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여자배구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호흡 맞춘 박정민 저를 진짜 좋아하더라”
“영화에 대한 제 개인적인 부담이 있다면, 이 영화가 전 배구인들의 응원과 성원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이었어요. 이분들께 폐를 끼치고 누가 되면 안 된다는 게 부담이었죠(웃음). 어떻게 하면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대중영화로 사랑받으면서도 배구라는 스포츠가 이렇게 재미있고 매력적인 스포츠란 걸 많은 분들께 알려드릴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 한국 배우에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을 텐데, 우리 영화를 보고 ‘배구 재미있다’라고 생각하시면서 앞으로도 중계방송도 보시고 경기장도 자주 가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12월 4일 개봉한 영화 ‘1승’은 이겨본 적 없는 감독과 이길 생각 없는 구단주, 이기는 법 모르는 선수들까지 승리의 가능성이 단 ‘1’도 없는 프로 여자배구단이 생애 첫 1승을 위해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송강호는 지도자 생활 평균 승률 10% 미만에 파직, 파면, 파산, 퇴출, 이혼까지 인생에서도 패배의 그랜드슬램을 달성 중에 해체 직전인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게 된 배구선수 출신 감독 김우진을 연기했다.
“보이는 바로는 김우진이란 캐릭터가 한때는 열정이 가득했고, 유망한 선수 출신이란 설정이 있죠. 그러다 배구 인생이 안 풀리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정사도 불우하게 돼요. 그런 ‘루저’의 모습을 담다 보니까 이런 저런 설정들이 합쳐진 건데 사실 저도 우진이가 왜 이혼을 했는진 별로 안 궁금하더라고요(웃음). 그저 이 친구가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선수들을 만나 좌충우돌하는 과정 동질감을 느끼면서 비로소 ‘한 팀’이 된다는 과정을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추려 했던 것 같아요.”
좌충우돌 끝에 감독직을 맡지만, 에이스 선수의 이적으로 이른바 떨거지 선수들만 남은 ‘루저 팀’을 ‘루저 감독’이 이끌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구단주 정원(박정민 분)은 이 루저들의 성장 서사를 ‘팔릴 만한 스토리’로 판단해 핑크스톰이 딱 한 번이라도 1승을 한다면 상금 20억 원을 풀겠다는 파격 공약을 내세운다. 거액의 상금으로 모두가 주목하는 구단이 됐지만, 바닥난 팀워크로 여전히 압도적인 연패 행진을 이어가는 콩가루 같은 팀에 울화통이 터진 우진은 승리의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과 함께 단 한 번만이라도 이겨보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감독이라면 배구계의 선배이기도 하잖아요? 예전에 선수였다가 감독을 하다 보면 후배들이 자식같이 느껴지겠죠. 그래서 아무리 자기가 자기 자식을 욕할지언정 남들이 자기 자식을 욕하는 건 보지도 못하고 듣기도 싫은 거예요(웃음). 그런 걸 보고 있으면 하나의 가정 같아요.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이니까, 내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에게 있어 인지상정일 테니까요. 그런 마음에서 우진이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를 풀어나가지 않았나 싶죠(웃음).”
김우진과 이 ‘콩가루’들이 나름대로의 성장 서사를 만들어가는 동안 반대편에 자리 잡은 구단주 정원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정원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생활연기 특화형’ 배우의 연기력이 현실감을 불어넣으면서 완벽하게 완성된 캐릭터였다. 정원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과 송강호는 이번이 첫 호흡이었는데 박정민은 “송강호 선배님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볼 것도 없이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는 뒷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선수 친 후배를 향한 송강호의 ‘칭찬 품앗이’가 이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는 영화 ‘파수꾼’으로 박정민 씨를 처음 봤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타고난 재능도 물론 있겠지만 제가 봤을 때 박정민이란 배우는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사람 같아요. 자기 소양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그런 배우라서 더 놀랍고요. 자기만의 철학을 누구에게 배운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가니까 저렇게 입체적이고 탁월한 해석력이 나오는 거겠죠. 박정민 씨가 인터뷰에서 제 칭찬을 하고 다닌다는 얘긴 저도 들었는데요, 제가 장담하건대 그건 빈말이 아니라 ‘진짜’예요(웃음). 예전에 영화잡지에서 박정민 씨랑 다른 젊은 배우들끼리 모여서 인터뷰를 했는데 거기서 박정민 씨만 (존경하는 선배로) 저를 지칭했더라고요. 그러므로 박정민 씨가 저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입니다(웃음).”
그러면서 송강호는 이번 ‘1승’ 속 핑크스톰 배구선수를 맡은 배우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당부했다. 핑크스톰의 주장으로 20년을 버텨 온 방수지 역의 장윤주를 제외하면 배구선수들은 대부분 신인 배우이거나 모델, 실제 배구선수 출신으로 알려졌다.
“저희 배우 중에 시은미 씨라고 1인 2역을 맡으신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배구선수 출신이에요. 무대인사 때 그분이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28년 동안 배구 선수로 뛰었다’ 하시니까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놀라움은 ‘헉, 그런데도 연기를 너무 잘하시는데?’라는 데서 오는 것 같았어요. 심지어 1인 2역이었으니까요. 그분이 지금은 학생 가르치는 코치로 일하시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연기를 하신 건데 아마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이번 ‘1승’에서 함께한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예요. 각자의 일에서 워낙 인정받은 분들이기 때문에 연기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셔도 다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
거대 자본의 블록버스터 영화인 것도, 흥행이 담보된 자극적인 소재의 작품인 것도 아니지만 송강호는 ‘1승’에 특별한 애정과 기대를 걸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배우인 자신의 마음을 먼저 울렸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이 울림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만 된다면 충분히 기대했던 것 이상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도 있었다. “저는 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작품을 선택해 출연을 결정하는데, ‘1승’의 대본을 받았을 때 정말로 심장이 고동치더라고요. 만일 제 심장이 안 뛰었다면 출연을 안 했겠죠.” 송강호 특유의 너털웃음이 따랐다.
“저는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무대인사를 할 때 보니 관객석에 어르신들도 계시고, 부부 동반 관객 분도 계셨는데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영화를 보시더라고요. 거창한 이야기나 거대한 담론을 담은 그런 영화는 아니지만, 극장 문을 나서서 집에 돌아갈 때 작은 행복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집에 가다가 통닭이라도 한 마리 사서 애들과 맛있게 먹는다면 이것도 어떤 개인에겐 삶의 1승일 수도 있는 거죠. 자신은 알고 있지만 제 안에 숨겨진 자신감을 조금이라도 건드릴 수 있는, 작은 위로이자 위안을 주는 그런 영화라는 점에서 참 좋은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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