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 의혹 관련 모호한 답변 부정 여론 우세…“차관과 개인폰 통화” 발언 등 특검법 동력 추가 확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이 내 불찰이고, 내 부덕의 소치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진행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고개를 숙였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서는 “매사에 더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데 이렇게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린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과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국민들이 대통령이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어리둥절할 것 같다’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오해하는 부분은 팩트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짚어서 그 팩트에 대해 사과를 드릴 것”이라며 “어떤 점에서 딱 짚어주신다면 사과를 드리겠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겠다. 잘못 알려진 사실도 굉장히 많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어 ‘앞서 사과를 하셨는데 인정하는 부분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어찌됐건 사과드린 건 나와 아내의 처신에 모든 문제가 있었기에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조심하겠다는 말이다”라고 회피했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디올백 명품수수·공천 및 국정개입 등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내가 검찰총장 때부터 나를 타깃으로 해서 집사람(김 여사)에 대해서도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었다”며 “내 처를 그야말로 ‘악마화’시킨 것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도 “사법 작용이 아닌 정치 선동”이라며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것 자체가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고 강경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조만간 야당 주도로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세 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읽힌다.
이날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은 140분간 진행돼 윤 대통령의 역대 회견 가운데 가장 길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 담화를 계기로 20% 아래로 떨어한 국정수행 지지율 반등을 꾀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민주당은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한 대국민담화’라고 규정하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담화가 아니라 술자리에서도 듣기 어려울 정도의 횡설수설 아무 말 대잔치였단 시민들의 평가가 잇따랐다”며 “비천한 철학, 오만한 인식, 방자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 유체이탈 화법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 국정운영을 지속할 능력과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공과 사를 구분할 능력도 의지도 없고, 헌법과 법률을 수호할 능력과 의지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특히 대통령은 특검이 헌법에 반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까지 했다”며 “특검이 삼권분립 위배라며 정작 자신은 왜 박근혜 수사 특검에 참여했냐”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건희 특검의 필요성, 정당성이 명확히 확인됐다”며 “민주당은 반드시 김건희 특검을 관철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친윤계와 친한계 사이에 평가가 엇갈렸다. 친윤계 추경호 원내대표는 “여러 가지 논란과 의혹에 대해 진솔한 태도로 설명을 주셨다”며 “국정쇄신에 대해서도 그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반면 친한계에서는 구체적 내용이 없는 회견이었다고 우려했다. 친한계 김종혁 최고위원은 11월 7일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정면승부’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를 앞두고 국민들께 그동안에 있었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하고 심기일전해 새로운 국정을 펼쳐나가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윤희석 선임대변인 역시 일요신문 유튜브채널 ‘신용산객잔’에 출연해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보다가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라면 윤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고 첫 번째 드는 생각이 무엇일 것 같냐’는 질문에 “망했다지 뭐”라고 답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계속 저런 자세로 국정을 운영하신다면 정말 상상하기 힘든 후폭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동훈 대표는 대국민담화 당일엔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다음날인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대통령이 현 상황에 대해 사과하고 인적 쇄신과 김 여사 활동 중단, 특별감찰관의 조건 없는 임명을 국민들께 약속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민심에 맞는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속도감 있게 실천하는 것’”이라며 “당은 지금보다 더 민심을 따르고, 지금보다 더 대통령실과 소통하고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담화와 회견에 대한 구체적 평가는 피하면서 당의 실질적 조치 의지를 표한 것으로 해석됐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의 이번 기자회견 발언이 향후 이뤄질 수 있는 야권 탄핵 추진이나 사정기관 수사 과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특검을 국회가 결정해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며 “이는 명백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삼권분립 체계에 위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시 수사하면 내 아내만 조사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재수사해야 하는데, 통상 수사로 한 번 털고 간 것에 대해서는 반복하지 않는 일사부재리를 적용한다”며 “다른 사람에 대한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한 법조인은 “일사부재리는 재판 판결에 해당하는 원칙”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사건은 이미 검찰과 특검에서 이미 두 차례 수사 완료했는데,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해 다시 수사했다. 이를 통해 본인이 이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윤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 사법 방해다. 본인과 본인 가족을 향한 특검 수사에 노골적으로 방해하겠다는 의지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이라며 “만약 나중에 탄핵 심판으로 가게 되면 결정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국정개입 논란에 대해서도 국민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대선 과정에 선거운동 내조를 열심히 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2021년 국민의힘 입당 직후 하루에 문자가 3000개씩 쏟아졌는데, 윤 대통령이 집에 와 쓰러져 자고 있을 때 김 여사가 새벽 5~6시에 안 자고 엎드려서 윤 대통령 휴대전화로 대신 답변을 했다는 것. 이에 윤 대통령은 “‘미쳤냐, 지금 잠 안 자고 뭐하냐’ 하니까 (김 여사가) 이렇게 지지하는 사람들에 ‘고맙다’ ‘잘 하겠다’ ‘잘 챙기겠다’ 답해줘야 하지 않겠냐 하더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하기 이전에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을 지냈다. 모두 기밀 유지와 보안이 생명인 직책이다. 그런데 김 여사가 아무렇지 않게 윤 대통령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자랑 삼아 이야기한 꼴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명태균 씨와 통화 의혹 관련해서 윤 대통령은 휴대전화 문제를 거론하며 “대통령이 돼서도 검사 때 썼던 휴대폰을 계속 쓰고 있으니까 바꾸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 나름의 보안폰도 갖고 있다. 감청이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국가안보나 문제가 있을 때는 보안폰을 쓴다”면서도 “통상적인 거 공무원이나 장·차관하고도 국가안보 아닐 때는 내 휴대폰을 쓴다”고 언급했다.
야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장관도 아니고 차관에게 개인 폰으로 전화할 일이 어디 있느냐”며 “채 해병 수사외압 의혹 때 윤 대통령이 직접 사건 관계자들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번 발언은 채 해병 사건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 윤 대통령이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등에 직접 휴대폰으로 전화했다는 증언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갤럽이 11월 5일부터 7일까지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잘하고 있다’는 17%를 기록했다. 전주 조사에서 무너진 20%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대 최저치를 경신한 것. ‘잘못하고 있다’ 역시 74%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지지율 17%는 과거 탄핵 국면으로 들어가기 직전인 2016년 10월 4주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과 같다.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갤럽 측은 “이번 조사 기간 사흘 중 마지막날인 11월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반향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국민담화 여파가 반영되면 지지율에 더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윤 대통령 직무수행을 부정평가한 응답자에 그 이유를 묻자 ‘김건희 여사 문제’가 19%로 가장 높게 나왔다. ‘경제·민생·물가’가 11%, ‘소통미흡’ 9%로 뒤를 이었다.
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지지율 발목을 잡고 있는 김 여사 문제를 제대로 털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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