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선수 타깃 ‘C프로젝트’ 가동, 디자인 개혁도 부활 일조…적자 딛고 사상 최대 매출, 1년 만에 시총 두 배
#책임 전가 반복했던 침체기
도쿄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오니츠카타이거’ 매장은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오니츠카타이거는 아식스의 프리미엄 라인으로, 패션에 초점을 맞춘 스니커즈를 선보인다. 한 미국인 고객은 “미국에서도 오니츠카타이거의 인기가 높다”며 “색상과 디자인 종류가 다양하고 착용감이 매우 좋다”고 전했다.
최근 아식스의 실적이 놀랍다. 주력 상품인 러닝화가 세계적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아식스 산하의 오니츠카타이거 브랜드도 매출 견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가도 폭등세다. 1972년 상장한 아식스는 2023년 8월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엔을 넘어섰는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은 2024년 7월 또다시 2조 엔을 돌파했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8년 히로타 야스히토 CEO(최고경영자)가 아식스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의 일이다. 히로타 CEO는 “쌓이는 재고에 골머리를 앓을 정도로 경영 상황이 어려웠다”며 “본사와 판매사가 서로 책임 전가를 반복했다”고 회고했다. 본사 쪽은 “실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판매 방식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했고, 판매사 쪽은 “본사가 만든 제품이 별로라서 팔리지 않는다”라며 떠넘겼다.
히로타 CEO는 이러한 구조부터 손봤다. 권한과 책임 소재가 명확한 조직으로 개혁을 단행한 것. 종래라면 ‘생산’ ‘판매’ 등 프로세스별로 부서를 구성하겠지만, 그는 ‘러닝화’ ‘오니츠카타이거’ 등 제품의 카테고리별로 부서를 재편성했다. 덕분에 각각의 부서가 유연한 전략을 짤 수 있게 됐다.
#착용률 제로 아식스의 굴욕
아식스는 1949년 고베에서 오니츠카 기하치로가 창립했다. 이후 지속적인 소재 개발과 기술력으로 ‘운동화 명가’로 자리 잡았다. 미국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가 1964년 일본 여행 중 오니츠카 기하치로를 만나 “오니츠카의 신발을 미국에서 독점 유통하고 싶다”며 담판을 지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필 나이트는 단순 유통을 넘어 1971년 자체 브랜드 나이키를 탄생시켰고, 세계 제일의 스포츠어패럴 기업으로 거듭났다. 반면, 아식스는 트렌디함에 밀려 ‘나침반 없는 배’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떤 신발을 만들지조차 초점이 흔들렸다.
2021년 1월 열린 도쿄-하코네 구간 이어달리기 마라톤 대회에서는 굴욕을 맛봤다. 일명 ‘하코네 에키덴’에 출전한 210명 중 아식스 신발을 신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출전자의 30%가 아식스를 신었는데, 불과 4년 만에 점유율이 0%로 추락한 것이다. 대신 이 대회에서 200명이 넘는 선수가 택한 것은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Vaporfly)였다.
2017년 나이키가 처음 선보인 베이퍼플라이는 밑창 두께가 두툼하고 탄성이 큰 특수소재를 사용한 신발이다. 이전까지는 바닥이 납작한 경량화가 육상계의 상식이었으나 나이키는 이걸 깨트렸다. 베이퍼플라이를 신은 선수들이 줄줄이 기록을 단축하자 아식스의 신발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마라톤화 시장을 주도하던 아식스의 지반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히로타 CEO는 “아식스가 과거의 틀에 갇혀 경쟁력을 잃었다”고 분석했다. “베이퍼플라이의 열풍을 마주하고서도 과거 성공에만 연연해 ‘두꺼운 밑창은 일시적인 붐이다’ ‘다치기 쉽다’ ‘일부 사람밖에 맞지 않는다’라는 변명만 하다 보니 혁신이 늦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쟁업체의 신발을 신는 선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히로타 CEO는 반격을 꾀했다. 2019년부터 시작된 ‘C프로젝트’다. 요컨대 일류 운동선수들이 최대한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도록 신발을 개발하는 팀이다. 배경에는 ‘정상부터 공격하라’는 창업자의 가르침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류 선수들이 아식스를 신게 하고, 장점을 알려 일반인들도 구입하게 하는 작전이다.
‘정상을 탈환하겠다’라는 의미로 일본어 ‘정상(頂上·Chojo)’의 첫 글자를 따 C프로젝트라고 이름을 지었다. 부서에 상관없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장 직속팀을 조직했다. C프로젝트를 통해 신발을 개발한 것이 성과를 올렸고, 회사 경영 전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략대로 선수용뿐만 아니라 일반 러닝화와 스니커즈 등의 판매도 덩달아 증가한 것이다.
#대세 아식스가 돌아왔다
먼저 점유율이 0%까지 떨어진 하코네 에키덴이다. 올해 대회에서는 아식스 신발을 신은 선수의 비율이 24.8%까지 회복됐다.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는 아식스 신발을 신은 바시르 아브디 선수(벨기에)가 은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도 올렸다.
디자인 개혁도 아식스 부활에 일조했다. 특히 불가리아 출신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와의 협업은 전 세계 스니커즈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기능성과 패션성이 합쳐지면서 흔히 아식스 하면 떠오르는 ‘체대생 신발’ ‘아저씨 신발’이라는 지루한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유럽과 미국의 패션 관계자들도 “최근의 아식스는 흥미롭다”라고 주목한다.
현재 스포츠와 패션을 결합한 시장은 세계적인 격전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거대 브랜드뿐만 아니라 신흥 브랜드의 대두로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 데커스에서 전개하는 글로벌 스포츠브랜드 ‘호카’의 성장세가 무섭다. 2023년 순매출이 18억 달러(약 2조 5158억 원)를 기록하는 등 급성장 중이다. 스위스에서 탄생한 브랜드 ‘온’도 신진기예의 라이벌이다. 독자적인 쿠셔닝 기술로 돌풍을 일으켜 2023년 매출액은 17.9억 스위스프랑(약 2조 8300억 원)에 달한다.
트레일 러닝화로 유명한 프랑스 브랜드 ‘살로몬’도 거리에서 신는 수요가 급속히 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나이키나 아디다스 외에 개성 있는 운동화를 신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국제 시장의 경쟁 속도는 빠르고 이에 아식스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히로타 CEO는 “내년 9월부터 야구용품과 체육복 사업에서 철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접고, 부가가치가 높은 러닝화 등을 축으로 사업 선택과 집중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아식스는 최근 성장세에 힘입어 북미, 유럽, 중화권에서의 시장 점유율을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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