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트럼프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 말과 그의 첫 임기(2017~2020년)를 되돌아보면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는 치밀하게 계산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트럼프의 재선이 글로벌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관세 인상을 통한 보호무역과 반 이민 △감세를 통한 기업 투자 및 내수 진작 △친환경 정책 후퇴 △미국의 안보관련 비용 절감 등이다. 한마디로 줄이면 상대방의 상대적 불이익에는 전혀 아랑곳 않는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다.
가장 보편적인 시나리오는 예고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들이 미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도 치명타를 가할 것이란 관측이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올리면 수입업자는 이를 상품가격에 반영하게 된다. 물가상승 요인이다. 이민을 줄이면 노동자가 부족해져 임금이 상승할 수 있다. 역시 물가 상승요인이다. 물가가 오르면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가 어려워져 경기침체를 막기 어려울 수 있다.
감세를 통한 기업 투자 및 내수진작 효과도 그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고려하면 크지 않을 수 있다. 세수가 줄고 재정적자가 심해지면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마련해야 한다. 재정이 어려워질수록 국채 발행금리가 높아지면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 국채 금리 상승은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민간의 이자부담도 덩달아 올라 감세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
관세 수입을 높이고 친환경 보조금을 줄이고 안보 비용을 아껴도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실행한 감세는 내년이 만기다. 이를 연장하면 향후 10년간 5조 달러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트럼프가 새로 공약한 법인세과 소득세 등의 추가 감세가 시행되면 10년간 4조 달러의 세수가 추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에 엄청난 부담이다.
#진짜 목적은 경기부양·물가안정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후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의 엄포와 정책을 구분하는 접근이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서는 60%,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도 10~20%의 관세를 예고했다. 모건스탠리는 트럼프의 공약대로라면 관세가 미국의 물가상승률을 0.9%포인트(p) 높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금까지는 공약이었다. ‘하겠다’와 실행은 다르다. 오랜 경영자 생활을 통해 협상과 담판으로 단련된 트럼프 당선인이다.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초강력 관세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목표는 미국의 이익이다. 관세를 높이더라도 미국에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닐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을 꺾은 가장 큰 이유가 높은 물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었다.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만 20% 정도의 관세를 부과하면 현재 2.7% 수준인 물가상승률은 1년 후 2.3%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또 다른 핵심 공약인 감세 실행을 위해서도 물가 안정은 중요하다. 감세로 인한 세수감소 부담을 줄이려면 금리가 하락해 국채 이자 지출을 줄여야 한다. 물가가 오르면 연준이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 트럼프는 연준 의장을 교체해서라도 금리를 끌어내릴 태세다.
사실 트럼프 경제정책의 핵심은 감세다.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이유도 결국 자국 산업과 일자리 보호를 위해서다. 세 부담을 줄여 투자와 소비가 늘면 경기가 활성화되고 정부 세수도 증가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증시가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는 이유다. 도이치방크는 감세만으로 내년과 내후년 미국 경제가 각각 0.5%p, 0.4%p씩 더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60%~10% 관세 폭탄이 현실화된다면 감세 효과는 거의 사라질 것으로 봤다.
#최대 변수는 장기금리 관리 난제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재정이다. 지난해 재정적자만 이미 1조 8000억 달러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8년 전과 비교해 3배나 급증했다. 감세로 세수가 줄면 적자가 늘어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한다. 국채 발행이 늘어 장기금리가 상승하면 민간 경제에도 부담이다. 트럼프 당선 확정 직후 미국 장기국채 금리는 10년 물이 4.4%, 30년 물이 4.5%를 넘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장기금리가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회사채는 물론 고정금리인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반영되기 시작해 가계의 주거비 부담이 상승한다. 감세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 장기금리를 안정시키려면 미국 재정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중요하다.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는 미국 국채의 발행금리가 높아지면 글로벌 투자수요가 몰려 가격하락 폭(금리상승 폭)이 제한될 수는 있다.
미국 증시에 이어 국채에까지 글로벌 수요가 몰려 달러 강세가 나타나면 수입물가가 하락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관세를 부과해도 물가 상승 걱정을 덜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을 충당하기는 부족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부담을 줄이고 각종 국유 재산 등을 민영화해 재정을 보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시대 투자 전략? 한국은 방산주, 미국은 기술주 '주목'
트럼프 시대 투자전략을 요약하면 ‘그래도 역시 미국’이다. 자국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트럼프의 정책은 글로벌 무역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무역에 의존해 온 우리나라나 신흥국 경제에는 부정적이다. 반면 무역보다는 기술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미국의 기술 기업이나 감세 및 소비진작 정책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미국 내수 기업들이 유망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증시의 주력인 반도체나 자동차 등의 전망은 애매하거나 불투명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수혜 업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증시에서는 방위산업의 수혜가 가장 클 전망이다. 트럼프는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은 물론 일본, 유럽 등 해외 미군의 역할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미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온 유럽 각국이 재무장을 시작하면 적어도 재래식 무기에 있어서는 가장 뛰어난 생산능력을 보유한 한국 방산 기업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볼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조선업의 방산 부문은 트럼프 당선인이 직접 윤석열 대통령에 당부한 만큼 미국의 해군력 보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조선업이 퇴조해 자체 함선 건조 능력이 중국 대비 절대 부족하다. 2023년 미 해군 정보국에서 유출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함정 건조능력은 미국의 232배에 달한다.
현재 추세라면 2035년까지 중국이 475척의 전투함을 확보하는 반면 미국은 305척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차세대 구축함인 줌왈츠(Zumwalt) 건조는 6년 이상 지연되었으며, 핵심전력인 항공모함의 창 정비 기간도 1~2년 이상 지연되면서 미 해군은 심각한 전력 공백을 겪고 있다. 미국의 우방 가운데 중국과 조선 분야에서 경쟁해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뿐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재건 과정에서 국내 건설업체들이 수혜를 볼 가능성도 제기한다. 올해 초 세계은행(World Bank)이 내놓은 우크라이나 재건 계획(Third Ukraine Rapid Damage Assessment)를 보면 전쟁 이전 상태로 돌리는 10년간의 비용이 주택, 인프라, 에너지 부문에서만 최소 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