아 호텔신라의 목표가를 하향했다.
면세사업 부진으로 자본금이 감소하며 호텔신라의 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426.8%, 2분기 392.6%를 기록하면서 40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말(283.59%)과 비교하면 크게 악화된 수치다. 호텔신라는 재무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 창사 이래 최초로 1328억 원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해 자본금을 늘렸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면세·호텔 기업 중 이렇게 많은 규모의 주식 연계 채권을 발행한 회사는 호텔신라가 유일하다.
호텔신라가 HDC와 함께 절반씩 투자해 설립한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0년부터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HDC신라면세점은 지난 8월 구조조정에 돌입하며 20%가량의 인력을 감축했다. 영업손실이 지속되면서 결손금과 부채가 누적되자 HDC신라면세점은 지난 10월 18일 400억 원가량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호텔신라와 HDC와 호텔신라가 각각 200억 원씩 수혈에 나섰다.
HDC신라면세점이 2025년 말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사업을 연장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HDC신라면세점이 브랜드를 유치하거나 이탈을 단속하기에 쉽지 않은 규모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호텔신라 관계자는 “호텔부문은 흑자 경영을 이어가고 있으나 TR부문은 예측 불가능한 시장 환경 변화로 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업황 회복이 더딘 상황”이라며 “TR부문은 향후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경영 실적을 개선하는 데 주력할 계획”라고 밝혔다.
#면세업계에 부는 칼바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호텔신라만이 아니다. 지난 11월 7일 현대백화점 면세점 부문(현대디에프)은 3분기 매출 2282억 원, 영업손실 8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3.9%가량 감소한 가운데 적자전환했다. 면세업계의 불황에 따라 호텔신라와 현대백화점뿐만 아니라 롯데, 신세계 면세점의 3분기 성적표도 나란히 부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면세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재 가장 주된 고객이었던 중국인 고객들의 지갑이 닫혔기 때문에 다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40~50대의 쇼핑 관광이 아니라 20~30대의 체험·여행 위주로 트렌드가 바뀌면서 매출 객단가도 많이 낮아졌다”며 “팬데믹 때는 중간 상인(따이궁)한테 줬던 송객 수수료가 너무 많아서 어려웠다면 지금은 매출 볼륨 자체가 줄었다”라고 밝혔다.
중국 관광객들의 지갑이 닫히고 있는 건 중국의 경기 둔화 탓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4.6% 늘며 두 분기 연속 5%를 밑돌았다. 4.5%를 기록했던 2023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내수 부진과 부동산 시장의 침체 탓에 성장률 둔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내수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해외 면세업계가 벌어들이던 매출을 중국 본토로 돌리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본토에 총 26개의 시내 면세점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내 면세점 제도는 한국에서 비롯된 건데 중국이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내 소비자들한테 해외 나가서 사지 말고 국내에서 사라는 것”이라며 “최근 비자를 면제해주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중국으로 끌어오고 있는 것도 같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남부 섬 지역인 하이난성에도 세계 최대 규모의 면세 구역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1년부터 하이난에 면세 쇼핑 구역을 도입하고 2020년부터는 연간 면세 구매 한도를 세 배로 늘렸다. 내년에는 별도의 관세 구역을 설립하고 고급상품 구매 시 세금도 낮춘다.
변정우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하이난에서는 한화로 약 8000만 원까지 면세로 살 수 있다. 만약에 하이난 내에서 다 소진하지 못했어도 온라인으로 다시 한도까지 채울 수 있다”며 “엄청난 혜택을 주는 셈이다. 한국 면세점 등에서 나오던 수익을 전부 본토로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국내 면세업계는 별 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면세 사업자는 법인세를 제외한 특허 수수료를 별도로 내야 하는데 국내의 경우 영업이익이나 면세점 면적 기준이 아닌 매출액을 기반으로 수수료가 산정된다. 면세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지난 5년간 특허 수수료를 절반 수준으로 감면해주긴 했지만 적자를 냈을 경우 법인세가 면제되는 것과 달리 여전히 수십억 원 규모의 특허 수수료를 내야 한다”라며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매출을 기반으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나라는 없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정액제였던 인천국제공항의 ‘고정 임대료’를 공항 여객 수에 따라 임대료를 산정하는 ‘여객당 임대료’로 전환하면서 입점한 면세사업자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행객 규모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수준으로 회복됐는데 면세점 이용고객이 줄어든 탓에 매출이 하락하면서 임대료는 늘어나는 구조에 봉착한 탓이다.
변정우 교수는 “국내 면세업계가 10년 넘게 전세계 1위를 수성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업황이 좋을 때 징수하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업황이 나쁠 때 어떻게 산업을 더 육성하고 장려할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황이 안 좋다보니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국내 시내 면세점에서 잇달아 철수하는 분위기다. 지난 10월에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가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에서 철수했다. 신라면세점 제주점 에르메스 매장도 올해 6월 말 영업을 종료했다. 국내 주요 관광지 시내 면세점에 입점한 롤렉스, 샤넬, 루이비통, 구찌 등도 최근 몇 년 새 줄줄이 폐점 수순을 밟았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고공행진하고 있는 것도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 면세점은 달러를 기준으로 판매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환율이 낮을 때 저렴하게 매입한 후 환율이 오르면 환차익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고환율 기조가 계속되면 재고 순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싼 가격에 매입해야 하고 소비자들의 수요도 감소한다.
앞서의 면세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대외환경이 안 좋은 상황이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저희도 고민이 많다. 회사 몇 개가 노력한다 해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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