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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고초를 겪은 재벌들이 이번 대선기간 동안엔 확실한 정보라인 구축을 통해 정치권과의 코드 맞추기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대세다. 대선기간 동안 불거지는 구설수는 대선 열기에 묻혀버릴 수도 있지만 잘못 대처했다간 자칫 정치 열풍을 타고 부정적 이슈로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조직 재정비를 통해 여러 파트로 흩어져 있던 정보담당 관련 인력을 한 부서로 통폐합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비자금 사건과 정몽구 회장의 구속수감, 그리고 올 초 정몽구 회장 1심에서의 실형선고 등 굴곡을 겪으면서 대외 정보 수집의 효율성 강화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부서가 정보 보고 경쟁을 하던 체제에서 한 부서로의 통합을 통해 정보 라인 통제를 최고위층이 직접 관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이다. 올해 정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항소심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검찰·법원뿐만 아니라 사면 복권 여부의 키를 쥐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도 살펴야 하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최근 국회 보좌관 출신 인사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지며 추가 인사 영입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러나 정 회장 등이 재판을 받는 중이라 정보팀 인력 강화를 드러내놓고 하기엔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SK그룹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관련 정보수집 분야 대신 대관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왔다. 정부부처나 국회 상임위 등을 담당하는 대관업무 분야에선 삼성그룹보다도 앞서왔다는 평이다. 이동통신사업에 제일 먼저 뛰어든 SK로선 통신분야에 대한 법령이나 규제 동향 파악에 전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순수 정보 수집은 그동안 SK 본사와 SK텔레콤 등 계열사들이 나눠서 맡아왔지만 다른 재벌에 비해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다. 본사 회장 비서실 내 조직은 정보수집보다는 최태원 회장의 의전과 비선 업무 등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최근 들어 회장 비서실 내에 별도의 정보담당 조직을 신설 중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정치권을 비롯해 언론계 국정원 경찰 검찰 출신 인사가 주 타깃인 것으로 알려진다. 최 회장이 지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투옥된 경험이 있는 SK가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정치권 동향 파악에 공을 들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LG그룹의 경우 정보라인 인원수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지만 일선 정보조직을 총괄하는 자리에 새로운 얼굴이 들어서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국정원 정보담당 출신 인사가 LG 정보라인의 핵심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4대 재벌 중 현 정권에서 유일하게 수사당국의 칼날을 맞지 않은 LG는 대선을 앞두고 ‘부자 몸조심’의 마음으로 정보수집 전문가를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LG는 노무현 대통령 아들의 재직이나 DJ 정권 시절 핵심인사들과 돈독한 관계 등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일부 호사가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LG가 이런 관계 때문에 곤욕을 치를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정보 수집 강화를 통해 추후 대비를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는 최근 국정원 출신 인사 3명을 영입해 정보 업무의 중량감을 높였다. 그중 국정원 모 지역의 지부장을 역임한 인사가 감사직에 선임된 것으로 알려진다.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 한화는 예금보험공사와 대한생명 인수 당시 이면계약 논란에 대한 국제중재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 동향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것으로 알려진다.
CJ그룹은 경찰대 출신 인사를 영입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아직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부장급의 파격대우를 해준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는다. CJ는 지난해 학교급식 식중독 파문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관련 사안으로 수사당국과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CJ를 둘러싼 증여문제 관련 구설수도 수사당국 주변에서 끊이지 않아 CJ 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코오롱그룹 또한 대선정국을 대비해 국정원 간부 출신 인사를 구조본에 앉힌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정보팀 강화에 부산한 대다수 재벌가의 표정과는 달리 재계 최강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정보팀엔 큰 변동이 없어 보인다. 삼성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임원진에 대한 구명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수사당국·사법부의 동향 파악에 성공적으로 대처해왔다는 평을 듣는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구속수감에 1심 실형까지 받은 것에 비해 이건희 회장은 소환마저 물 건너가는 것으로 관측돼 대조를 이뤘다.
역대 굵직한 선거전에서 정보라인을 원활하게 가동해온 삼성은 기존 조직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삼성은 본사 전략기획실(옛 구조본) 내 정보 인력 외에도 각 계열사별 정보조직 또한 웬만한 재벌그룹 본사 정보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꾸려놓고 있다. 그러나 삼성 안팎에선 대선을 앞두고 삼성이 정보팀 인력 강화에 나설 것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상되는 외부변수에 대해 발생부터 ‘추적-보고-대처’하는 게 삼성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