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 300억 원 시대 열어…장현식 계약 이후 소강상태
한화 이글스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외부 FA 두 명을 데려오면서 개장 초기 시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11월 7일 내야수 심우준(29)을 4년 최대 50억 원(보장 42억 원·옵션 8억 원)에 영입한 데 이어 다음날인 8일 투수 엄상백(28)과도 4년 최대 78억 원(계약금 34억 원·연봉 총액 32억 5000만 원·옵션 11억 5000만원)에 사인했다. KBO리그 통산 최다 홈런 1위에 이름을 올린 최정(37)은 원 소속구단 SSG 랜더스와 4년 총액 110억 원에 도장을 찍어 예상대로 '원 클럽맨 은퇴'를 예약했다.
#최정의 놀랍지 않은 잔류
최정은 올해 FA 시장의 '최대어'였지만, 반대로 '그림의 떡'이기도 했다. 최정의 SSG 잔류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 최정이 FA 선언을 하기 전에 비 FA 선수 다년 계약으로 미리 묶어두지 않느냐"는 팬들의 원성이 쏟아질 정도였다. 그러자 SSG는 FA 시장이 열리기 이틀 전인 11월 4일 이례적으로 "최정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얘기를 나눴다. 선수 측이 FA 계약 형태로 진행하길 원해 FA 시장이 시작되는 6일 이후에 계약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최정과 잔류 계약에 합의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려달라"는 '선공개'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SSG는 개장 첫날인 11월 6일 최정과 4년 총액 110억 원(계약금 30억 원·연봉 80억 원)에 계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 마지막 시즌인 2028년엔 최정이 41세가 되는데도 옵션 없이 전액을 보장하는 파격 대우였다. 2005년 전신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을 받고 데뷔한 뒤 팀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로 확고한 자리를 굳힌 최정에게 최고의 예우를 갖춘 셈이다.
최정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계약이었다. 최정이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KBO리그에 다년 계약 총액 300억 원 시대가 열렸다. 그는 2015년 SK와 당시 FA 최고액인 4년 총액 86억 원에 잔류 계약을 했고, 2019년 SK와 6년 총액 106억 원에 또 한 번 FA 계약을 했다. 이번 계약으로 그 금액에 110억 원을 더하면서 다년 계약 총액 302억 원을 기록하게 됐다. 종전 최고액은 포수 양의지(두산 베어스)가 두 번의 FA 계약(2019년 NC 다이노스와 4년 총액 125억 원, 2023년 두산과 6년 총액 152억 원)을 통해 받은 277억 원이었다. 최정이 그 금액을 25억 원이나 경신했다.
그런데도 매년 FA 대형 계약이 성사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오버페이' 논란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SSG 팬들은 "과거 두 번의 계약이 다른 특급 선수에 비해 너무 '염가'였다. 그동안 손해를 본 최정에게 이 정도 계약은 당연하다"며 반겼다. 최정이 그라운드에서 올린 성과 때문이다. 최정은 올해까지 20시즌 동안 통산 229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8, 2269안타, 홈런 495개, 4197루타, 1561타점, 1461득점, 1037볼넷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홈런·루타·득점은 역대 1위, 타점은 역대 2위, 볼넷은 역대 5위, 안타는 역대 공동 6위다. 무엇보다 두 번의 FA 계약 기간이던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25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4, 홈런 327개, 927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58을 올렸다. 이 기간 홈런, 타점, OPS 모두 압도적인 1위에 올라 있다.
SSG 구단은 "최정이 팀 성적에 기여하는 비중도 크지만, 훈련과 생활 면에서도 베테랑으로서 솔선수범하는 선수라 이번 FA 계약이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정은 "늘 변함없이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과하지 않은 것 같다"며 "계약을 잘 마무리한 만큼 최선을 다해 팀과 개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시 스파이크 끈을 조이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최정은 KBO리그 최초의 통산 500홈런에 5개 만을 남겨두고 있다. 내년 시즌 초반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최정과 함께 '왕조'의 역사를 함께 쌓아온 SSG 에이스 김광현은 "형이 없는 우리 팀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공을 던질 때 언제나 내 등 뒤에는 (3루수인) 정이 형이 수비를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은퇴하기 전에 나와 형이 함께 뛰면서 한 번 더 우승 트로피를 드는 게 선수 생활의 마지막 목표다. 형은 내년에 통산 500홈런을 달성할 거고, 나도 이 팀에서 통산 200승 고지를 밟고 싶다"고 다짐했다.
#FA 시장의 '큰 손' 한화
한화는 올해 FA 시장에서 '큰 손'으로 활약했다. 시장이 열린 첫 이틀 동안 내야수 심우준과 투수 엄상백을 낚아채면서 올해 외부 FA 영입 한도인 두 명을 꽉 채우고 128억 원의 거액을 투자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올해 KT 위즈에서 주전 유격수와 풀타임 선발 투수로 활약하던 주축 멤버인데, 소속팀만 한화로 바꿔 내년에도 함께 뛰게 됐다. 내년 시즌을 신축 구장에서 출발하는 한화가 2018년 이후 7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얼마나 염원하고 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심우준과 엄상백은 이미 한화의 마무리 캠프가 열린 일본 미야자키를 찾아 김경문 한화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과 인사를 나눴다. 김 감독이 "같은 식구가 됐으니 지금부터 서로 익숙해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이들을 미야자키로 불렀다. 11월까지는 전 소속팀과의 계약이 남아 있어 훈련은 함께할 수 없었지만, 새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을 미리 만나 친분을 쌓고 대화를 나눴다. 심우준과 엄상백은 "내년 초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공항에서 처음 만나는 것보다 이렇게 먼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돼 좋았다. 코치님들, 선수들에게 많은 얘기를 들으면서 한화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FA는 야구선수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회이자 숙제다. 성공적으로 그 과제를 마친 심우준은 "FA가 됐을 때는 그저 내가 어떤 선수인지 한 번쯤은 외부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한화에서 내 생각보다 더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기분 좋고 감사했다"며 "이제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정말 '잘'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엄상백은 "다들 젊은 나이에 '대박'이라고 해주셨지만, 정작 계약을 마치고 나니 이상하게 담담해졌다"며 "기쁜 마음도 있지만, 좋은 대우를 받은 만큼 팀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2020년 도루왕 출신인 심우준은 한화에 꼭 필요한 수비와 빠른 발을 보완해 줄 유격수다. 뛰는 야구를 좋아하는 김경문 감독은 심우준 영입을 무척 반기면서 "수비와 주루플레이 만으로도 10승 투수 못지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타격도 지금보다는 충분히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본다"고 기대했다. 심우준은 "감독님의 그 말씀을 듣고 힘이 많이 났다. 처음 인사드렸을 때 '빠른 발을 살릴 수 있는 간결한 타격폼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다"며 "결과로 보여드리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수비와 발은 자신 있으니, 타격 쪽으로 더 많이 성장하고 변화하면 한화 팬분들도 점점 나를 인정해주시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엄상백은 내년 시즌 류현진, 외국인 원투펀치를 필두로 한 한화 선발진에서 한 축을 담당할 투수다. 올해 처음 풀타임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지만, 이전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 올해는 시즌 초반의 극심한 슬럼프를 극복하고 5월 이후 반등하면서 데뷔 후 가장 많은 13승(10패)을 올렸다. 그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와 깨달음을 한화에서도 자양분으로 삼을 생각이다. 엄상백은 "오히려 내가 욕심을 내려놓으니 야구가 더 잘 됐고, 운도 따라준다는 걸 느꼈다"며 "겨우내 몸 관리를 잘해서 내년에도 꼭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풀타임 선발투수로 뛰고 싶다. 그게 팀에서 내게 원하는 역할이자 가장 중요한 일일 것 같다"고 다짐했다.
손혁 한화 단장은 "심우준은 시즌 100경기 이상 출전할 수 있는 꾸준함과 안정적인 수비로 내년 시즌 센터라인 강화의 주축이 될 능력을 갖춘 선수"라며 "피치 클록 도입으로 출루 시 상대 투수에게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팀에 다양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엄상백 영입과 관련해서는 "구단 내부적으로 선발진 강화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져 빠르게 영입을 결정하고 움직였다"며 "엄상백이 합류하면서 기존 선발진과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 젊은 선발자원의 육성 계획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KT로 떠난 허경민
허경민은 2009년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두산의 1라운드(전체 7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2015년부터 리그 정상급 내야수로 발돋움해 10년 동안 두산의 3루를 책임졌다. 김태형 감독 시절 '두산 왕조'의 주축 멤버 중 하나였고, 동기생 정수빈(두산)·박건우(NC 다이노스)와 함께 '1990년대생 삼총사'로 불리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 허경민이 11월 8일 KT와 4년 총액 40억 원(계약금 16억 원·연봉 총액 18억 원·옵션 6억 원)에 사인하면서 16년 만에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심우준을 한화에 내준 KT는 시장에 나온 다른 내야수 중 가장 건실한 허경민에게 눈을 돌렸고, 좋은 조건을 제시해 붙잡는 데 성공했다. 기존 주전 3루수 황재균이 팀에 남아 있지만, 그는 내년 시즌 1루로 자리를 옮기고 허경민이 3루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허경민은 "내 가치를 인정해준 KT 구단에 감사하다. KBO리그 강팀으로 자리 잡은 KT에서 팀의 두 번째 우승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나도현 KT 단장은 "베테랑 내야수로서 풍부한 경험을 지닌 허경민은 뛰어난 콘택트 능력과 정상급 수비력을 바탕으로 내야진에 안정감을 더해줄 수 있는 선수"라며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함이 많은 후배에게 귀감이 되길 기대한다"고 기대했다.
허경민은 계약 후 일부 두산팬으로부터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21년 처음 FA가 됐을 때 두산과 4+3년 총액 85억 원에 계약했다. 계약서에는 4년 뒤 두산 잔류를 택하면 2025년부터 3년 동안 총액 20억 원을 받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고심하던 허경민은 FA 시장에 나와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로 했고, 결국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KT로 이적을 결심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우리 구단도 허경민의 잔류를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허경민의 선택은 존중해야 한다"며 "허경민이 계약 발표 전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인사했다. KT에서 최선을 다하고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감쌌다.
이어 "허경민이 언제나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였다는 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며 "두산과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로를 응원하면서 작별했다. 누구보다 두산을 사랑하는 선수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허경민은 "10년 이상 몸담았던 팀을 떠난다는 것은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며 "그동안 응원해주신 두산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프로 선수로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팬들께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집토끼 단속 성공한 롯데
외부 FA 두 명을 영입한 한화와 달리, 롯데 자이언츠는 불펜의 핵심으로 활약한 내부 FA 두 명을 붙잡는 데 힘을 쏟았다. 롯데는 11월 10일 투수 김원중(31)·구승민(34)과 FA 계약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김원중의 계약 기간은 4년이고, 계약 총액은 최대 54억 원(보장 금액 44억 원, 인센티브 10억 원)이다. 구승민은 2+2년 최대 21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12억 원, 인센티브 6억 원)에 사인했다.
2012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5순위) 지명을 받고 롯데에 입단한 김원중은 2020년부터 롯데의 마무리 투수를 맡아 팀 소속 투수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세이브를 돌파했다. 올해까지 쌓은 세이브 수가 132개다. 2021년(35세이브)과 2023년(30세이브)에는 한 시즌 30세이브 고지도 밟았다. 김원중은 "시즌 초부터 구단과 교감을 이어왔다. 롯데 이외의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며 "성적과 미래 가치를 인정해 준 구단,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준 팬들을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책임감을 갖고 팀 성장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김원중은 이 각오를 되새기기 위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장발을 짧게 자르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김원중은 처음 입단했을 때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의지를 다지는 의미로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설명했다.
구승민은 2013년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전체 52순위)에서 롯데의 선택을 받은 뒤 프로 통산 448경기에 등판해 108홀드를 쌓아 올렸다. 김원중과 마찬가지로 롯데 프랜차이즈 투수 역대 최다 기록이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KBO리그 역대 2번째로 4시즌 연속 20홀드를 달성했고, 특히 2022년엔 26홀드를 기록해 역대 롯데 투수 한 시즌 최다 홀드 기록도 경신했다. 올해 5승 3패 13홀드 평균자책점 4.84로 주춤했지만, 롯데는 그와 내년에도 동행하기로 했다. 구승민은 "구단에서 꾸준히 출전 기회를 준 덕분에 FA 계약을 할 수 있었다"며 "도전적인 계약인 만큼 개인 목표 달성뿐 아니라 팀의 가을야구 진출에 힘을 보태는 선수가 되겠다. 기다려주신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각오를 밝혔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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