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관리법에 ‘공동 결정’ 명시…공급 면적 많은 쪽에 결정권 있는데도 SH가 권한 넘겨준 셈
서울시의회 최진혁 의원이 “서울주택도시공사가 혼합단지 주택관리업자 선정 시 임차인 의견을 반영하고 업체 선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라고 주문하자 “혼합단지 주택관리업자 선정은 분양 쪽에서 한다”는 답변이 11월 8일 행정사무감사에서 나왔다.
서울주택도시공사 박철규 서남센터운영처장은 “현재 체계에서는 분양 쪽에서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하게끔 돼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임차인대표 측에서 의견을 주면 그걸 반영하고 전체 의결을 통해서 결정하게 돼 있는데 대부분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하는 형태로 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주장대로 혼합단지 주택관리업자는 분양 쪽에서 선정하는 것이 맞을까. 이는 공동주택관리를 규정한 공동주택관리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10조에는 혼합단지의 관리를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제7조 제1항 제2호)에도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공동으로 결정해야 하는 사안에 ‘주택관리업자의 선정’이 명시돼 있다.
분양 쪽(입주자대표회의)에서 ‘관리업체를 선정하게 돼 있다’는 발언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만약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관리업체 선정을 그런 식으로 해왔다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사실상 혼합단지 관리에 상당 부분 손을 놓고 있다. 지역별 주거안심센터에 혼합단지를 관리하는 직원을 두고 있지만, 이들은 아파트 관리에 관한 결정을 입주자대표회의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아파트 주요 결정(공사, 용역, 예산)을 입주자대표회의가 내리기 때문에 권한도 그쪽으로 가 있는 상태다.
혼합단지 임대 부분의 주인임에도 SH가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혼합단지 관리를 맡은 서울주택도시공사 담당자들은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에 대한 보고만 받거나 보고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공사 측도 이 부분을 인정했다. SH 박철규 처장은 “분양 쪽에서 이런 내용이나 과정을 공유 안 해주면 공사에서 모르고 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임차인들을 관리업체, 관리소장들에게 무시당하는 경우도 잦다. 임차인들은 관리업체가 입주자대표회의 눈치만 보기 때문에 민원을 제기해도 입주민과 임차인의 온도 차가 크다고 주장한다. 한 임차인은 “공용시설 보수 요청을 해도 임대 동의 경우 고쳐지기까지 하세월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SH 강서센터가 관할하는 마곡엠밸리6단지 임차인들은 지난해 임대 동 재활용장 조명 고장으로 몇 달간 어둠 속에서 분리수거를 해야 했다.
최진혁 의원은 “공급 면적도 주민 수도 임대 측이 훨씬 많은데 관리업체가 임차인들을 무시한다는 민원이 들어온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권한을 갖고 계속 관리업체를 선정하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제가 그동안 관리업체 선정에 있어서 문제 제기를 계속해 왔다. 그럼 공사는 어떤 방안이 있는지 알려줘야 하는데 이에 대한 보고도 없었다. 그리고 임차인 불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같은 업체가 계속 수의계약을 하고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김태수 위원장도 거들었다. 김 위원장은 공사 주거복지본부장에게 대안을 물었다. SH 주거복지본부장은 “최진혁 의원이 말한 내용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마곡엠밸리 6단지처럼 공급면적이 2분의 1을 초과하는 단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주택관리업자 선정을 하도록 공문도 여러 번 내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게 시행되도록 하는 초기 단계이며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태수 위원장이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 사항이 나오니까 이제부터 하겠다는 건가”라고 묻자 주거복지본부장은 “작년부터 추진 중인 사안이다”라고 답했다. 김태수 위원장은 “작년부터 추진 중인 사안이면 오늘 대안을 말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책했다. 그러자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이 “저희가 공문을 내려보내기는 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조사해 보고 드리겠다”라고 급히 불을 껐다.
최진혁 의원은 “주택관리업자 계약이 2025년 5월 31일에 종료된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건가”라고 재차 물었다. 그러면서 “연장계약 조건에 보면 입주자대표회의 제안 또는 임대사업자 제안으로 돼 있다. 그리고 우리(SH)가 비율이 높다. 그러니 업체 선정할 때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임차인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제가 계속 부탁드리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주택관리업자를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공동으로 결정해야 하는 혼합단지의 경우 서로 의견 대립이 있을 시 공급면적이 많은 쪽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7조 제3항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공급면적의 2분의 1을 초과하는 쪽’이 결정하도록 명시 돼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이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는 2018년 이 아파트에서 주택관리업자 선정과 관련해 입주자대표회의와 의견 대립이 있자 자신들이 직접 주택관리업자를 선정해 앉혔다. 그리고 그 업체는 현재까지 이 아파트의 관리업체를 맡고 있는 상태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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