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은 분양가에도 시세 차익 노린 수분양자들, 대출 규제로 잔금 마련 막히자 눈물의 ‘손절’
이를 두고 일각에선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의 줄임말)’ 풍조의 거품이 가라앉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치솟은 분양가, 고강도 대출 규제로 보유 여력이 고갈된 수분양자들이 매물 던지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한다. 향후 집값 하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일부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내년 11월 입주 예정인 서울 강북구 미아뉴타운 인근 ‘한화포레나미아’(497세대)는 현재 전용면적 80㎡ 분양권에 3000만~7000만 원 마피가 붙어 최저 10억 2640만 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최고 11억 5000만 원에 분양한 전용84㎡ 분양권은 저층 매물을 중심으로 1000만~2000만 원의 마피가 붙어 있다. 이 단지 분양가는 미아뉴타운 ‘래미안트리베라’ ‘두산위브트레지움’ 등 주변 아파트의 동일 평형 시세 대비 2억~3억 원 비싼 수준이다.
이 지역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분양가격이 주변 시세 대비 수억 원 높았음에도 향후 시세 차익을 기대하며 계약금만으로 분양권 취득에 나선 이들이 많았는데 최근 강화된 대출 규제에 묶여 잔금 납부 준비가 어려워지자 손해를 감수하고 분양권을 던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입주한 서울 동작구 ‘상도푸르지오클라베뉴’ 아파트(771세대)의 분양 가격은 전용면적 84㎡(34평) 기준 12억 8000만 원~13억 9300만 원으로 지난 11월 1층 매물이 11억 6500만 원, 19층 매물이 13억 3696억 원에 팔렸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매물 호가는 최저 12억 2800만 원까지 내려와 있다. 해당 매물에는 ‘마피 8000만 원 급매’, 다른 많은 매물에도 ‘최대 마피’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준서울’ 대우를 받는 경기 광명뉴타운에서 이달 입주하는 ‘트리우스광명’은 전용84㎡ 분양권에 최대 5000만 원의 마피가 붙었다. 원 분양가는 10억 3000만 원~11억 8600만 원 선이다. 총 3344세대 대단지, 대우건설·롯데건설·현대엔지니어링 등 유명 건설사가 시공한 장점 등에도 분양권 매물이 쌓여 ‘초급매’를 붙인 마피 매물이 여러 개 나와 있다.
광명지역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이 단지의 분양가가 주변 대비 특별히 높은 것은 아니지만 대출 규제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줄어 자금이 부족한 수분양자는 잔금을 못 내 직접 입주가 어렵고, 전세자금대출 규제도 강화돼 임차인을 못 구하자 물건 처분을 위해 마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의 신축 수분양자들은 입주 직전 전세 임차인을 구해 그 보증금으로 잔금을 납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정부가 이를 제도적으로 막자 잔금 납부 전 ‘손절’ 이탈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은행권에서 중도금(60%)과 잔금(30%)까지 이른바 ‘풀대출’을 받은 세대는 사실상 ‘깡통 매물’로 취급돼 임차인 구하기가 여러 모로 어려워졌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신광문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동산정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현 상황은 수분양자들이 투자 측면에서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결과로, 향후 집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진다면 지금이라도 계약금 수준을 포기하고 파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연구위원은 “현재 건설 자재 값 등 기본 건축비가 워낙 높아 한동안 신축 분양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내려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분양권 거래는 이보다 소폭 하락한 가격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서울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지난 9월 1평(3.3㎡)당 4424만 원으로, 6년 5개월 전인 2018년 2월(2192만 원) 대비 2배로 뛰었다. 지난 11월 주택산업연구원 분양가격 전망지수는 109.1(100 보다 높으면 상승 전망)을 기록해 앞으로 분양 가격이 더 오를 것을 시사했다.
신축 공급량 측면에서는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평균 수요치(약 4만 6000세대)보다 조금 적은 3만 7000세대를 기록했다가 2026년 2400세대, 2027년 2200세대로 급감하며 희소 가치가 높아질 전망이다. 다만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 대출 금리 인하 속도,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고강도 대출 규제 지속으로 전반적인 서울 아파트 거래 열기는 급속도로 얼어붙은 상태다. 지난 7월 9204건을 기록한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3개월 뒤인 지난 10월 3714건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서울·경기 역세권 등 핵심 입지에서 빗겨 있거나 단지 규모 등에서 매력이 떨어지는 신축 단지에서 미분양이나 분양권 마피 거래가 계속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의 미분양 주택은 917세대, 경기는 9771세대로, 이 가운데 준공 후에도 주인을 못 찾은 ‘악성’ 미분양은 서울 523세대, 경기 1773세대에 이른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강남권 등 선호 지역에서는 드물겠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분양 가격에 대한 불편함으로 인해 마피 매물이 계속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때문에 신축 청약이나 분양권 매수에 나설 경우 잔금 납부에 필요한 자신의 현금 자산과 대출이자 부담 능력, 까다로워진 대출 규제, 지역별 분양가격 적정 수준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요구된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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