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투구폼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 들여…NPB 진출이 목표”
한화 이글스 김서현(20)은 프로 데뷔 후 2시즌 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다. 어쩌면 프로에서 ‘야구의 사춘기’를 경험한 셈이다. 이젠 사춘기를 지나 진짜 성인으로 거듭난 그가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회상할까. 11월 26일 단골집이라고 소개한 대전의 한 음식점에서 김서현을 만났다.
프리미어12를 마치고 대전에서 비로소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서현은 프로 데뷔 후 두 시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년 차 때는 방황하다 끝난 것 같고 2년 차 때는 조금씩 투구폼을 찾은 것 같은데 여전히 부족한 점이 눈에 띄었다. 언제 신인이었는지도 까먹을 정도로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고교 시절의 김서현이 그린 프로의 세계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아마추어 야구보다는 더 어려울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힘들지 몰랐다”라고 말한다.
“신인 때부터 2년 차인 올해까지 투구폼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투구폼이 고정된 선수도 있고, 나처럼 경기 중간에 바뀌는 선수도 있다. 팀에서 원하는 건 일정한 투구폼이었다. 코치님, 선배님들도 그런 내용의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일정한 투구폼이 유지되면서 성적이 좋아진 터라 지금은 믿고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한화 선수들 중 이번 프리미어12 대표팀에 뽑힌 선수는 김서현이 유일했다. 그는 11월 1일 대표팀 최종 엔트리 발표 전 고척스카이돔에서 치른 쿠바와의 1차 평가전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패스트볼의 위력이 대단했고, 슬라이더 또한 날카로웠다.
“처음 예비 엔트리에 뽑혔을 때는 탈락만 하지 말자는 생각이 컸다. 다시 그 기회를 받으려면 2026년 WBC밖에 없기 때문에 대표팀 경험을 쌓기 위해서라도 프리미어12 최종 선발이 중요했다. 그래서 쿠바와의 평가전에 이를 악물고 던졌다. 진짜 잘 던져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덕분에 (류중일) 감독님, (최일언) 코치님한테 칭찬 많이 받았다.”
당시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김서현의 투구 내용에 대해 “3볼에서 투수가 변화구를 잘 안 던지는데 계속 던져 결국 잡아냈다”면서 “빠른 볼에 변화구만 장착되면 최고의 투수로 대성할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대만에서 치른 프리미어12 조별리그에서 김서현은 4경기 4이닝 3피안타 3볼넷 4탈삼진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다. 김서현은 대표팀이 치른 5경기 중 1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출전했고, 연이은 호투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서현이 가장 인상적인 경기로 꼽은 건 일본전이었다. 김서현은 일본전에서 7회 2사 2루에 등판해 0.2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올렸다.
“가장 잘 던지고 싶었던 경기가 일본전이었다. 그런데 내가 판단을 잘못한 부분이 있었다. 첫 타자(사노 케이타)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다음 이닝에서 선두 타자까지 삼진으로 잘 잡았는데 이후 타자가 타석에서 준비를 천천히 하길래 일부러 퀵피칭을 선보였던 게 꼬이면서 볼넷을 허용했다. 그러다 안타 맞고 교체됐는데 그게 매우 아쉬웠다. 내가 퀵피칭을 안했다면, 그래서 볼넷을 내주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서현은 정규시즌을 마치고 참가한 국제대회이다 보니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후반기를 거의 풀로 뛰고 국제대회에 나간 거라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기 어려웠다. 최고 구속이 153km/h 정도밖에 안 나왔다. 최대한 많이 자고 잘 먹고 휴식을 취하는 걸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김서현은 이번 프리미어12에서 경험을 통해 배운 것도 많지만 선배들의 조언이 야구의 기본기를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특히 (고)영표 선배님으로부터 체인지업과 중심 이동에 대해 배웠다. 영표 선배님이 마운드에서 일정한 중심 이동을 보여주시는데 그 점을 내게 조언해주셨고, 대회 기간에 적용하면서 확실히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최일언 코치님도 하체 움직임과 릴리스 포인트를 잡아 주셨는데 그 내용들을 귀담아듣고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내자 제구가 잡히고 볼에 더 힘이 실리면서 회전수가 늘었다. 어렸을 때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자꾸 새로운 걸 추가하면 혼란스러우니 자신의 방식을 고집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프로에 와서 귀가 열리고 조언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김서현은 다시 투구폼 이야기를 꺼냈다. 그만큼 ‘한’이 많이 맺혔다는 의미다. 프로 데뷔 후 여러 차례 투구폼이 수정되면서 그는 자신과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대표팀 선배님들, 특히 임찬규, 이영하 선배님이 투구폼에 대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나도 선배님들한테 힘든 점을 털어놓기도 하고, 선배님들이 상대 팀에서 봤던 내 모습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해주신 시간들이 매우 소중했다. 그 내용이 객관적이었던 터라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고교 시절의 김서현은 롱릴리프를 맡았고 경기에서 두 가지 정도의 투구폼으로 공을 던졌다. 그는 “3회까지 스리쿼터로 던지다 남은 이닝이 힘들다 싶으면 사이드로 던졌다”라고 설명한다.
“고교 시절 인정받았던 투구폼이 프로 와서 체중이 늘고 몸의 밸런스가 흔들리면서 길을 찾지 못했다. 이후 정말 많은 선수들 투구폼을 따라했다. 내 우상인 최동원 선배님의 투구폼을 비롯해 구대성 선배님 투구폼도 참고로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다르빗슈 유,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 다양한 선수들 영상을 보고 또 봤다. 그러다 올 시즌 정말 어렵게 고교 시절의 투구폼을 되찾았다.”
투구폼이 흔들리면서 김서현은 자신감을 잃었다. 투구폼 교정을 위해 서산 2군행이 결정될 때마다 자신의 야구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팬들의 비난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개인 SNS로 비난의 메시지를 보내는 팬들도 많았다. 나도 잘해보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는데 결과로 인정받지 못하니 속이 상했다. 그땐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됐다.”
한화 이글스는 지난 6월 초 최원호 감독 대신 김경문 신임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김경문 감독은 투수코치로 양상문 해설위원을 영입했다. 이후 김경문 감독은 이례적으로 서산에 있던 김서현을 불러 특별 면담을 가졌다. 김서현은 김경문 감독과의 식사 자리에서 희망을 갖게 됐다. 감독이 자신을 향해 기대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동안 내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봐 주셨고, 잘해보자고 격려도 해주셨다. 이후 1군 선수들과 동행하며 양상문 코치님과 친해졌고, 코치님이 내 투구폼이 자리를 잡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
김서현은 양상문 코치가 ‘아빠’같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가까운 관계라는 뜻이다. 김서현은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뒤인 7월부터 팀의 핵심 불펜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37경기 38⅓이닝 동안 1승 2패 10홀드, 평균자책점 3.76으로 훨훨 날았고, 프리미어12 대표팀에도 승선해 4경기에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완벽투로 리그 최고 불펜 투수로 성장했음을 널리 알렸다.
김서현은 이번 프리미어12를 통해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다. 바로 해외리그 도전, 즉 일본프로야구(NPB) 진출이다. 젊은 선수들 대부분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는 데 반해 김서현은 자신의 스타일이 일본 야구와 맞다고 생각한다.
김서현은 프로 데뷔 후 보낸 시간들을 ‘롤러코스터’에 빗댔다. 새로운 구장에서 펼치는 2025시즌은 더 이상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일정한 흐름으로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를 꿈꾼다. 김서현의 그 바람이 현실로 이뤄지길 바란다.
대전=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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