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보조금 축소 시 국내 배터리 3사 타격 불가피…“단기 수요 불확실성 확대 및 투자심리 악화 전망”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가 확실시됐던 지난 6일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7%가 하락했고, 삼성SDI도 5.98% 하락했다. SK온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SK이노베이션도 6일 주가가 4.63% 하락했다. 이외에도 에코프로비엠이 9.44%, POSCO홀딩스는 5% 하락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몇 년 동안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지속적으로 내비쳐왔다. 지난 7월 후보자 수락 연설에서는 “취임 첫날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지해 새로운 친환경 사기를 뒤집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실적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이차전지 업계에 트럼프 당선은 악재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같은 기조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내용이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를 원하고 있다. IRA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표 정책으로 급등한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2022년 8월 16일 발효된 것으로 보이지만, 전기차 제조에서 중국 등 우려 국가의 배터리 부품과 광물을 일정률 이하로 사용하도록 해 전기차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IRA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세금 인상이라며 반대해왔다.
국내 이차전지 업계는 IRA에서 AMPC(첨단제조생산 세액 공제) 혜택을 받고 있다. AMPC는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배터리 셀을 생산해 판매하면 규정에 따라 현금을 주거나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4483억 원으로, 이 중 IRA 세액 공제로 받은 금액은 4660억 원에 달한다. SK온은 608억 원, 삼성SDI는 103억 원을 올해 3분기 수령했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현재 분위기는 트럼프 당선인이 IRA 폐지보다 보조금 혜택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IRA의 수혜가 미시간, 조지아, 오하이오 등 그가 소속된 공화당 우세 지역에 집중돼 있어 의원들의 반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액 공제 혜택 축소도 이차전지 업계에는 타격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IRA 세액 공제를 제외하면 3분기 적자다. 삼성SDI는 영업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업연구원이 작성한 ‘미국 대선 향방에 따른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안’에서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가 가시화하면 배터리 기업들은 국내외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며 “전기차 수요에 크게 의존하는 이차전지 기업의 투자 위축이 불가피하다. IRA에 따른 미래 이익을 기대하며 단행한 국내 기업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전면 재조정 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산업연구원은 “에너지저장장치(ESS), 미래 모빌리티(UAM, 전기선박 등) 등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국내 투자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IRA 지원 규모 축소 등 미국 투자 위축 우려에 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할 차세대 소재‧전지 기술 개발을 통해 미래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IRA 세액 공제 축소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LG에너지솔루션은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월 이스즈자동차, 7월 르노, 10월 메르세데스-벤츠, 11월 리비안과 LFP 배터리 공급 계약에 성공했다. 포드와는 고전압 미드니켈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지난 10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우주선에 탑재할 전력 공급용 배터리를 납품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SK온도 닛산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SK온은 북미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닛산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지역 선정에 나서고 있다.
두 업체는 신규 투자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모양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하반기 들어 미국에 신규로 지을 예정이던 전기차 배터리 전용 공장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이차전지 업계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과 합작법인으로 설립한 얼티엄셀즈가 미국 미시간주 랜싱에 지을 예정이던 3공장 건설을 중단했다. 또 미국 애리조나주의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전용 생산 공장 건설을 착공 두 달 만에 일시 중단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지난 10월 28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투자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북미 지역에 신규 증설 규모를 축소하고, 속도 조절을 통해 과잉 생산을 막고 투자 손실을 줄여나가고자 한다. 내년에는 올해 대비 시설투자 집행이 상당폭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SK온도 닛산에 공급할 배터리를 포드와 합작으로 세운 켄터키 1공장에서 생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에코프로비엠, 포드와 합작해 짓는 캐나다 양극재 공장 건설에서 포드가 빠진다는 캐나다 현지 보도가 전해지면서 SK온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현대차와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의 규모를 줄인다는 소식도 나오고 있다.
SK온 관계자는 “닛산과 관련해서는 아직 확정된 바 없으며, 캐나다 베캉쿠아 양극재 공장의 경우 건설이 진행 중이다. 현대차 합작법인(JV) 공장은 내년 말 완공 시점 수요에 맞춰 공장 가동할 예정”이라며 “북미 시장 주요 JV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연내 집행됨에 따라, 2025년부터 SK온 설비 투자 규모는 축소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두 업체와 달리 삼성SDI는 뒤늦게 미국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는 12월부터 스텔란티스 합작 배터리 공장을 조기 가동할 예정이다. 연간 생산능력은 33GWh로 예상된다. 지난 8월에는 GM과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본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인디애나주에 35억 달러를 들여 배터리 공장을 짓고 2027년부터 양산하는 게 목표다. 연간 생산능력은 27GWh로 시작해 36GWh로 확대할 전망이다.
업체들이 각각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주가는 연일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13일 테슬라 주가가 6.15% 하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이차전지 관련주 전체가 출렁였다. 삼성SDI는 5일부터 7영업일 연속 하락이다. 대형 계약 수주로 홀로 주가가 상승했던 LG에너지솔루션마저 13일 주가가 약 3% 하락했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에 따른 IRA 정책 후퇴 및 전동화 속도 조절 우려로 단기 수요 불확실성 확대 및 투자심리 악화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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