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에 숨겨진 ‘욕망’ 그려낸 작품…“관객들도 스스로의 욕망 들여다보는 기회 될 것”
“저는 베드신이 그 무엇보다 정교한 액션 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대와 호흡을 정말 정교하게 맞춰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생각을 거듭하며 똑똑하게 연기해야 하거든요. 카메라 각도 등에 따라 얼굴뿐 아니라 온몸으로 정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상대와 호흡을 잘 맞춰서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해요. 손의 각도까지 다 계산해서 촬영해야 하는 신이다 보니 이것저것 계산하고 외워야 할 게 정말 많았죠(웃음).”
11월 20일 개봉한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박지현은 깊은 욕망을 숨긴 채 성진(송승헌 분)과 수연(조여정 분) 커플에게 접근하는 미스터리한 첼리스트 미주를 연기했다. 수연의 친한 후배인 미주는 어느 날 수연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사이, 그의 첼리스트 자리와 약혼자이자 마에스트로인 성진을 차지하며 수연의 삶을 넘보게 된다. 수연이 없는 신혼집 안방에서 보란 듯이 성진과 관계를 맺으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지만 가끔 성진의 앞에서 보이는 섬뜩한 분노와 혐오감은 이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의 미스터리함을 더욱 증폭시킨다.
“미주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 고아로 자란 외로운 아이예요. 기댈 곳도 돌봐줄 사람도 없는 성장기를 보낸 것에 결핍이 컸을 텐데, 그 과정에서 수연이란 선배를 만나 굉장히 많이 의지하게 됐죠.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가 사라지고 수연을 배신하게 되면서부터 미주의 안에 내재된 욕망이 터져나와요. 단순히 얘기한다면 미주의 욕망은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든 친구관계의 사랑이든, 이런 것들에 대한 결핍이나 욕망 같은 게 있는 캐릭터인 거죠.”
‘히든페이스’에서 등장하는 세 인물은 모두 욕망의 결핍에 허덕인다. 박지현이 분석한 것처럼 미주는 ‘사랑’에 무엇보다 목말라 있고, 성진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자수성가했다는 자격지심 탓에 타인의 ‘인정’을 갈구한다.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부잣집 딸인 수연조차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완전한 ‘소유’에 집착한다. 이 가운데서도 유독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미주에 대해 박지현은 “목적성이 굉장히 뚜렷하기 때문에 자신의 본능에 쉽게 이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적성이 뚜렷하기에 성진을 대할 때 누구보다 더 철저하게 감정을 숨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미주는 성진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든요. 성진을 대할 때도 보면 굉장히 영혼 없이 대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성진은 수연의 어떤 것을 자극하기 위한 도구적인 인물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중에 성진에게 거짓말을 들켜도 아무렇지 않게 굴어요.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 ‘그래서, 뭐?’ 라며 더 뻔뻔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요(웃음).”
이 같은 미주의 ‘목적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각각 두 개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미주와 성진의 베드신이다. 똑같은 베드신이지만 첫 신은 성진의 눈으로, 그리고 서사가 좀 더 진행된 뒤에 회상처럼 보여주는 두 번째 신은 집안의 밀실에 갇힌 채로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수연의 눈으로 나눠진다. 베드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은 보통 관음적인 구도로 이어지지만, ‘히든페이스’의 두 번째 베드신은 그 구도 안에 수연의 시선을 더한 ‘관음의 중복’이 인상적인 포인트이기도 하다.
“성진과 함께 하는 베드신과 그걸 수연이 지켜보는 신은 각각 따로 촬영했어요. 그 신들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 서로 다르거든요. 수연이 지켜볼 때 집안의 밀실 안에 그가 갇힌 걸 성진은 모르지만, 미주는 이를 알고 의식하고 있죠. 반대로 처음에 나오는 베드신에서는 미주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를 드러내지 않아요. 그래서 같은 신이어도 앵글과 각도가 다르게 비춰지는 거죠. 첫 번째 베드신을 보시면 미주가 수연을 응시하는 듯한 장면이 있는데 바로 그 장면이 이 베드신이 이뤄진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수연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기에 베드신 자체가 그 장면을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게 거기서 드러나는 거죠.”
한편으로, 작품의 완성도나 연기적인 만족도와 별개로 여배우들에게 노출 신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낳게 된다. 2017년 데뷔 후 ‘히든페이스’를 촬영하던 2022년까지 배우 인생 고작 5년 차에 주어진 고수위의 연기를 두고 고민이 없진 않았을 터다. 노출 신만을 파편으로 조각 내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일부까지 생각한다면 박지현에게 있어 이 작품은 보통의 도전 이상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질문에 대해 그는 해당 신에서 ‘배우 박지현’이 아닌, 장면 그 자체에 조명이 비춰졌으면 하는 바람을 먼저 드러냈다.
“감독님부터 분장, 의상, 조명, 모든 분들이 저를 아름답게 담아주시려 노력을 많이 해주셨어요. 배우로서는 굉장한 자신감이 부여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거죠. 저를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담아주려 하시는 걸 보니 ‘나는 결과에 신경 안 쓰고 연기에만 온전히 집중하면 되겠다’고 믿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촬영하면서 정말 ‘복 받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현장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신감을 얻었고, 그래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서사 속 ‘반전’을 분기점으로 관객들이 바라보는 시선도 완전히 전복되는 만큼, ‘히든페이스’는 단순히 ‘수위 높은 신이 나오는 영화’라는 것 이상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특히 서로의 욕망이 가장 강하게 부딪치는 박지현의 미주와 조여정의 수연이 결말까지 펼쳐 보이는 ‘연기 차력 쇼’는 두 배우를 향한 관객들의 기대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박지현은 “영화를 통해, 그리고 세 인물을 통해 관객들도 스스로의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히든페이스’는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아요. 성진과 수연, 미주 가운데 누가 선하고 악한지 알 수 없거든요. 저는 보면서 과연 인간의 욕망을 따르는 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어긋난다고 해서 그걸 악하다고 할 수 있을지, 반대로 윤리와 도덕을 지키며 내 욕망을 저버리는 것은 선하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아마 관객 분들도 영화를 보시며 내 안에 내재된, 또 사회적 규범 탓에 실현하지 못한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신 관객 분들께 ‘어떤 캐릭터가 가장 이해되시는지, 또 가장 몰입하셨는지’ 여쭙고 싶네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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