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마녀사냥 등 타당한 지적 있지만 정우성·제니 이슈 등엔 왜곡된 시선 우려
영국 BBC는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 출산 논란에 대해 이 같은 논평을 내놨다. 여기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한국의 혼외자 출산 비율이 낮고 이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진 않지만 ‘금기’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오히려 혼외 출산 아이 및 미혼모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추세다. 아울러 이런 문화를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영국적인 시선’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혼외 출산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진취적이고, 그 반대는 보수적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한국의 연예계는 주요 외신의 단골 손님이다. 왜일까?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자연스럽게 그 콘텐츠를 이끈 K-팝 가수나 배우들이 각광받고 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해외에서도 주목의 대상이다. 이는 한국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에 비례해 한국 문화에 대한 외신 보도 사례로 잦아졌는데, 이 과정에서 지극히 각 국가의 시선으로 이를 판단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곤 한다.
BBC는 11월 27일(현지시간) ‘정우성의 혼외자 논란이 국가적 논란을 불러왔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과정에서 "정우성이 모델 문가비가 낳은 아들의 친부라고 인정하며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문가비와 결혼 여부에 대해 침묵하면서 혼외 출산이 여전히 금기로 여겨지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번 발표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라면서 "한국의 연예인들은 지나치게 높은 사회적 기준을 요구받는다. 한국은 강도 높은 감시 아래에 놓이는 등 보수적이고 강한 압박으로 악명이 높은 연예계를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사태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은 아쉽다. 한국 대중은 정우성이 혼외자를 낳고, 문가비와 결혼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보도를 통해 두 사람은 이미 정식 교제한 사이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이가 아님이 드러났다. 즉 사랑하지 않는 두 사람에게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언론과 여론은 그동안 정우성이 보였던 ‘책임지는 언행’과 지금 그의 언행에 괴리가 생긴 것을 더욱 질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의 출산 상황을 들여다보면, BBC가 왜 그런 보도를 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혼외자 출산 비율은 4.7% 정도였다. 1000명 중 47명이 혼외자라는 의미다. 반면 영국은 어떨까. 2020년 기준, 무려 49%다. 그해 태어난 아이 2명 중 1명이 혼외자란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혼외 출생률(41.5%)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런 영국의 언론인 BBC가 바라볼 때, 한국의 상황이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시선’일 뿐이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7월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실내에서 전자담배를 피우고 스태프가 있는 곳으로 연기를 뿜은 상황이 공개되며 결국 사과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CNN은 "K-팝 스타들이 대중의 엄청난 감시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BBC는 이때도 "한국 연예인들은 이런 집중적인 포화를 맞는 데 익숙하다. 한국은 K-팝 스타에게 엄격한 도덕, 행동 규범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역시 국내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보도다. 한국에서는 실내 흡연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게다가 흡연은 허가된 구역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흡연자로 인해 비흡연자가 피해 입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제니는 두 가지를 모두 어겼다. 실내 흡연 금지 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곁에 스태프가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흡연한 것은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국의 팝스타들은 데뷔 전 수년 동안 엄격한 훈련을 받고, 데뷔 초기에는 흡연, 데이트, 욕설이 대부분 금지되는 등 높은 행동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제니도 이전에 이 같은 기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몇몇 사안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외신은 납득할 만한 시각을 보였다. 2023년 배우 이선균이 마약 복용 의혹을 받는 과정에서 마녀사냥식 언론 보도와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 큰 상처를 받았다. 결국 이선균의 마약 복용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생활 논란 등이 불거지며 그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때 BBC는 "마약 복용 혐의가 드러나기 전까지 깨끗하고 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보도로 인해 평판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에는 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열애설이 불거진 직후 팬들의 부정적 반응이 쏟아지자 결국 사과하고 결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당시 CNN은 "유명인의 판타지를 홍보하는 K-팝 시장에서 스타들의 연애는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다"면서 "K-팝 스타가 공개적으로 데이트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스캔들로 인해 신비감을 잃게 될까 봐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사생활 영역, 확인되지 않은 사안 임에도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의혹 단계’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간섭받는 행위 등은 마땅히 근절돼야 한다. 사생활 보호를 강조하는 서구 외신의 지적 역시 타당하다. 하지만 한국적 전통와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이해 없이 그들의 기준으로 한국 사회를 재단하는 식의 보도는 삼가야 옳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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