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내 입주’ 정부 목표 실현 가능성 낮다는 지적…‘투기벨트화’ 우려에다 난개발 비판 목소리도
#신규 택지 5만 호 공급 계획
정부가 지난 11월 5일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서울 2만 호를 포함해 신규 택지 5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지난 ‘8·8 부동산 대책’ 발표 때 그린벨트 해제를 예고했는데 이번에 구체적인 후보 지역이 공개된 것이다. 서울에서는 서초 서리풀지구(2만 호), 경기에서는 의왕 오전왕곡(1.4만 호), 고양 대곡 역세권(0.9만호), 의정부 용현(0.7만호) 등이 해제 대상지에 포함됐다.
이번 그린벨트 해제 발표는 수요 과열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4월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029년 신규 택지의 첫 분양, 2031년 첫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표와 동시에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정부 발표대로 5년 내 입주 추진이 가능하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년간 그린벨트 해제지역 중 입주까지 걸린 시간이 5년 이내인 곳의 비율은 단 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9년 이상 걸린 곳이 약 40%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토지보상으로 인한 갈등을 감안하면 보수적으로 잡아 입주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연도별·지역별 수요를 좀 더 장기적으로 예측해서 공급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도심이 아닌 수도권 외곽지역 쪽으로 무작정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실효성이 있을 것 같진 않다”라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원지동, 신원동, 염곡동, 내곡동, 우면동 일원)의 경우 강남권에 위치해 있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전부 공공분양으로 공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분양의 경우 청년·신혼부부·생애최초 등 특정 계층을 위한 특별공급 물량이 70~90%에 이른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2만 가구 중 55%인 1만 1000가구가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될 예정이라고 하고 여기에 더해 임대주택 의무물량, 특별공급 물량, 추첨물량 제외하면 320호 정도가 나온다. 경제력을 지닌 기성세대에게는 턱없는 물량인 만큼 서울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정부 부동산 대책의 신뢰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3기 신도시 입주부터 늦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토교통부는 3기 신도시 입주 시기를 2025~2026년으로 예상했으나 아직도 토지보상 계획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입주 시점이 미뤄졌다. 3기 신도시 중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알려진 인천 계양지구도 2026년 하반기에나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지금 그린벨트를 풀 게 아니라 이미 벌려놓은 일을 차질없이 수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부동산 공급 대책은 여러 정부에 걸쳐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가 일관성 있게 추진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문재인 정부 시절에 여러 번 발표한 택지 공급도 지금 감감무소식이다”라고 지적했다.
거액의 토지보상금을 노린 투기세력의 수요가 집중되면서 그린벨트가 ‘투기벨트’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연대가 지난 10월 말 그린벨트 토지소유주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세곡동과 서초구 내곡동 일대 토지의 최근 5년 사이 지분거래 건수 중 30%가량이 지난해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지역에서 개인, 법인 등 민간이 소유한 필지의 공시지가만 1조 2307억 원에 달한다.
권오인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국장은 “그린벨트 해제 발표가 나기도 전에 낌새를 챈 투기 세력들이 몰려들면서 몇몇 후보지에서 개인 간 거래가 급증했다”며 “과거에도 그린벨트를 풀어서 집값이 안정된 적이 없었는데 계속 잘못된 공급 시그널로 시장에 혼선만 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왕·군포·안산 지역 22개 시민·종교단체로 구성된 ‘의왕·군포·안산 그린벨트지키기 네트워크’는 지난 11월 20일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하고 나섰다. 10만 명에 달하는 신규 인구가 유입될 예정인데도 광역 교통 계획과 폐기물 처리 계획이 없어 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노훈심 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군포, 의왕, 안산, 수원 호매실까지 인근 9개 지구에서 택지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지자체가 3개씩 중첩되는 지역이다. 정부에서는 각자 알아서 하라는 기조인데 누가 봐도 신도시를 빙자한 난개발”이라고 주장했다.
김학환 부동산정책연구원 원장은 “생태 보존을 위해 묶어둔 공간을 당장 주택 공급을 늘리려고 손쉽게 풀어버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린벨트의 취지 자체를 훼손하는 문제가 있다”며 “인구감소 문제까지 감안하면 그린벨트를 풀어서 택지를 공급하기보다는 도심 쪽을 재개발하는 방식으로 공급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결국은 ‘서울공화국’ 강화?
서울이 일부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과 수요가 몰리고 있지만 지방은 악성 미분양 증가로 신음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 7262가구로 전월보다 4.9% 늘었다. 지난해 8월부터 14개월 연속 증가세로 2020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14개월간 지방의 미분양 가구는 7220가구에서 1만 4375가구로 2배가량 늘었다.
김인만 소장은 “서울은 수요가 항상 과잉 상태다. 1년에 5만 호씩 공급할 거 아니면 각종 공급대책은 다 소용이 없다”며 “그린벨트를 풀어서 서울의 수요를 받아줄 게 아니라 지방에 좋은 대학과 기업을 육성해 수요를 지역을 분산해야 한다. 서울 집중화 해결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서울과 지방이 다 고꾸라진다”라고 지적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GTX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은 다 수도권에 깔아서 결국 서울과 인근 지역은 계속 살기 좋아지고 있지만 지방에는 지하철도 거의 없다. 지역 간 격차가 계속 심해지고 있는 게 우리나라 주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라며 “고도성장기가 끝났고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데 인구 구조상의 변화나 지역 균형 발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택지 개발만 해서는 계속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효주 참여연대 주거조세팀장은 “최근 아파트 가격 상승은 공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규모 정책 금융 지원을 통해 부추긴 측면이 있다. 서울 전역도 아니고 서울 고가 아파트 중심으로 국지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방에는 계속 빈집과 공실이 늘어가고 있는데 녹지를 훼손해가면서까지 수도권에 택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게 필요한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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