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영화에서 투자 확정이 곧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투자 확정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뿐이다. 그 영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그리고 투자자들에게까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투자가 결정된 순간은 마냥 행복감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가장 긴장해야 될 때라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투자 확정에 샴페인을 터트리고 긴장이 풀어지면 결국 제작 현장에 문제가 생긴다. 스태프 간의 화합도 이루어지지 않아 갈등이 생기고 감독과 배우들은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제작비는 원래 투자자와 합의한 금액을 초과해서 그 책임을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분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아니, 이런 경우가 부지기수다.
설상가상으로 영화를 만들고 대중에게 선보였으나 작품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면 제작자는 어느 순간 차라리 이 작품을 만들지 않았으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수년간 고생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투자를 결정받고 환호의 순간과 행복한 감정을 가졌던 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을 수도 있다.
필자는 그런 경험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제는 투자가 결정되면 긴장을 하게 된다. 두렵고 무서울 때도 있다. 이제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투자가 결정된 순간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지만 그 감정을 절제하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순간이 가장 두렵고 무섭다.
대한민국 콘텐츠는 지난 5년여 동안 상상도 할 수 없는 영광을 누렸다.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를 동시에 석권한 영화 ‘기생충’은 대한민국 영화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손색이 없었다. 영어 영화가 아닌 한국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전 세계 관객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 동시대를 살아간 영화인들은 물론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영광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 역대 시리즈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오징어게임’은 한국 전체 콘텐츠의 게임 체인저로서 ‘오징어게임’ 이후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미국 콘텐츠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높은 선호도와 관심을 끌 수 있게 됐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새롭게 부상한 K콘텐츠는 이제 예능에서까지 그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피지컬100’과 올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흑백요리사’는 한국 콘텐츠가 모든 분야에서 수준급임을 증명했다. K팝에서도 방탄소년단(BTS) 노래가 빌보드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각종 음악상을 휩쓰는 것이 하나도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2024년엔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제 한국 콘텐츠는 영화, 드라마, 음악, 예능은 물론 순수문학에서도 세계 정상급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한국 콘텐츠는 산업적으로 역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영화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관객수가 급감했다. 아직도 팬데믹 이전으로 관객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신작영화의 제작규모는 급속히 감소했다.
드라마 시장도 공중파의 제작편성이 급감하고 로컬 OTT의 제작도 원활하지 못하다. 글로벌 OTT 의존도는 더욱 상승했고, 그로 인한 산업의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가장 크게 성장했던 한국 콘텐츠가 산업적으로는 가장 위기의 순간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콘텐츠만 이러할까. 우리 반도체는, 자동차는, 조선업은, 우리 석유화학은?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 우리를 이끌어줘야 하는 국정의 결정권자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해주기 바란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