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 독과점 구축 과정 사정·국회·금융 ‘전관 삼각편대’ 활용 논란…두나무 “높은 점유율, 영업활동 결과”
다시 비트코인 광풍이 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본격적인 랠리에 돌입한 비트코인은 11월 21일 한때 9만 8988달러(해외 거래소 기준)까지 치솟았다. 연일 역대 최고점을 경신하는 흐름이다.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이 들썩이는 가운데, 국내 거래소 판도는 업비트 독주 체제가 공고화하는 형국이다. 암호화폐 정보포털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11월 17일 기준 업비트는 국내 시장 점유율 69.86%를 기록하고 있다. 2위 거래소인 빗썸은 28.22% 점유율을 보였다. 양대 거래소가 국내 가상자산 시장서 98.08%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독과점 우려’가 나온다. 두 거래소 정책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비판도 뒤를 잇는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 ‘독과점 구도’가 심화할 경우 국내 가상자산 시장 글로벌 경쟁력 자체에 심각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양대 거래소 중 업비트가 국내 가상자산 시장 점유율 중 3분의 2 이상을 독식한 배경 중 하나로 ‘공격적인 대관’이 꼽힌다. 사정기관, 국회, 금융권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한 성과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사정-국회-금융’으로 이뤄진 전관 삼각편대가 대정부 소통 능력을 키웠고, 이것이 업비트 성공신화 발판이 됐다는 의미다.
전직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전관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면서 “전관이 법조계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등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가상자산 거래소에 전관으로 영입되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가장 매력적이라는 말이 업계에 파다하다”면서 “현직으로 재직하고 있는 핵심 인사들이 가상자산 거래소로 둥지를 옮기려는 물밑작업이 활발하다”고 주장했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기업 두나무 수뇌부엔 이미 초고액 연봉을 수령하고 있는 전관들이 여럿 있다. 우선 금융권 출신 전관들이 눈에 띈다. 임지훈 CSO(최고전략책임자)는 회계사 출신으로 금융감독원(금감원)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금감원 재직 당시 임 CSO는 증권 및 자산운용 관련 감독업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해붕 투자자보호센터장은 금융감독원 핀테크현장자문단 부국장 출신이다. 1990년 금감원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 센터장은 2021년 두나무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밖에도 적지 않은 금융권 전관들이 두나무와 금융당국 간 소통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22년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될 당시 두나무는 대관 파트를 대대적으로 보강했다. 진보 정부에서 보수 정부로 교체되는 시기에 보수 진영 국회 보좌관 출신들을 보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실 권태근 전 보좌관이 두나무 대관실장으로 둥지를 튼 것이 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권 전 보좌관은 제21대 국회 때 국민의힘 가상자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윤창현 전 의원과 ‘학연’으로 이어진 사이여서 조명 받았다. 정치권에서 권 전 보좌관과 윤 전 의원은 대전고 58기 동창생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상자산 관련 별 다른 커리어가 없던 권 전 보좌관이 두나무 대관실장으로 영입되자 업계에선 ‘정권 교체기 새로운 여당과 소통창구 역할을 할 적임자로 낙점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권 전 보좌관 말고도 두나무엔 여야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국내 거래소들도 국회 보좌관 출신 영입에 공을 들이며 대관에 힘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22년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사상 첫 가상자산 사업자 종합검사를 시행할 당시, 양대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이 검사 순서 1번을 피하자 일각에선 ‘대관의 힘’이라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두나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한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기존엔 업계에서 빗썸이 보수 성향이고 업비트가 진보 성향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두나무 대관 파트가 대정부 소통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이면서 보수 진영도 업비트에 우호적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이대로 가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업비트 독주체제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검찰과 경찰 등 사정기관 출신들도 두나무에 둥지를 튼 것으로 파악됐다. 국무조정실과 공정위 등 정부 핵심 기관 출신들도 있다. 취업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는 ‘퇴직 후 3년 경과 전관’까지 합치면 두나무가 흡수한 전관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방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 전직 관료는 일요신문에 “국내 거래소가 전관을 영입할 때 전관들은 기업으로부터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그 기업이 업계에서 얼마만큼 영향력이 있는지를 두루 검토한다”면서 “평생 만져볼 기회가 없던 금액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우수한 전관들이 영입될 루트가 두나무로 일원화되고 있는 상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원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두나무는 그야말로 ‘전관 블랙홀’”이라면서 “법조계 전관예우나 공정위 전관 논란 등과 비교했을 때 훨씬 파급력이 클 수 있는 전관 기용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가 한국에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면서 국내산 가상자산 프로젝트들도 해외 법인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글로벌한 로드맵을 실현하려면 해외 거래소를 먼저 뚫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루나 사태 등 여파와 폐쇄적인 국내 거래소 환경, 현행법의 한계 등으로 글로벌 시장서 ‘김치 코인(한국산 코인)’은 기피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거래소가 독과점 체제로 갈 경우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가상자산의 새로운 시대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업비트에 새로운 가상자산이 상장하는 과정을 보면 해외에서 가격을 대폭 끌어 올린 뒤 거품이 빠질 때쯤 상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가상자산 시장이 호황을 맞을 때마다 국내 신규 투자자들이 국내 거래소를 통해 유입돼 리스크 큰 투자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글로벌 영향력을 갖춘 해외 거래소에 대한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국내에선 해외 거래소들이 속속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비트나 빗썸처럼 대관을 공격적으로 펼치기엔 한국 특유의 ‘인맥 문화’나 로비스트가 허용되지 않는 현행법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맥을 짚지 못해 국내에서 한참을 헤매다 한국 진출을 포기하는 해외 거래소가 늘고 있다.”
중국계 가상자산 거래소 후오비코리아는 1월 한국 시장 철수를 전격 결정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점유율 1위인 바이낸스는 2023년 2월 국내 5대 거래소 중 하나인 고팍스 지분 67.45%를 사들여 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임원변경 신고를 수리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규정상 금융당국은 임원변경 신고 수리 여부를 45일 이내에 통보하게 돼 있지만, 고팍스 임원변경 신고 건은 1년 10개월가량 표류 중이다.
국내 여섯 번째 거래소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한빗코는 2023년 광주은행과 손잡고 원화마켓 거래소 진출을 노렸지만, 금융당국이 가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를 수리하지 않았다. 사업자 변경신고 미수리 이후 한빗코는 금융당국과 소송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빗코는 2024년 5월 문을 닫았다.
금융 파트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법적인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거래소에 대한 쇄국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새로운 국내 거래소가 원화마켓에 진출할 여지도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 법조인은 “한국 상륙에 실패한 해외 거래소들이 한국 정부에 소송을 걸 경우엔 정부 입장에서도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특정 학맥으로 이어진 국내 ‘가상자산 카르텔’이 해외 거래소의 국내 상륙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된다. 한 가상자산 프로젝트 창업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 산업 독과점 구조와 이권 카르텔을 낱낱이 걷어내야 한다고 발언하지 않았느냐”면서 “제4차 산업혁명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업계 내부 카르텔을 정부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업비트 독주체제에 따른 국내 가상자산 시장 글로벌 경쟁력 약화, 전관 영입 등에 대해 두나무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과 관련한 부분은 영업활동을 통해 이뤄진 부분이기 때문에 따로 코멘트할 부분이 없다”면서 “전관을 기용하는 것이 업비트에 유리한 정책적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국경이 없는 가상자산 시장 특성상 국내 원화마켓 점유율만 두고 독과점이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해외 사업자와 개인지갑으로 빠져나가는 가상자산 규모가 그만큼 크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2024년 FIU가 실시한 가상자산 거래소 종합검사에선 업비트가 가장 먼저 검사를 받았다. 첫 검사 당시 단편적 사례를 놓고 전관 영향력을 논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당국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전관 출신이 파급력 있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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