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관계 피해자와 잦은 갈등 벌이다 살인…평판 좋은 엘리트 장교의 ‘두 얼굴’
#살해 전 ‘위조 번호판’ 검색…계획범죄 정황
피의자 양광준은 아내와 아이 둘을 둔 유부남이며, 피해자인 임기제 군무원 A 씨(33)는 미혼이었다. 양광준의 주장에 따르면 옆 부서에 근무하는 A 씨에게 일을 가르쳐 주거나 도와주면서 올해 초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경찰은 12일 오전 브리핑에서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양광준은 피해자와 연인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 이를 놓고 지난 6월쯤부터 수개월째 말다툼을 하면서 갈등 관계를 빚어왔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양광준은 A 씨 살해 당일인 10월 25일 오전 출근길에 A 씨와 카풀을 하며 이동하던 중 말다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은 범행 직전인 25일 오후 3시쯤 양광준의 차 안에서 교제 관련 문제로 다퉜고, 결국 양광준이 노트북 도난방지 줄로 목을 졸라 피해자를 숨지게 했다”고 말했다.
양광준은 숨진 A 씨를 옷가지로 덮어뒀다가 25일 오후 9시쯤 사무실에서 가지고 나온 공구로 A 씨의 시신을 훼손했다. 양광준은 나눠 담은 사체에 돌을 담아 26일 오후 9시 40분쯤 강원도 화천군 북한강변에 유기했다.
양광준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과 A 씨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지만 계획범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살인 이후 양광준의 대처는 치밀하고 지능적이었다. 양광준은 피해자 휴대전화를 통해 A 씨의 가족과 지인, 직장 등에 문자를 보내 피해자가 숨진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정보보안 전문가인 그는 물리적으로 파손된 전자기기의 복구가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A 씨의 휴대전화를 파손한 뒤 버렸다. 경찰이 어렵게 A 씨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한 결과, 양광준이 고의로 문자 메시지 등을 삭제한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양광준은 A 씨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경찰에 전화까지 걸었다. 사건 발생 이튿날인 26일 오전 8시 40분쯤 A 씨의 어머니는 112에 딸의 미귀가 신고를 했다. 신고를 접수한 관악구의 한 파출소 직원이 A 씨에게 카카오톡 보이스톡을 걸자 양광준이 여성인 A 씨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미귀가 신고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A 씨 어머니에게 “딸과 연락이 됐지만 확인해야 하니 직장에 공문을 보내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하겠다”며 안내했지만, A 씨의 어머니는 직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신고를 취소했다. 경찰이 딸과 연락했다고 믿은 A 씨의 가족은 첫 신고일인 26일 이후 11월 2일 A 씨의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재신고를 하지 않았다. 경찰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유사 사안이 생겼을 때 경찰 대응이 미흡한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A 씨를 살해하기 전 양광준의 행적을 바탕으로 살인도 계획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양광준은 A 씨를 살해하기 약 7시간 30분 전인 25일 오전 7시 35분쯤 부대에 도착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차량 위조 번호판 관련 내용을 검색했다. 경찰 관계자는 “양광준이 시신을 유기하러 가기 전 직접 위조 번호판을 만든 것을 확인했다”며 “A 씨의 시신을 유기하기 전에 A4 용지로 만든 위조 번호판을 자신의 SUV 차량에 부착해 경찰 추적을 피하려 했다”고 말했다
양광준은 경찰이 위조 차량번호판을 검색한 기록 등을 들이밀자 “검색 시점부터 A 씨를 살해할 마음이 있었다”는 취지로 시인했다고 전해진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프로파일러 분석에서 사체 손괴와 은닉 부분이 지능적으로 이뤄지고 살인의 고의성이 있는 등 계획범죄 성향이 일부 보인다는 판단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트 장교’의 두 얼굴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강원경찰청은 7일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양광준의 이름, 나이, 사진 등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심의위원회는 수단의 잔인성, 중대한 피해,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 국민의 알권리, 공공의 이익 등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해 신상정보 공개를 의결했다. 2010년 피의자 신상 공개제도 시행 이후 현역 장교가 신상정보 공개 심의 대상이 되고 실제로 공개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양광준은 심의위원회 결정에 반발하며 이의를 제기했고, 강원경찰청은 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 따라 그의 신상 공개를 12일까지 최대 5일간 보류하기로 했다. 11월 8일 양광준은 춘천지방법원에 신상공개 집행정지 가처분과 함께 본안소송인 신상정보 공개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법원이 11일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고 이를 기각하면서 13일 양광준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이를 두고 범죄 전문가들은 양광준이 시간을 끌어 자신의 범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피의자 의견 청취 절차, 신상정보 공개 전 5일의 유예기간, 불송치·불기소·무죄 확정시 별도의 형사보상규정과 같은 신상공개 대상자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실제 강원경찰청은 2020년 7월 텔레그램 N번방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구매한 30대 남성 피의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지만, 당시 피의자가 반발하면서 유예기간을 뒀다. 이 피의자는 유예기간 중 신상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며,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서 끝내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복잡하게 중대범죄 피의자 신상공개를 제한하는 나라는 드물다”며 “신상정보 공개 제도의 대상은 범죄 예방 목적 차원의 공적인 사건인데 이렇게 철저히 방어권을 보장해줄 이유가 없다. 신상정보 공개 시 유예기간을 두는 절차는 폐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군인이 잔혹한 살인을 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양광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엘리트 장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육사 65기 출신으로 2009년 정보통신병과 소위로 임관했으며, 38세의 이른 나이로 중령 진급이 예정돼 있었다. 사건 당시인 10월 25일에는 과천 국군사이버작전사령부 소속 부대에서 사이버병과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지만 10월 28일 서울 송파구 산하 한 부대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양광준은 2016년 카이스트 정보보호대학원에서 사이버 안전 관련 위탁교육을 받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위탁교육은 선발된 우수한 군인이 국내외 군 전문교육기관 또는 민간 대학·대학원에서 학위 등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2019년에는 영관 장교로서 기본 소양을 배우는 합동군사대학교 합동기본 정규과정을 졸업했다. 합동기본 정규과정 졸업식에서 양광준은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표창을 받기도 했다.
11월 6일 육군 대위 출신 유튜버 ‘캡틴 김상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중령 진급 발표가 얼마 전에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이미 피의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상태”라면서 “육사 동문들에게 물어봤더니 ‘육사에서 착하고 성실하고 성적도 좋았으며, 후배들한테 나쁜 소리 없이 참 착했던 선배인데 너무 충격적’이라고 이야기하더라”라고 말했다.
군 기강에 관련된 지적도 나온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14일 YTN라디오에서 “사이버작전사령부는 국방부 직할 부대다. 대북 심리전 등 중요 업무를 하는데 주차장 보안이 허술하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1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해당 사건과 관련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기강 확립 차원에서 (국방부 내부 감찰을 통해) 점검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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