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 코치 조언 국내에선 안통하더라…내년엔 가을야구 하도록 잘 준비할 것”
류현진의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한화 팬들뿐 아니라 KBO리그 전체가 들썩였다. 시범경기에 암표가 올라오고, 구단은 자체 청백전을 유튜브로 생중계까지 했다. 더욱이 한화는 시즌 개막 후 8경기에서 7승 1패로 1위를 내달리며 대전 홈구장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4월 이후 한화는 조금씩 성적이 떨어졌고 류현진도 좀처럼 승수를 챙기지 못했다. 마침내 류현진은 선발 등판 4경기째 복귀 첫 승을 거뒀고, 당시 한화는 5연패 탈출에 성공한다.
올 시즌 류현진은 KBO리그 적응기를 거치며 절치부심했다. 거액을 받고 복귀한 터라 성적의 희비에 따라 팬들 반응도 갈렸다. 그럼에도 그는 두 자릿수 승수와 통산 100승, 1300 탈삼진 등을 기록하며 2024시즌을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류현진을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류현진은 2023시즌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4년 계약을 매듭짓고 1년 더 메이저리그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었다. 2022년 6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후 1년여의 혹독한 재활 끝에 14개월 만에 빅리그 복귀전을 치렀던 그는 그해 11경기 출전 52이닝 투구, 3승 3패 평균자책점 3.46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수술 후 통증 없이 공을 던질 수 있어 자신감이 커졌다. 그렇게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아쉬워 1년만 더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려 했다. 1년을 넘기면 내 나이도 있고, 경쟁력 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에이전트한테 1년 계약을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이다.”
류현진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한테 ‘1년 계약 1000만 달러 이상’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왜 1000만 달러였는지를 물었다.
“그 정도의 몸값을 받아야 팀에서 어느 정도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는 선수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몸값에 의해 위치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1000만 달러 이상은 돼야 자리를 보장받고 한 시즌을 치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몇몇 팀들이 류현진 영입에 나섰고, 그중 한 팀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그런데 그 팀은 계약 기간이 1년이 아닌 3년이었고 계약 내용이 다소 복잡했다. 류현진은 고민 끝에 거절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고, KBO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자 류현진도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 와중에 친정팀 한화에서는 계속해서 류현진 영입에 나섰고, 류현진도 한화 구단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류현진은 2024년 2월 22일 한화와 8년 170억 원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곧장 한화의 스프링캠프지인 일본 오키나와로 넘어가 선수단에 합류했고, 개막전 선발 등판을 이뤄내며 12년 만의 KBO리그 복귀를 알렸다.
하지만 복귀 첫 승은 네 번째 등판인 4월 11일 잠실 두산전에서 이뤄냈다. 2012년 9월 25일 두산전 이후 4216일 만의 승리였다. 류현진은 앞선 3경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구위를 선보였다. 개막전인 LG전 3⅔이닝 5실점, 이후 키움전에서 4⅓이닝 9실점을 했다. KT전에서는 6이닝 2실점을 기록했으나 타선의 침묵으로 이때도 승수를 올리지 못했다.
“LG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류현진이 12년 만에 돌아왔는데 무언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자’,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과시하려 했는데 첫 경기부터 꼬였다. 아직까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마음에 너무 직구 위주의 승부를 펼쳤다. 평소대로 적절한 변화구를 섞어 경기를 풀어가지 않고 힘으로만 누르려다 보니 커트도 당하고 파울이 많이 나오면서 투구 수가 늘어났다. 3이닝 지났는데 투구 수가 80개에 이르렀다. 개막전에서의 그 뼈아픔이 이후 경기에 도움이 되더라. 그다음 경기에서부터는 그런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류현진은 올 시즌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좋은 흐름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 상황을 꼽았다. 4경기 만에 첫 승을 이룬 후 한 경기 좋았다가 다음 경기에서 안 좋은 결과가 반복된 것이다.
“선발 투수가 한 달에 대여섯 번 등판하는데 서너 차례 정도는 승수를 챙겨야 팀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한 경기에서 좋았다가 다음 경기에서 대량 실점하는 횟수가 반복되다 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다. 무엇보다 야수들이 초반에 점수를 많이 내주는 경기에서 내가 실점을 허용한 경기가 나오면 선수들한테 너무 미안했다.”
첫 승을 거둔 4월 11일 두산전을 앞두고 류현진은 이례적으로 불펜피칭을 소화했다. 선발 투수들은 등판을 마치고 다음 등판 중간에 불펜피칭을 이어가는데 류현진은 그동안 거의 불펜피칭을 하지 않았다. 그 루틴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계속됐다. 그런데 두산전을 앞두고 불펜피칭을 가진 터라 그 속사정이 궁금했다.
“체인지업을 체크하고 싶었다. 체인지업이 생각한 것보다 떨어지지 않아 실투가 많았다. 어떻게 해서든 체인지업을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에 불펜피칭을 실시했고, 그 결과 체인지업을 던질 때 스로잉이 조금 느려진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체인지업이 직구랑 비슷하게 가다가 구속이 떨어지면서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너무 의식하다 보니 공이 밋밋하게 들어가다 얻어맞았다.”
개막 이후 3경기까지 첫 승을 올리지 못한 류현진은 혼자만의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더욱이 당시의 한화는 류현진을 제외한 선발투수 모두가 승수를 올렸고, 팀도 연승 행진을 벌이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일부에서는 170억 원 운운하면서 이제 류현진도 안 통한다는 말도 하더라. 하지만 걱정은 안 됐다. 올라올 사람은 올라오게 돼 있고, 내 몸 상태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진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후배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야구장에서는 항상 밝은 표정을 지었다. 개인 성적이 좋지 않다고 팀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었다.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치면 더 열심히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메이저리그 시절의 류현진은 선발 등판 전날 포수와 경기 플랜을 세우는 루틴이 있었다. 그건 LA 다저스 시절 릭 허니컷 투수코치의 조언으로 시작됐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도 변함없이 경기 전날 루틴을 시행했다. 그래서 KBO리그에서도 선발 등판을 앞두고 포수와 경기 플랜을 세웠느냐고 물었다. 류현진은 “처음에 하다가 그만뒀다”라고 답한다.
“미국하고 다르다는 걸 몇 경기 만에 느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변화구를 던져도 풀스윙을 한다. 그런데 KBO리그에서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삼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타자들이 커트를 해내며 공을 맞추려는 성향이 강했다. 이후 (당시 최원호) 감독님이 “현진아, 그걸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편하게 가”라고 말씀하셔서 그때부터 안 했다. 사실 LG와의 개막전에서 투구 수가 늘고 어렵게 경기를 풀어간 배경에는 그 방식 때문이었다. 다저스 시절 허니컷 코치님의 조언이 한국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2013년 7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는 LA 다저스의 류현진과 신시내티 레즈 추신수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성공적으로 MLB 데뷔 시즌을 보내던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이 빅리그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한 ‘추추 트레인’ 추신수와 다저스타디움에서 만나는 장면은 야구 팬들의 큰 관심을 이끌었다. 둘은 세 차례 맞대결에서 볼넷과 땅볼, 헛스윙 삼진의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2024년, KBO리그에서 두 선수는 다시 만난다. 각각 한화 이글스와 SSG 랜더스 유니폼을 입은 상태였다. 류현진은 올 시즌 추신수와 맞붙은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추)신수 형의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이다 보니 몸이 좋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다음 날 만났을 때 ‘형, 몸 생각해서 천천히 하시라’고 말씀드리기도 했다. 어깨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주루 플레이까지 이뤄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사실 신수 형과 한국에서 다시 맞붙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신수 형이 한국에서 4년을 뛴 덕분에 올 시즌 신수 형을 그라운드에서 만날 수 있었고, 맞대결도 펼쳐서 나름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고 본다.”
복귀 시즌인 올 시즌 류현진은 28경기에 나서 158⅓이닝 10승 8패, 평균자책점 3.87의 성적을 냈다. ‘코리언 몬스터’의 이름에 비해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시즌 도중 감독 교체까지 단행했던 한화 역시 66승 2무 76패 승률 0.465를 기록하며 리그 8위에 머물렀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류현진은 이런 결과를 몹시 아쉬워하며 자신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우리 팀에 앞날이 밝은 젊은 선수들이 많다. 특히 투수들이 눈에 띈다. 문동주, 김서현, 황준서는 내가 할 수 없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다. 황준서는 체중만 늘린다면 공에 더 힘이 생길 것 같다. 나는 후배들이 마운드에서 자신감 있게 경기를 풀어갔으면 좋겠다. 선발로 나가든 중간, 마무리로 등판하든 자신한테 주어진 기회를 잘 감당해내려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내년에는 재능 많은 후배들과 함께 꼭 ‘가을야구’를 할 수 있도록 비시즌부터 잘 준비해서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도록 노력하겠다. 올 시즌 매 경기 만원 관중을 이루며 열띤 응원으로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은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말씀도 꼭 드리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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