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후 세 번째 사망사고, 첫 번째 무혐의 두 번째 조사중…현대차 “대책 마련에 최선 다할 것”
#노조 “노동 환경 개선과 책임 소재 규명 시급”
울산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19일 오후 3시경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울산4공장 내 전동화품질사업부 차량 성능 테스트 공간(체임버)에서 현대차 남양연구소 소속 책임연구원 2명과 협력업체 소속 연구원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체임버는 극한 환경에서 차량의 성능과 내구성을 검증하는 공간이다. 한 대의 차량이 들어가는 규모의 이 시설에선 온도, 습도부터 진동, 빛 노출까지 다양한 조건을 구현해 차량의 한계를 시험한다. 업계에선 연구원들이 밀폐된 체임버에서 차량 주행 테스트 중 배기가스가 외부로 배출되지 않은 채 일하다가 질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는 11월 20일 긴급 성명서를 통해 “다양한 기후 조건과 주행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해 차량 성능과 내구성 등을 테스트하는 복합 환경 체임버는 밀폐된 공간, 유해 가스 발생 등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다”며 “노동 환경의 개선과 책임 소재 규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사고 원인을 조속히 규명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대차에서 발생한 세 번째 사망사고다. 2022년 3월 전북 완주군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40대 노동자가 대형트럭 조립라인에서 트럭 운전선(캡)을 올려서 작업하던 중 캡이 갑자기 내려오면서 머리를 크게 다쳐 숨졌다.
진상조사를 맡았던 고용노동부 산하 광주지방노동청은 2023년 9월 무혐의 의견으로 해당 사건을 전주지방검찰청으로 송치했다. 전주지검 또한 현대차가 중대재해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7월에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30대 후반 노동자가 엔진 가공설비 정비 작업 중 가공설비 상부 로더가 갑자기 내려오며 머리가 끼어 결국 숨졌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해당 사건은 현재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인 2021년에는 울산공장에서 사망사고가 2건 발생했다. 2021년 1월 울산1공장 프레스 공정에서 청소 업무에 투입됐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2021년 8월에는 울산3공장 하치장에서 제품 하차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설비와 작업장 계단 사이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안전 매트가 설치되지 않았고, 리프트 작동을 중단시키는 신체 감지 센서가 없었으며, 상하차 작업을 위험하게 혼자서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건수, 올해 증가세
고용노동부는 이번 질식사 사고 직후 관할 고용노동지청(부산지방노동청 울산지청)에서 현장 출동해 해당 작업 및 동일한 작업에 대해 중지명령을 내리고 원인조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해 엄정히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또 울산경찰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11월 20일 이번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을 운영하며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충실히 하지 않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는 법률이다. 시행 초기에는 상시근로자 수 50명 이상 기업에만 적용하다가 2024년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수 5명 이상의 모든 기업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못해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산업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대표이사가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2024년 1월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 안전 및 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제반 의무를 이행하였다면 처벌받지 않는다”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과 종사자의 사망 사이에 고의 및 예견 가능성, 인과관계 여부 등을 수사를 통해 확인하고, 이것이 명확한 경우에만 처벌 받는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건수는 대체로 줄어드는 양상이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10일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접수 및 처분 현황’에 따르면 기소 건수는 △2020년 102건 △2021년 150건 △2022년 79건 △2023년 59건까지 계속 줄었다가 2024년(8월 기준) 들어 70건으로 다시 늘었다.
곽준영 법무법인 웨이브 대표변호사는 “현대차 같은 대기업은 로펌 등에 법률 자문을 받을 여력이 있기에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충분히 대비했을 것”이라면서도 “우선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만약 산업 현장에서 사고가 날 수 있는 환경임을 인지할 수 있는 안전 표지판이 설치돼 있지 않는 등 안전사고 예방에 불성실한 사실이 밝혀지면 처벌받을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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