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악재·선박 공급 과잉 예상…선대 확충·장기운송계약·터미널 늘려야…HMM “기존 투자 전략 유지”
#가시밭길 예상되는 업황
HMM이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3조 5520억 원, 영업이익 1조 4613억 원을 기록했다. 3분기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지난 한 해 영업이익(5848억 원)의 2.5배 수준이다. 실적 발표 직전에 집계된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 1조 1818억 원도 뛰어넘었다.
올해 글로벌 컨테이너 해상 물동량은 홍해 사태로 인한 유럽노선의 희망봉 우회로가 전년 동기 대비 18%가량 증가했다. 희망봉 우회로는 기존의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항해 거리가 9000km가량 길어 운항 소요 시간이 늘어나는데, 정기선은 일주일에 한 번 선박이 출항해야 하기 때문에 운항거리가 늘어나면 투입되는 선박도 늘어난다. 일시적으로 선박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운임이 올랐다. HMM에는 호재가 된 셈이다.
그러나 당장 내년부터는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관세 상향과 리쇼어링(해외로 옮긴 생산시설을 자국 내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 유도로 인해 수출입 물동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이제 재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고 상원 선거를 앞둔 추후 2년간은 밀어붙일 것이다. 공약대로라면 국제 무역의 위축을 가져오리란 사실은 명약관화”라며 “트럼프 취임 이후 적어도 2~3년 사이에는 반등을 기대할 만한 경제 여건이 보이지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수요는 1~3%가량만 증가하고 있고 올해 이미 공급과잉 상태에 접어들었는데 공급망 이벤트로 선사들이 예상치 못한 호황을 누렸다. 공급망이 정상화하면 운임 하락의 충격을 단번에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분간은 업황이 ‘반짝 상승’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1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중국발 밀어내기 물량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미국향 수출 물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3월 내에 관세 장벽이 세워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 전에 최대한 재고를 처리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항만으로 선박들이 몰리면서 ‘항만 적체’ 현상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역을 못하고 기다리는 선박들이 늘어나면 전체적으로 정기 항로에 투입할 선박의 공급이 부족해져 운임이 덩달아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선제적 투자 필요" 목소리
HMM은 2025년 2월부터 5년간 협력하는 신규 협력체제 ‘프리미어 얼라이언스(Premier Alliance)’를 결성한다. 기존 협력체제인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 파트너인 일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 대만 양밍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1위 선사인 MSC와 북유럽 및 지중해 항로에서 4년간 선복교환을 하기로 합의했다. MSC의 선복량은 620만TEU, ONE는 195만TEU, HMM은 88만TEU, 양밍이 70만TEU다. HMM이 차후 얼라이언스 내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려면 선복량을 두 배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항로에 배를 더 많이 밀어넣을 수 있게 될수록 얼라이언스 내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수익이 늘어난다. 화주 영업은 타사가 해도 실제로 선박을 제공하는 회사가 돈을 버는 구조”라며 “HMM이 선복량을 늘리면 제미나이 협력의 패싱으로 위상이 추락한 부산항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선박 크기는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HMM의 수송능력을 척수로 나눈 평균 선형은 1만 1100TEU로, 전 세계 선사 중 1위다. 2만 4000TEU급 초대형 선박을 많이 보유했기 때문이다. 2위를 기록한 ONE보다 40% 이상 큰 규모다. 초대형선이 인도될 무렵 때마침 팬데믹으로 인한 사상 초유의 해운 호황이 찾아오면서 지난 10년간의 극심한 부진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었지만 향후 물동량이 부족해지면 대형 선박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교훈 회장은 “침체기가 오면 물동량 채우기 어려운 대형 선박들이 가장 큰 손해를 본다. 특히 인트라 아시아(아시아 역내 운송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항로)는 내년에 분명 선복량이 초과 공급된다”며 “HMM은 장기운송 계약비율도 낮아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향후 선박 크기를 줄여나가는 것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장기운송계약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국제선사인 머스크나 하팍로이드 등은 장거리 물동량의 70%를 장기운송계약을 통해 처리한다. HMM의 경우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장기운송계약 비율이 20%선인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운송계약 비중이 높을수록 운임의 등락에 영향받지 않는 안정적인 실적을 기대할 수 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일장일단이 있긴 하지만 해운 선사가 화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장기운송계약이다. 불황일 때 해운선사가 물동량을 유치하려면 화주들 간의 네트워크에 기대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장기계약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홍보나 마케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 HMM의 장기계약 비중이 낮다”고 지적했다.
HMM이 컨테이너 부두(터미널)를 추가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컨테이너 터미널은 컨테이너 화물을 반입·반출하거나 선적·하역하는 공간으로 글로벌 선사들은 전세계 곳곳의 컨테이너 터미널 회사들을 가지고 있거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으면 선사들을 상대로 요금을 청구할 수 있고 항만 적체 현상이 생겼을 때도 자사 선박을 우선적으로 집어넣고 뺄 수 있다. 머스크나 MSC, CMA-CGM 등은 각각 전세계에 40~60여 개의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지만 HMM의 경우 현재 국내외 보유 터미널이 9개로 많지 않은 수준이다.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장은 “적어도 HMM이 주로 기항해서 물건을 내리고 싣는 미국 동부 항만에는 보유 지분이 있어야 한다”며 “현재 HMM이 미주 항로에 강점이 있는 선사는 맞지만 글로벌 공급망이 바뀌게 되면 선사들의 주요 항로들도 바뀔 확률이 큰데 막 개발돼 아직 대형 선박들이 들어가기 쉽지 않은 항만에도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내륙운송망까지 정비하고 머스크처럼 종합물류체제로 간다면 터미널 투자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터미널 확보라든가 그 이후의 단계까지 책임지고 투자 계획을 세울 주체가 명확하지가 않기 때문에 주인을 빨리 정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제언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경기의 사이클은 돌고 돌기 때문에 해운회사들은 5~6년을 내다보고 투자한다. 다운 사이클을 시점에 투자에 나서는 게 가장 현명한 전략”이라며 “HMM의 투자 전략이 향후 실적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HMM 관계자는 “미국의 새 대통령 당선과는 관계없이 기존에 발표한 투자 전략을 밀고 나갈 방침”이라며 “2030년까지 11조 원을 투자해 155만TEU(130척) 수준의 컨테이너 선대를 확보할 계획이고 신규 터미널 및 시설에도 4조 2000억 원가량을 투자한다. 기존 항만 터미널을 확장하고 주요 거점 항만 터미널을 추가 확보할 계획이며, 내륙 물류기지 사업에 진출해 앤드 투 앤드 서비스 제공으로 종합 물류사업 진출 기반을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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