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폐지 등 우려 속 ESS·소형전지 집중 가능성…유럽시장 적극 공략·인수합병 전략 등 기대도
최주선 사장은 임직원과의 소통을 중시해 ‘덕장’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노동조합이 실적 개선을 이유로 삼성전자 이상의 연봉 인상률 등을 요구할 때도 끝까지 대화를 피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에게 기프티콘 등을 자주 선물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삼성디스플레이 직원들 사이에서는 “사장님을 떠나보내게 돼 너무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변수 맞은 삼성SDI
최주선 사장 입장에서 삼성SDI로 자리를 옮긴 것은 회사 규모만 놓고 봤을 때 다소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삼성SDI 매출 규모는 삼성디스플레이보다 적을 뿐더러 최근 실적도 하락세다. 삼성SDI의 매출은 지난해 3분기 5조 6030억 원에서 올해 3분기 3조 9357억 원으로 29.76%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652억 원에서 1299억 원으로 72.08% 줄었다.
4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이어질 전망이다. NH투자증권은 최근 삼성SDI의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조 1000억 원, 1206억 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6%, 61%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NH투자증권은 전반적인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 소형전지 부문 적자 확대로 삼성SDI 실적이 부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SDI를 둘러싼 악재도 만만치 않다.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전면 폐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미국으로부터 4660억 원의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를 수령했다. AMPC가 아니었다면 LG에너지솔루션도 올해 적자를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SDI가 2025년에 7000억~8000억 원가량의 AMPC를 받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SDI는 2027년 미국에서 GM과의 합작공장과 스타플러스에너지 2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물론 IRA 전면 폐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와 달리 IRA 폐지에 반대하는 다수의 공화당 하원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전문가가 IRA 폐지보다는 세액공제 총액 축소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그럼에도 세액공제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전기차 가격은 평균 8~10% 인상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권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절차상 어려움으로 IRA 폐기보다는 수정 보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트럼프 당선인은 연방 행정부처에 기존 규제나 혜택의 철회를 명령하거나 기존 규칙에 대한 재검토 및 취소, 업무 중지 지시 등을 통해 친환경 정책 축소를 시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주선 사장, 어떤 카드 내놓을까
삼성SDI 투자자나 직원들은 최주선 사장이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2차전지 업계도 기본적으로는 수주 산업이라 최 사장이 펼칠 수 있는 전략의 한계도 분명하다. 이미 전임자들이 결정한 완성차 업체와의 제휴나 생산 계획 등을 크게 바꾸기는 어렵다. 삼성SDI의 실적과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전기차 관련 정책이나 화재 리스크 등은 최 사장이 어찌할 수 없는 분야다. 최 사장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수년 후의 투자 계획과 새로운 고객사 확보 등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주선 사장이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소형전지 분야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삼성SDI는 2018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ESS 시장 점유율이 50%에 달했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이 약진하면서 삼성SDI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9%까지 추락했다.
ESS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수급이 불안정한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보관하는 일종의 인프라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2030년 전력 수요가 현재의 6배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력업계에서 ESS를 주목하는 이유다. 삼성SDI는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에서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개발을 마치고 울산 사업장에 마더 라인 구축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소형전지도 유망한 분야다. 각종 전자기기가 무선화되면서 조만간 소형전지 수요가 폭증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최주선 사장이 삼성디스플레이에 재직할 당시 영업 능력에서 경쟁력을 보였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경쟁사 대비 미진했다고 평가받는 삼성SDI의 수주 잔고를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최 사장은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시절 글로벌 파트너와 협력사, 고객이 아닌 글로벌 회사도 여러 번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가 주목할 만한 해외 시장은 단연 유럽이다. 유럽은 최근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새로 내놓았고, 독일은 법인용 전기차 인센티브를 부활시켰다. BMW, 폭스바겐그룹 등 유럽 완성차 회사는 삼성SDI의 주요 고객사이기도 하다.
인수합병(M&A) 전략에 대한 기대도 나온다. 삼성SDI는 앞서 지난 9월 전자재료사업부 내의 편광판 사업을 중국 우시헝신광전재료유한공사에 1조 1000억 원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금으로 전자재료 사업부 내에서 차세대 소재 개발에 착수하거나 혹은 M&A를 진행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 삼성SDI 관계자는 “타 완성차 업체들과의 조인트벤처(JV) 혹은 단독공장 등 다양한 방향으로 검토를 하고 있다”며 “자동차용 전지 외에도 ESS나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양산 등 중장기 성장 전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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