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을 모친 앞에서 흉기로…보름 사이 교제폭력 사망자 4명 발생 등 피해 이어지지만 방지책 미흡
지난 8일 낮 12시께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소재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30대 여성이 사망했고, 60대 여성이 크게 다쳤다. 이후 피의자는 스스로 112로 전화해 경찰에 자신의 범행을 직접 신고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피의자는 34세 남성 서동하로 11월 14일 경북경찰청이 그의 머그샷과 함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서동하는 피해자인 A 씨의 전 연인으로 스토킹 범죄가 살인으로 이어진 교제살인 사건이다. 두 사람은 모두 구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서동하는 미용사로 구미 소재의 한 미용실에서 실장으로 근무 중이었고, A 씨는 아파트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은 2024년 초부터 4개월가량 사귀었지만 이후 관계가 나빠져 결별했다.
문제는 서동하가 A 씨와 결별한 뒤에도 거듭 A 씨 거주지 등을 찾아가 만남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서동하는 ‘한 번만 만나 달라’ ‘사랑한다’ 등의 문자도 계속 보냈다. 전형적인 스토킹 범죄가 이어지자 A 씨는 7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경찰에 신고했다. 7월과 8월에 한 번씩 그리고 11월 1일에도 신고가 이뤄졌다.
7월 첫 신고 당시에는 경찰이 서동하를 제지하는 수준에서 그쳤지만 다시 스토킹이 이어져 8월에 두 번째 신고가 이뤄지자 경찰은 서동하를 전문 상담 기관에서 운영하는 교정 프로그램을 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서동하는 8월부터 9월 초까지 주 1회씩 5회에 걸쳐 교육을 받았다.
해당 상담 기관은 서동하에 대해 ‘개선의지가 있고, 스토킹 재범 위험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이는 재범 위험 수준 단계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의 평가다. 그렇지만 서동하는 11월 1일 다시 A 씨와 직접 만남을 시도했다. A 씨는 서동하가 자신이 일하는 곳까지 찾아왔던 사실을 파악해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세 번째 신고까지 접수되자 경찰은 적극적인 보호로 방향을 틀었다. 신고를 받은 11월 1일 A 씨의 집을 방문한 경찰은 바로 순찰을 강화했고 2일에는 미니 CCTV, 스마트 초인종, 문 열림 센서 등 보호 장비를 제공했다. 또 경찰 권유로 A 씨가 접근금지 및 통신금지를 신청하자 법원은 6일 서동하에게 A 씨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및 통신금지 등의 잠정 조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경찰과 법원의 조치도 피해자의 사망을 막지 못했다. 11월 8일 다시 A 씨 집을 찾아간 서동하는 아파트 복도에서 A 씨 모친을 만나 말다툼을 벌이다 격분해 준비해 간 흉기를 휘둘렀다. 서동하의 흉기에 A 씨는 사망했고 A 씨 모친도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 씨 모친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서동하는 “스토킹 고소 취하 합의를 해주지 않아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거쳐 11월 14일 서동하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경북경찰청은 “범행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 또 서동하가 범행을 자백했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고 판단해 (신상정보) 공개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10월 25일부터 11월 10일까지 보름여 사이 교제폭력으로 무려 4명의 여성이 사망했다. 이 가운데 두 사건의 피의자는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10월 25일 벌어진 ‘북한강 토막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군 장교 양광준(38)과 11월 8일 벌어진 ‘구미 교제살인 사건’의 서동하가 그 주인공이다. 양광준의 경우 사건 초기에는 살해 동기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인 군무원과 연인관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11월 5일에는 50대 남성이 경기도 파주시의 한 숙박업소에서 연인관계인 5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함께 모텔에 들어갔지만 술을 마시던 중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로 살해했다. 말다툼 도중 우발적으로 살인이 벌어졌다고 보기에는 흉기를 사전에 준비했다는 점이 석연찮다. 피의자는 경찰조사에서 “겁을 주려고 (흉기를) 준비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8일에는 서울 강서구 화곡역 인근 오피스텔에서 30대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오전 6시 40분께 소방당국에 화재 신고가 접수됐는데 출동해보니 30대 여성이 숨져 있었다. 피의자 역시 현장에 있었는데 만취 상태였다. 피의자가 번개탄을 피운 흔적도 발견됐는데 이로 인해 타는 냄새가 난다는 화재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는 피해자와 관계를 ‘아는 사이’라고만 밝혀 교제살인인지 여부는 경찰 수사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피의자가 “(피해자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얘기를 듣고 욱해서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교제 살인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방지 대책의 실효성은 의문이다. 서동하의 경우 전문 상담 기관 운영 교정 프로그램을 주 1회씩 5회 동안 교육받아 ‘개선의지가 있고, 스토킹 재범 위험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스토킹 재범을 넘어 교제살인까지 저질렀다. 경찰이 순찰을 강화하고 보호 장비를 지급하고 법원은 접근금지 및 통신금지를 내렸지만 결국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관련법도 없다. ‘교제폭력방지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어디까지를 교제 관계로 볼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정의’ 등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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