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예상보다 높은 양형에 놀라는 분위기…“유·무죄 나눠 판단해 2심서 다툴 여지 줄어들어”
#“김문기 모른다”는 무죄, “골프 친 적 없다”는 유죄
검찰이 기소한 것은 두 가지 발언이었다. 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가 2021년 12월 22일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대장동 개발 사업 실무자인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한 “제가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 하위 직원이었으니까. 제가 실제로 하위 직원이라서 기억이 안 난다”는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봤다. 김 씨는 당시 대장동 개발 사업을 추진한 실무자로 숨진 채 발견됐고, 이 대표의 이 발언은 김 씨가 숨진 다음 날 인터뷰에서 나온 것이었다.
법원은 이 발언에 대해 일부는 무죄라고 봤다. 누군가를 안다, 모른다고 표현하는 부분이 모호할 수 있다는 지점을 고려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문기 전 처장 관련 허위사실 공표에서 해외 출장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부분은 유죄로 인정되고 나머지는 무죄”라며 해외 출장골프 사실을 부인한 것만 유죄로 봤다.
#‘국토부 협박’ 백현동 발언은 유죄
양형의 핵심 사유가 된 허위사실 공표는 백현동 사건 관련이었다. 2021년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는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당시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요청했고, 저희가 응할 수밖에 없었다.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국토부의 직무유기 발언 자체가 없어 허위라며 “단순한 협조 요청이었을 뿐 압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발언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로 봤다. 여러 자료를 고려할 때 성남시와 성남시장이 스스로 검토해 변경한 것으로 ‘협박당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민의를 왜곡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2년)의 50%를 받아들인 셈이다.
#뼈아픈 선고, 양형이 특히
법조계에서는 ‘일부 유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일요신문이 전·현직 판사 5명에게 물어본 결과, 5명 모두 ‘일부는 유죄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도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표현의 모호함이 있어 무죄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내가 재판장이라면 백현동 발언은 유죄를,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고 한 발언은 무죄를 할 것 같다”며 “만일 김문기 처장과 만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했다면 유죄를 했겠지만 ‘안다, 모른다’라는 표현이 너무 추상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형에 대해서는 대부분 ‘벌금’을 점쳤던 지라 법조계는 생각보다 높은 양형에 놀라는 분위기다. 형사 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벌금 200만 원 정도를 선고하면 정치적으로도 충분히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벌금형 100만 원 이상을 예상했는데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고 말했다.
#2심에서 ‘다툴 여지’ 좁혀진 것이 악재
특히 법조계는 2심에서 다툼의 여지가 좁혀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김문기 처장에 대한 허위 발언 내용도 구체적으로 나눠 유·무죄를 판단했기 때문에 유죄 판단이 난 ‘골프 친 적이 없다’는 부분은 사실상 무죄로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골프를 함께 친 사진 등이 법원에 제출된 상황이기 때문에 백현동 관련 발언 정도만 유·무죄를 다퉈 볼 만한 상황이 됐다.
양형도 뼈아프다. 벌금 100만 원 이상 유죄가 확정되면 공직선거법과 국회법에 따라 이 대표는 국회의원직을 잃고, 10년간 선거권·피선거권이 제한돼 2027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고, 정당법상 선거권이 없는 경우 당원 자격을 상실한다. 또 민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전받은 지난 대선 선거비용 434억 원도 반납해야 한다.
2심에서 유죄에서 무죄로 바뀔 내용이 많지 않다면 100만 원 이하의 벌금형까지 감형될 여지도 크지 않아 보인다. 앞선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2심에서 1심보다 양형이 낮아진다는 것은 뉘우친다거나 유죄를 인정할 때 혹은 피해자 변제가 됐다는 등의 달라진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재명 대표가 2심에서도 무죄만 주장한다면 양형이 낮아질 지점은 크게 없다”며 “감형이 되더라도 유·무죄가 바뀌지 않으면 징역 8개월 이상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원칙상 공직선거법 사건의 2심과 3심은 앞선 재판(각각 1심과 2심) 선고 후 각 3개월 이내에 결론을 내야 한다. 즉 원칙대로라면 6개월 안에 대법원 선고까지 나올 수 있다는 얘기고, 이는 2027년 3월 대선 전에 형이 확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루 전, 아내도 벌금형 선고
이보다 하루 앞서 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도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 대표의 당내 대선후보 경선 출마 선언 후인 2021년 8월 2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 전·현직 국회의원 배우자 3명, 자신의 운전기사와 수행원 등 모두 6명에게 경기도 법인카드로 10만 4000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올해 2월 재판에 넘겨졌고, 14일 수원지법은 유죄를 선고했다. 이 역시 검찰 구형(벌금 300만 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형이었다.
11월 25일에는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도 나온다. 이 사건 역시 이 대표가 법원 증인 발언에 대해 요청하는 내용이 문제가 되는데 아직 양형이 확정되지 않았을 수 있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도 나온다. 중요한 재판 경험이 많은 한 판사는 “보통 중요한 사건은 유·무죄 판단은 일찌감치 내려놓지만, 양형에 대해서는 판결 1주일 전까지도 고민을 하곤 한다”며 “판결문 작성이 보통 1주일 전에 시작되는 걸 고려하면 선거법 위반 사건이 위증교사 사건의 양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대표는 이 외에도 두 개의 재판을 더 받고 있다. 우선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와 성남 FC 불법 후원금 관련 재판이 있는데 여러 사건이 병합돼 진행되고 있어 1심 선고까지 수년이 더 걸릴 전망이다. 또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도 1심 재판을 진행 중인데 지난 8월에서야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려 1심 선고까지는 꽤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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