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퇴진론’ 한-윤 정치 거래 산물 지적…하야·탄핵 없이 당·총리에 권력 위임? 학계 “위헌” 한목소리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탄핵안 표결을 5시간 앞두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저의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향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 향후 국정 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8일 오전 11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공동 대국민 담화를 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도 국민의 명령에 따라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므로 질서 있는 조기 퇴진 과정에서 혼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한 대표는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대통령의 직무 배제 범위에 군통수권이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에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외교를 포함한다”고 했다.
한 대표는 당초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탄핵 찬성을 시사했으나, 윤 대통령과 독대 이후 ‘조기 퇴진’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이를 통해 한 대표는 윤 대통령 임기, 정국 안정 방안 등을 결정하는 권한을 일임받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윤 대통령이 여당과의 정치적 거래를 했다’라고 진단했다.
12월 7일 NYT는 “윤 대통령은 2분간의 담화에서 임기와 국정 운영 방안을 당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그가 당분간 재임이 가능하도록 신중하게 설계된 여당과의 정치적 거래를 은폐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조기 퇴진 요구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윤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에서 정치적 불확실성과 혼란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 사실상의 직무배제, 국무총리와 여당의 국정운영’을 골자로 한 공동 담화를 두고 법조계에선 위헌 소지가 높다고 지적한다. 헌법 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윤 대통령 자진 하야 또는 탄핵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을 직무 배제하고, 대통령이 권력을 여당 대표에게 위임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리와 여당 대표가 국정을 공동 운영한다는 건 우리 헌법 정면에 반한다. 대통령 체제에서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통령을 제치고, 정당 대표가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 대표가 국가 공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특히 총리는 대통령 하급 기관이자 보좌 기관이다. 대통령 권력을 가져가는 건 헌법상 불가능하다. 대통령 유고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때 총리가 권한대행이 돼서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10일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동훈·한덕수’ 국정운영에 대해 “위헌”이라며 “우리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는 대통령 자신과 대통령 권한대행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한동훈, 한덕수 총리의 공동 담화에서 얘기하는 공동정부 운영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굉장히 위헌적인 발상이고 그 점에서는 상당히 정국을 혼란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동훈 대표와 국무총리가 국정을 공동 운영한다는 건 위헌적이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사고 상태로 본다고 하더라도, 한덕수 총리만 대행하는 게 맞다. 한동훈 대표가 이렇게 전면적으로 나서서 질서 있는 퇴진을 하겠다고 하는 건 위헌적이다. 한 대표는 법적인 권한이나 지위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12월 8일 국내외 대학에 재직 중인 정치학자 573명은 시국선언을 통해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무슨 헌법적 권한으로 총리와 여당이 국정을 주도한다는 말인가”라고 꼬집으며 “임기 단축이나 몇 개월 후 하야 등은 자격 없는 자의 손에 계속 국가를 맡기는 것이기에 불안하다. 단 며칠이나 몇 주도 안 된다. 여당은 탄핵으로 인한 사회 불안정 가능성을 탄핵 거부의 근거로 주장하나, 이는 민주주의와 헌법수호보다 자당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우선한 비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탄핵을 방해하는 국회의원들은 헌정의 회복을 저해하는 세력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행정부 통할권, 공무원 임명권, 법령심의권, 외교권 등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선 윤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계속 행사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실제로 12월 6일 윤 대통령은 장관급인 진실화해위원장에 박선영 전 의원 임명안을 재가했고, 8일에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사의 의사를 수용했다. 9일 국방부는 현재 국군통수권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고 밝혔다. 군통수권, 외교 등을 포함한 국정에서 배제될 것이란 한 대표 주장은 설득력을 잃은 모양새다.
야권은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총리의 공동 담화를 ‘2차 내란’이라고 규정한 뒤 맹공을 퍼붓고 있다. 12월 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 대표를 향해 “일반 국민 시각에서 보면 ‘네가 뭔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며 “무슨 자격으로 국정을 자기가 직접, 국무총리와 의논해 정하겠다는 것이냐. 무슨 공산당 인민위원장쯤 되냐”고 비판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도 한 대표를 향해 “위헌·불법적 국정 운영을 주도할 어떤 권한도 없다. 윤석열 내란이 한동훈·한덕수, 검찰 합작 2차 내란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같은 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한동훈·한덕수’를 향해 “그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 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대통령 권력의 부여도, 권한의 이양도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그 절차는 헌법과 국민주권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탄핵은 대통령의 직무를 중단시키는 유일한 법적 절차다. 위헌적 비상계엄에 대한 헌법적 책임을 묻는 헌법적 절차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로, 그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 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12월 8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SNS에 “한동훈이 어떻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직무 배제할 권한이 있나. 그건 탄핵절차밖에 없다”며 “탄핵도 오락가락하면서 고작 8표를 미끼로 대통령을 협박해 국정을 쥐겠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대한민국 국민은 한동훈한테 국정을 맡긴 일이 없다. 시건방지게 총선 때처럼 혼자 대통령 놀이 하지 마라. 야당과 담합할 생각 말고 사내답게 니가 사퇴하는게 책임정치”라고 밝혔다.
같은 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위헌 통치’란 비판에 대해 “(여당 대표가) 총리와 함께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좀 어폐가 있다. 당대표가 국정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며 “총리가 국정운영을 직접 챙기고, 당정의 긴밀한 협의는 당연히 있을 것이다. 비상시국에서 당이 보다 적극적이고 세심하게 총리와 협의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의원 최소 8명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으면, ‘내란 피의자’가 군 통수권자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에 윤 대통령과 공모해 내란을 일으킨 혐의가 있다고 적시하면서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지목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12월 10일 오후 2시까지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 찬성 의사를 표했고, 조경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탄핵 시,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권을 거머쥘 것이란 우려 때문에 탄핵 표결을 주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2월 9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비상의원총회 도중 기자들과 만나 “조기 대선하면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 지금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민주당보다 더 하면 더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상희 교수는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업무에 충실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표결에 불참하는 건 국회의원으로서 직무유기”라며 “정당이 당론으로 표결 참가를 저지하는 건 정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표결에 아예 참가 못하게 하는 건 국회 기능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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