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례로 지난 9월 개최된 프리즈 서울 관련 소식이 있다. 10월 말 프리즈의 모기업인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사 엔데버 그룹 홀딩스는 기업을 비공개로 전환하면서 프리즈 아트페어와 매거진, 2023년 인수한 아모리쇼와 엑스포 시카고 등의 아트페어와 전시공간, 그 외 이벤트 사업의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2022년부터 한국화랑협회와 5년 동시 개최 업무협약(MOU)을 맺은 프리즈 서울은 앞으로 2회 행사를 남겨두었는데, 그 이후 향방이 더 불투명해졌다. 실제로 매각을 추진할 경우 현재 가치가 최소 1억 달러(약 1400억 원)로 추산되는 프리즈를 인수할 큰손이 쉽게 나타날지 의문이다.
뉴욕의 유서 깊은 갤러리도 재정 문제로 여럿 문을 닫았다. 2023년 말 체임 앤 리드와 알렉산더 앤 보닌 갤러리가 운영을 멈췄고, 2024년 베티 커닝햄 갤러리가 공간을 닫고 온라인으로 전환했으며, 약 80년 역사를 지닌 말보로갤러리가 뉴욕을 비롯한 모든 지점의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존경받던 컬렉터 부부의 마이애미 전시 공간 드라크루즈 컬렉션 역시 올해 초 아내가 세상을 떠나며 문을 닫았고, 주요 컬렉션이 경매에 출품되었지만 시장 침체로 작품의 가치에 비해 비교적 낮은 가격에 낙찰됐다.
#오일머니·암호화폐 유입…회복세 논의는 시기상조
낙찰율과 낙찰액이 모두 급감한 탓에 경매기업도 고전하고 있지만, 경매 시장에는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소더비는 10월 말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본사를 둔 국부펀드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를 지원받기로 결정돼 부채와 적자를 해소하게 됐다. 아랍에미리트는 2005년부터 수십억 달러를 문화관광영역에 투자해 2017년 루브르 아부다비를 개관하고 2026년 구겐하임 아부다비를 개관할 예정이다. 더불어 2009년부터 올해 16회째 아부다비 아트를 개최했지만, 참여 갤러리와 작품군에서 큰 성장을 이끌지 못했다.
오일머니의 다음 수혜자로 거론되는 아트바젤은 아부다비 아트를 인수하고 운영하는 대가로 2000만 달러(약 280억 원)를 투자받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소문도 있다. 아트바젤 2022년부터 피악을 대체해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을 개최하다 올해 아트바젤 파리로 변경했듯 조만간 아트바젤 아부다비가 개최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오일머니가 문화 예술계에 투자되며 주요 작품을 소장하고 주요 미술관과 경매기업, 아트페어, 갤러리를 유치하고 있다.
트럼프 재선 이후 신고가를 경신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2021년 6900만 달러(약 968억 원)에 낙찰된 비플의 NFT의 낙찰자도, 비플의 첫 실물 조각 낙찰자도 모두 암호화폐 자산가였다. 지난 11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2019)이 수수료 포함 624만 달러(약 87억 원)에 판매되었다. 이 작품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페로탕갤러리가 에디션 3점 중 2점을 각 12만 달러(1억 6800만 원)에 판매하며 화제를 모았고, 2023년 리움에서 개최된 카텔란의 개인전에도 출품되었다. 5년 만에 50배가 넘는 금액에 구매한 낙찰자는 암호화폐 트론을 설립한 저스틴 선. 암호화폐 자산가들 역시 주목받을 만한 작품을 고가에 낙찰받고 작품과 관련된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이슈를 만들어왔다.
11월 뉴욕 경매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4)이 1억 2100만 달러(1698억 원)에, 에드 루셰의 1964년 대표작이 6800만 달러(약 954억 원)에, 클로드 모네의 ‘수련’(1914~1917)이 6500만 달러(약 912억 원)에 낙찰됐다. 근대 마스터피스가 강세를 보이며 미술시장이 양극화됐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회복세를 띤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다.
#물납제, 아트테크 사기 그리고 한국 작가들 선전
10월 국내 최초로 미술품 물납제가 시행돼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 네 점을 소장했다. 특히 쩡판즈의 작품 두 점은 고가의 중국 현대미술작품으로, 물납제가 미술관의 국제 컬렉션 확충에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술품의 상속세가 2000만 원을 초과할 경우에만 미술품으로 물납할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아울러 물납 미술품이 국가기관에 소장될 미술사적 가치평가에 엄중한 절차가 필요하다.
몇몇 갤러리가 미술품을 통해 수익을 보장한다며 수백억 원대의 ‘아트테크’ 사기를 쳐 고소당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호황기에 일어나는 일인데, 작품을 소장이 아닌 단순 투자 대상으로 바라볼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작가들의 외국 진출과 주요 전시와 프로젝트 참여 등 큰 성과를 거둔 한 해이기도 했다. 한국의 근현대 미술운동을 재조명하는 기획전이 미국 주요 미술관에서 연이어 개최되었고, 한국 중견 및 신진 작가들도 외국 주요 미술관과 메이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컬렉터들은 충동구매보다 작가에 대해 보다 신중히 리서치해 구매한다고 답했다. 이는 불황기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진지한 컬렉터들이 자리를 지키고 더 열심히 공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침체기에는 미술시장 주체들의 실적 부진에 대한 보도가 늘지만, 미술에 대한 애정으로 꾸준히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와 힘에 부쳐도 손실을 감내하며 프로그램을 축적해 가는 갤러리, 그리고 전시나 판매 소식이 주춤하더라도 계속 작업활동을 지속하는 작가가 대부분이다. 묵묵히 이어지는 그들의 활동과 우리의 지지가 미술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경민은 미팅룸의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로, 국내외 미술시장과 미술산업 주체의 움직임에 주목해 다양한 매체와 기관을 통해 글을 기고하고 강의한다. 최근 작품 유통을 중심으로 한 미술시장 너머 기술과 주체가 다변화된 미술산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갤러리현대 전시기획팀에 근무했고, ‘월간미술’의 기자로 활동했다. 공저로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스위밍꿀, 2019)과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선드리프레스, 2021), ‘크래시-기술·속도·미술시장을 읽는 열 시간’(일민미술관, 미디어버스, 2023)이 있다.
이경민 미팅룸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