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사건 두고 ‘신뢰 깨지면 계약해지 가능’ 판례도…“산업 근간 흔들” vs “시정 요구 불이행” 업계 이견
12월 3일 한국매니지먼트연합(한매연)은 공식입장을 내고 뉴진스의 어도어에 대한 계약해지를 비판했다. 한매연 측은 먼저 "우리 대중문화예술산업은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당 아티스트와 소속사 간에 맺은 전속계약을 서로 존중하고 있다. 이런 근간에는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올린 아티스트와 연예기획사 간의 배려와 신뢰가 녹아있으며 이는 단순히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그것이 계약해지의 완성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모든 절차를 무시한 현재 뉴진스 측의 입장은 처음부터 계약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상호 간의 노력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거나 그럴 의사가 없었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며 "우리 법률은 기본적으로 이뤄진 계약에 대한 보호를 원칙으로 하며, 계약의 해지 단계에 이르렀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분쟁을 다루고 있다. 이는 계약의 완전한 해지에 이르기까지는 해당 계약을 보호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현재 뉴진스 측의 계약 해지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할 수 있다"고 짚었다.
한매연은 "또한 이러한 일방적인 계약 해지의 주장을 통한 계약의 효력 상실은 전반적인 전속계약의 신뢰관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며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렇게 선언만으로 전속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주장은 단기계약이 아닌 수년의 장기계약, 더 나아가 연습생 시절부터 투자를 진행하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산업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누구나 선언만으로 계약의 해지가 이뤄진다고 하면 어떻게 전속 계약의 효력을 담보할 수 있으며 이러한 불확실한 계약을 토대로 누가 투자할 수 있겠나"라며 계약의 유지와 보완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해지 문제가 거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투자, 후회수'의 원칙 아래 이뤄진 연예 산업 구조를 지목하며 "회사는 우선적으로 투자를 진행한 이상 전속계약의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아티스트와 소속사의 분쟁에서 철저한 을의 입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악의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경우 최종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외에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조치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현재의 뉴진스의 계약해지 접근은 한국 대중문화예술산업의 근간을 휘두를 수 있는 '매우 악질적인 방법'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처럼 엔터사들의 입장을 대변해 대중문화예술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한매연의 입장은 유사 사건 판례와 어떻게 다를까. 먼저 '연예인 전속계약'의 법적 성격을 확인해야 한다. 위임 유사한 성질을 가진 계속적 계약으로 판단되는 전속계약은 연예기획사에게 소속 연예인을 위해 수익 배분 등을 포함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매니지먼트 권한'을 가지는 대신 그 연예인에게 계약에 따른 물적·인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성격상, 계약 기간 동안 전속 계약 당사자 상호 간의 고도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계약 목적의 달성을 위한 무엇보다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반대로 말한다면 이처럼 계약의 필수 요소인 신뢰관계가 파탄 난 사실이 인정된다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또는 계약서에 명시된 해지 조항 조건에 반드시 부합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판례가 '국악소녀'로 알려진 가수 송소희와 소속사 간의 소송전에서 나왔다. 2013년 7월 전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던 송소희는 소속사 대표의 동생이자 매니저였던 A 씨가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그를 매니지먼트 업무에서 배제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이를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지했다. 이에 소속사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면서 생긴 위약금과 미정산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는 계약해지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강하게 결부된 계약이므로 연예인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위임계약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에 비춰 볼 때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는 게 요지였다. 다만 계약이 해지되기 전까지의 정산금과 소속사가 연예활동을 위해 지출한 비용 등은 지급해야 한다고도 판단했다.
법원은 "이 사건 전속계약의 성질상 계약목적의 달성을 위해 계약당사자 사이에 고도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이 사건 전속계약에 따라 연예인인 피고가 부담하는 전속활동의무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며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졌는데도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예인에게 그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연예인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연예인의 전속계약에서도 계약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가 깨지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중요한 기준을 마련한 판례로 꼽힌다.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매연처럼 매니지먼트사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뉴진스의 사례를 시발점으로 소속 연예인들이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신뢰관계를 파탄을 주장한 뒤 계약해지를 통보했을 때 회사로써는 이후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 외엔 대처 방법이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소속사 측이 먼저 연예인에 대해 연예활동 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이후 본안에서 계약해지의 정당성을 가리고자 하더라도, 법원에서 손해배상 소송으로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가수 전문 엔터사 관계자는 "소속 아티스트가 뉴진스뿐인 어도어는 뉴진스가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고 활동할 경우 치명적인 손해를 볼 수 있으니 수익 미정산이나 기타 다른 문제가 산적해 있었던 소속사의 사례와 달리 가처분을 신청했을 때 재판부가 좀 더 형평성을 들여다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가처분에서도 신뢰관계 파탄이 인정되고 이 상태에서 뉴진스를 계약에 속박시키는 것이 더 부당하다고 판단한다면 본안을 갈 것도 없이 사실상 완전 패배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우려 지점"이라고 짚었다.
반면 뉴진스의 해지를 '일방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익명을 원한 또 다른 엔터사 관계자는 "뉴진스 측이 이미 9월부터 시정을 요구해 왔지만 대부분 이뤄지지 않았고, 심지어 하이브 측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뉴진스 관련 정보와 자료들이 실시간으로 외부에 새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엄연히 계약이 유효한 기간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진 데다 이에 대해 유출 관련자들을 찾아 조치해달라는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다면 아티스트로서는 매니지먼트를 신뢰할 수 없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한편, 뉴진스는 현재 계약 해지 통보 전부터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밀접하게 접촉' 했다는 탬퍼링 의혹도 함께 불거진 상태다. 민 전 대표 측은 이와 관련한 보도에 대해 "민희진 전 대표를 비방할 목적으로 아무런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에 본인들의 추측을 더해 허위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반박하며 하이브, 어도어 임원진에 이어 해당 의혹을 제기한 기자들을 고소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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