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위기 상황 보수 구심점 역할 시동? 영향력 제한적, 후계자도 없어 ‘큰 의미 부여 어렵다’ 해석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1월 16일 대구 수성구 한 식당에서 대구·경북(TK) 지역의 3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추경호 원내대표가 지역의 중진 의원들과 약속한 오찬 자리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초청하면서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5선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4선 윤재옥(대구 달서을) 김상훈(대구 서구) 의원, 3선 추경호 원내대표(대구 달성) 김정재(경북 포항북구) 송언석(경북 김천) 이만희(경북 영천·청도) 임이자(경북 상주·문경) 의원 등 8명이 참석했다. 초선이지만 박 전 대통령 최측근인 유영하 의원(대구 달서갑)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치 현안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당이 화합하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구로 내려온 뒤 공식적으로 현역 의원들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을 받고 2022년 3월부터 대구 달성군 자택에서 머물러왔다. 여권의 많은 정치인들이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려 했지만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친박계’로 분류되던 한 전직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며 방문을 거부했다. 실제 건강이 안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자신을 따르던 여당 의원들이 2016년 본인을 대통령직에서 탄핵하고 구속까지 시켰다는 배신감이 컸던 걸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이 다소 해소된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TK의 일부 시민들과 지지자들 앞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11월 14일 경북 구미 구미코에서 열린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신 107돌 문화행사’에 참석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는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잘살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일생을 살아가신 분이셨다”며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작은 체구로 어찌 그런 인생을 사셨는지, 내가 나이가 들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애잔함이 더 커진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가 어렵고 대외적 여건도 녹록지 않다”면서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치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행사는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매년 주최해왔지만, 박 전 대통령이 찾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구미를 찾은 것도 2023년 8월 모친 육영수 여사 49주기 기일에 구미 상모동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이후 1년 3개월 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많은 해석이 분출한다. 여권 권력 핵심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과 연결 짓는 시선도 그중 하나다.
‘명태균 게이트’로 불거진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국정개입 논란 등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갤럽이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0%에 불과했다.
특히 ‘보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TK 지역에서의 하락이 눈에 띈다. 여론조사 수치 지역별로 보면 대구·경북에서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 52%를 나타냈다. 윤 대통령 직무수행을 부정평가한 응답자에 그 이유를 묻자 ‘김건희 여사 문제’가 14%로 가장 높게 나왔다.
한동훈 대표 역시 취임 네 달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며 정치력에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그러자 각종 여론조사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가 하락하며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3배 차이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론조사공정이 데일리안 의뢰로 지난 11월 18~19일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주자 호감도’에서 이재명 대표가 43.6%로 1위, 한동훈 대표가 17.3%로 2위를 기록했다. 두 사람의 격차는 26.3%포인트(p)를 보였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처럼 두 사람의 지지율이 동반 추락하게 된 데는 민생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할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서로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오찬 회동에 참석한 의원들 중에는 친윤계와 친한계가 혼재돼 있었다. 추경호 원내대표나 윤재옥 임이자 의원 등은 친윤계로 분류된다. 김상훈 의원은 한동훈 대표 취임 이후 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친한계로 알려졌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나 한 대표와 오랫동안 정치를 함께 해오며 계파를 형성한 게 아니다. 여권 관계자는 “향후 치러지는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윤 대통령이나 한 대표의 낮은 지지율이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면 언제든 버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현재 당내에 친윤계를 제외하고는 계파가 전무한 상황”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여전히 TK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그런 상황이 오면 보수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친박계 전직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은 과거 특검에서 자신을 수사했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에 아직까지 앙금이 남아있다고 한다. 지금은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있지만, 윤석열 정부가 더 흔들리게 되면 친박계가 다시 규합해 당의 주도권을 되찾으려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 외부활동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낮을 뿐 아니라 정치 일선에 등장한다 해도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박 전 대통령의 자기장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은 결국 TK지역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뒤를 잇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친박계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사실상 ‘폐족’된 거나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최경환 전 부총리 등 친박계 인사들이 여의도 재입성을 꿈꿨지만 실패하지 않았나. 박 전 대통령이 여전히 보수 지지층에서 영향력이 있다 해도 이를 받아 당권·대권을 거머쥘 후계자가 남아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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