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 이동? 유임? 정 부회장 거취 따라 인사 방향 달라져…새로운 컨트롤타워 재건 전망도 나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2022년 51조 6339억 원에서 2023년 6조 5670억 원으로 84.86% 감소했다. 증권가에서 예상하는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은 36조 원 수준이다. 2023년에 비하면 개선된 실적이지만 2022년과 비교하면 부진한 수치다. 주가도 부진하다. 삼성전자 주가는 2021년 한때 9만 원을 돌파했지만 최근에는 장중 한때 4만 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현재는 5만 원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삼성전자는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거뒀는데도 큰 폭의 인사가 없었는데 이는 올해 크게 물갈이를 하기 위한 징검다리 인사 성격이 짙었다”며 “삼성전자가 힘든 시기에 있는데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인사를 통한 방법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재계에서 주목하는 인물은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2017년부터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을 맡고 있다. 사업지원TF는 회사의 전략적 판단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을 이재용 회장에 이은 2인자로 평가하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지난 5월 집회 당시 “지금 삼성의 모든 결정권한은 정현호 부회장에게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1995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과 석사 과정을 이수했는데 당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이 회장과 친분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정현호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을 삼성전자의 최근 주가와 실적 하락의 장본인으로 거론하고 있다. 삼성전자 임원인사에서 정 부회장의 일선 후퇴설이 나오는 이유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10월 논평을 통해 “이사는 의무와 책임이 있듯이 경영자가 권한을 행사하면 책임이 수반된다”며 “정현호 부회장은 등기임원이 아니어서 최근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올바른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현호 부회장이 물러날 경우 그 자리를 대체할 인물을 찾아야 한다. 우선 거론되는 인물은 박학규 삼성전자 사장과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다. 정 부회장이 재무 전문가이므로 그 후임도 재무 관련 인사가 선임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박학규 사장은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고, 최윤호 사장 역시 오랜 기간 삼성전자에서 재무 관련 업무를 맡았다.
엔지니어 출신에게 2인자 자리를 맡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재무 전문가는 비용 절감에 집중하다보니 기술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을 받는다. 엔지니어 출신 중 눈에 띄는 인물은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다만 한종희 부회장은 현재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사업지원TF장과 대표이사를 동시에 맡으면 업무가 과중될 수 있다.
정현호 부회장이 유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일선 소장은 “인사를 통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 좋지만 대체할 인물이 없으면 대대적인 인사는 조금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예상과 달리 삼성전자의 인사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삼성전자가 진정성이 있는 혁신 의지가 있었다면 임원인사를 먼저 하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게 순서가 맞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과거 그룹 미래전략실 출신들이 다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투입되는 게 아니면 위기를 돌파할 의지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15일 10조 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공시했다. 박 대표는 이어 “삼성전자가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정현호 부회장이 사업지원TF장에서 물러난 후 새로운 컨트롤타워로 이동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후 공식적인 컨트롤타워를 두고 있지 않다.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가 사실상의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TF는 어디까지나 임시 조직이다. 삼성전자의 컨트롤타워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경영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의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삼성전자 컨트롤타워 재건 움직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이사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삼성전자 사내이사는 현재 한종희 부회장, 노태문 사장, 박학규 사장, 이정배 사장 등 4명이다. 이 중 한종희 부회장을 제외한 3명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노태문 사장은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X 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 MX 사업부의 최근 실적을 고려하면 노 사장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삼성전자 MX 사업부 매출은 2022년 115조 4254억 원에서 2023년 108조 6325억 원으로 5.89% 줄었다. 그나마 올해 1~3분기 89조 4130억 원을 기록하며 2023년 대비 개선된 실적을 기대하고 있지만 2022년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정배 사장은 DS(반도체) 사업부 산하 메모리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 DS 사업부는 지난해 최악의 시기를 보내면서 대대적 인력 교체설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DS 사업부는 지난해 14조 8975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뒀다. 올해 1~3분기에는 12조 2292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한숨 돌렸다. 그러나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은 불안 요소로 남아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1a(4세대), 1b(5세대), 1c(6세대) nm(나노미터) 제품의 첫 개발을 경쟁사에게 빼앗겼고, 이로 인해 응용 제품인 ‘HBM3e’의 양산도 크게 뒤처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본원 경쟁력 회복은 1c 나노 D램의 성공 여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DDR5 및 HBM 경쟁력이 약세인 것은 무엇보다도 1a, 1b 나노 D램의 특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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